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연대기(78)] 지우영(발레안무가, 댄스시어터샤하르 예술감독), 발레적 감성으로 '안네 프랑크'를 탐구하다
이미지 확대보기4월 4일(토) 오후 3시·6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댄스시어터샤하르(예술감독 지우영) 주최·주관, 서울문화재단 후원, 서울어텀페스타 협력, 지우영 안무·연출·대본으로 2026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 '안네 프랑크'(Anne Frank)가 2회 공연되었다. 지우영은 전 작품을 창작 발레화 하여 애국발레 안무가의 전형이 되었다. 안네 프랑크의 삶은 인류와 인간성에 대한 중심 주제가 되어왔다. 발레 '안네 프랑크'는 나치 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인간성 상실을 노련하게 침착하게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시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공연된 바 있다.
'안네 프랑크'는 프롤로그를 포함하여 12장으로 구성되었다. 장(場)의 제목으로 작품의 전개와 사건을 유추할 수 있다. 영상으로 접하는 친필 일기가 이해를 돕는다. 안네는 열세 살 생일 선물로 받은 빨간 일기장 표지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발레 '안네 프랑크'의 장별 구분을 살펴본다. 프롤로그. ‘숨는 자와 찾는 자, 1장 평화로운 마을, 2장 게슈타포 행진, 3장 안네와 키티의 만남, 4장 유태인 학대, 5장 은신처 생활, 6장 어두운 현실, 7장 안네와 꿈속 친구들, 8장 어린 연인들, 9장 끌려가는 유태인, 10장 은신처 발각, 11장 가스실 속 이별, 12장 남겨진 일기장.
지우영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학습했다. 독일 유학 시절에는 발레 강의 후 쉬는 시간마다 음악과의 연습실 밖으로 흐르는 연주를 즐겼다. 그녀에겐 쉼표 하나도 춤의 언어가 되어왔다. '안네 프랑크'는 가스실에 흐르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동인(動因)이다. 음악 쓰임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합창곡으로 ‘도나도나’는 가스실에 끌려가는 송아지를 비유한다. 역설적 의미의 ‘하바나길라’(Hava Nagila)는 ‘기뻐하자’라는 뜻의 유대 민속곡이다. 지하실에서 들리는 베토벤의 ‘비창’은 쉼표의 긴장감을 이용했다. 라디오에서 나온 ‘릴리마를렌’은 당시 최고의 인기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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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지우영의 작품은 휴머니즘을 강조하면서 군인들이 많이 쓰인다. 발레 '안네 프랑크'도 객석을 훑는 게슈타포들의 손전등 수색에서 시작된다. 군복을 입은 그들이 등장하면서 공포감을 배가시키는 군무가 펼쳐진다. 독일어로 흐르는 음성들이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안네의 가족은 독일 중부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비밀창고로 피신한다. 식자재 공장 사무실 창고를 책장으로 위장한 가족의 생활 공간은 비좁고 불편하다. 안네는 솔로로 동화적 명랑함을 연기해 낸다. 스크린에 안네의 일기가 투사된다. 안무가는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가상의 친구 '키티'를 무대에 세운다.
키티는 안네의 우울과 공포, 십 대 소녀의 꿈을 공유한다. 폐쇄 공간 속의 안네와 페터(문준온,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의 듀엣은 순수한 애정과 생명력의 징표였다. 주목할 발레리나 김하은(안네)은 청소년의 감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였고, ‘천상지희’ 출신의 스테파니 킴(키티)은 안네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개성있는 연기력을 발산했다. 강준하(오토 프랑크)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경력의 준수한 중량감으로 극성이 강한 '안네 프랑크'의 중심이 되었다. 정민찬(독일장교)은 국립발레단 출신 뮤지컬 배우로 게슈타포 집단의 군무를 이끌면서 '안네 프랑크'의 긴장감을 일구었다.
‘댄스시어터샤하르’는 창단(2003) 이래, 발레를 중심으로 다양한 무용 장르와 여러 갈래의 예술과 경계를 허물어 왔다. 지우영은 '어머니'를 시작으로 발레·연극·뮤지컬에 걸쳐 40여 편의 대본·안무·연출을 담당했다. 그녀의 대표작은 '레미제라블', '한여름 밤의 호두까기인형', '나이팅게일과 장미', '소월의 꿈', '사운드 오브 뮤직', '기적의 새', '헤븐스 지저스', '이상한 챔버오케스트라', '지젤이 지그프리드를 만났을 때', '신소공녀', '마태수난곡', '줄리엣과 줄리엣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나무', '104 마을의 1004 이야기', '모차르트 바스티앙', '표', '헬렌 켈러', '리브스동문학교', '돈키호테의 사라진 기억들', '개구리 연못' 등이 있다.
그녀의 대표작 가운데 '레미제라블', '븐스 지저스', '돈키호테의 사라진 기억들'을 살펴본다. '레미제라블'은 지우영의 안무 철학이 정점에 있음을 입증한다. 이 작품은 인물의 윤리적 갈등을 정교한 신체 언어로 환원하며, 시대의 비극을 현재적 감수성으로 번역한다. 흑백 영상, 장면 분절, 컷백 구조는 시간의 층위를 시각화하며, 발레·현대무용·연극적 장치의 혼성은 형식적 긴장을 유지한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립은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목적성으로 승화되며, 인간이 스스로를 문제화할 때 성숙에 이른다는 철학적 인간학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사랑과 용서라는 보편 윤리를 대중적 언어로 재구성한 ‘믿음의 발레’로서, 동시대적 공감과 미학적 접근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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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돈키호테의 사라진 기억들'은 클래식 발레 '돈키호테'의 ‘기억’을 동인으로,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 존재의 마지막 잔여를 응시한다. 요양원의 폐쇄 공간 속에서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공의 방황은, 산초와의 관계를 매개로 기억의 파편성과 인간적 고독을 부각한다. 점진적 소멸의 ‘기억의 궤적’ 위에 ‘최후의 사랑’이라는 정서를 중첩함으로써, 작품은 절제된 감정의 깊이로 미학적 여운을 확장한다. 간결한 장면 구성과 영상 매체의 절묘한 병치는 동시대적 감각을 환기하며, 안무가의 미학적 핵심인 서사적 응축과 정서적 투명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지우영은 한국발레협회 신인안무가상, 춤비평가협회 특별상, 서울예술상 심사위원 특별상(레미제라블), 서울문화투데이 무용부문 최우수상, 한국발레협회 ‘발레빛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지우영은 비영리법인 사)DTS행복들고나 이사장, 예하예술학교 교장, 노원 경계선지능 평생교육지원센터 센터장을 맡아서 아동·청소년 사회문화복지에도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봄빛 완연한 남산에서의 지우영의 발레는 아름다웠다. 벌써 차기 예정작 백조의 호수 '프로토콜 오데뜨', '코메디코펠리아', 생상스의 사육제를 각색한 미용실 주제의 판토마임발레 '애니멀 살롱'에 기대감이 인다.
안네 프랑크(1929~1944)는 프랑크푸르트 출생이며 종전 다섯 달을 앞두고 사망하였다. 그녀는 ‘기억 예술’의 중심 아이콘의 하나이다. 2년 동안의 ‘안네의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안무가 지우영은 안네 프랑크를 통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예술”이라는 윤리적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발레적 감성으로 그려낸 지우영의 '안네 프랑크'는 의상, 영상, 음성, 사진 등의 스키마를 이용하여 현재 춤의 활력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가스실 장면 재현은 이제껏 무대에서 보지 못한 과감한 시도였다. 발레 '안네 프랑크'는 봄날의 ‘희망찬가’가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