신흥국 성장률 최저 2.6% 추락·물가 6.7% 급등 우려…한국 "비교전국 중 최대 피해"
4500만 명 식량 위기·700억 달러 긴급 지원도 역부족…G20 공조마저 균열
4500만 명 식량 위기·700억 달러 긴급 지원도 역부족…G20 공조마저 균열
이미지 확대보기로이터 통신은 12일 두 기관이 이번 총회에서 세계 성장률 전망을 일제히 낮추고 물가 전망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절반 이상을 중동에 기대는 한국 경제는 이 충격의 정면에 서 있다.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성장 하향"…수치로 읽는 전쟁의 경제 비용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타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틀어쥐었다. 세계 일일 원유 흐름의 13%, LNG 흐름의 20%가 차단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올랐고 공급망 혼란이 확산됐다.
세계은행의 기본 시나리오에서 신흥국·개발도상국 성장률은 지난해 10월 전망치 4.0%에서 3.65%로 내려앉았다. 전쟁이 길어지면 2.6%까지 추락할 수 있다.
세계은행 아제이 방가 총재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성장률이 기본 시나리오에서 0.3~0.4%포인트(P) 낮아질 수 있으며, 전쟁이 계속되면 최대 1%P까지 잠식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률 전망은 더 가파르게 올랐다. 신흥국 기준 올해 물가는 기존 3.0%에서 4.9%로 뛰었고, 최악의 경우 6.7%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게 세계은행의 계산이다.
IMF는 이번 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나라의 생산량이 전쟁 초기에만 3% 급감하고 "이후에도 수년간 계속 하락한다"고 추산했다.
식량 위기 우려도 수치로 나타났다. IMF는 비료 공급망 혼란이 계속될 경우 전 세계에서 약 4500만 명이 추가로 급성 식량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 9일 워싱턴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성장이 이전보다 낮아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쟁 전만 해도 두 기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충격에도 버텨온 세계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들어 성장률 상향을 준비했다. 방아쇠가 바뀐 것이다.
한국 "비교전국 최대 피해"…호르무즈가 흔드는 경상수지
이 충격이 한국에 이중으로 전달되는 경로는 뚜렷하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란 전쟁 이후 한국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비교전 국가는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헬륨의 64.7%를 카타르에서 들여오고 있다.
삼일PwC경영연구원도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한 원유·LNG 수송 차질은 제조원가 상승과 물가 압력 확대를 통해 기업 수익성을 훼손하는 한편, 해상운임 상승·보험료 증가·환율 변동성 확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제 전반으로 파급된다"고 분석했다.
금융계에서는 "4월 이후에는 국제유가 상승이 경상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월까지는 원유 도입 시차 덕분에 에너지 수입 급증을 면했지만, 4월부터는 유가 급등이 본격 반영되며 역대 최대 흑자를 달리던 경상수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도 대응 수위를 끌어올렸다. 정부는 3월 25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컨트롤타워로 확립하고, 김민석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비상경제본부를 신설해 범부처 대응에 나섰다.
석유화학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입 비용 지원에 5000억 원을 투입하고 원유 13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원유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이달 2일 '경계' 단계로 격상됐다.
700억 달러 지원 약속, 그러나 "채무 악순환 끊지 않으면 밑 빠진 독"
국제기구들의 지원 의지는 분명하다. IMF는 저소득국과 에너지 수입국의 긴급 지원 수요를 200억~500억 달러(약 29조~74조 원)로 추산했다. 세계은행은 단기 250억 달러(약 37조 원), 6개월 이내 최대 700억 달러(약 103조 원)를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원받을 나라들의 빈 곳간이다. 록펠러재단 에릭 펠로프스키 부총재는 "저소득국의 부채 상환 규모가 2025년 기준 팬데믹 이전의 두 배에 이르고, 이들 나라 절반이 채무 위기이거나 그 직전 상황"이라면서 "이번 분쟁은 간신히 수면 위에 고개를 내밀었던 나라들을 채무-성장-투자의 악순환에 가둔다"고 말했다.
글로벌개발센터의 메리 스벤스트럽 선임연구원은 "취약 국들은 완충 여력도, 외환보유액도 줄어든 상태로 이번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지원이 늘어야 하지만 감당 가능한 조건이어야 하고, 개혁 프로그램·채무 재조정과 함께 가야 한다"고 밝혔다.
전 IMF 전략수석 마틴 뮐라이젠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도 "새 차관은 신뢰할 수 있는 부채 감축 계획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20 공조도 삐걱거린다. 의장국 미국이 같은 회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회의에서 배제하면서 위기대응 공동전선에 균열이 생겼다.
애틀랜틱카운슬 조시 립스키 국제경제 의장은 "지금 세계에는 어느 것에도 합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합의를 기반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워싱턴 총회는 두 기관이 내놓을 세계경제전망(WEO) 수치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반복되는 충격 앞에 국제금융 안전망이 충분히 촘촘한가—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