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한국이 키운 산업공식”…중국, AI·로봇·반도체로 역추격

글로벌이코노믹

“한국이 키운 산업공식”…중국, AI·로봇·반도체로 역추격

중국 국가 제조업 전략 10년…배터리·AI·반도체까지 한국 산업 전방위 압박
“단순 기술 경쟁 아닌 공급망·인재·산업 생태계 전체의 싸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AI·반도체·로봇·전기차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산업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자료= AI 생성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AI·반도체·로봇·전기차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산업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자료= AI 생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산’은 싸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기차와 배터리, AI, 로봇, 드론, 조선까지 중국 기업들은 한국 주력 산업 전반을 정면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과거 세계는 중국을 ‘값싼 생산기지’로 바라봤지만 이제는 첨단 제조와 AI 산업의 핵심 축으로 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로봇, 배터리, 전기차, 스마트팩토리,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거의 모든 전략 산업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의 성장 방식이다. 현재 중국이 보여주는 산업 육성 전략은 1970~80년대 한국 정부가 중화학공업과 수출 대기업을 키워냈던 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정부가 전략 산업을 선정하고 금융과 세제, 연구개발(R&D), 인재 양성, 규제 완화, 내수 보호를 총동원해 산업 전체를 밀어 올리는 구조다.

차이가 있다면 규모다. 당시 한국은 국가 전체 역량을 제조업에 집중했다면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과 자본력, 인구를 바탕으로 같은 전략을 훨씬 더 거대한 수준에서 실행하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격했던 공식이 이제 중국을 통해 한국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딥시크 쇼크…“중국 AI는 미국도 긴장시켰다”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분야는 AI다. 2025년 글로벌 AI 업계를 뒤흔든 중국 AI 기업 딥시크(DeepSeek)는 단순한 스타트업 성공 사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딥시크가 글로벌 AI 업계에 충격을 준 이유는 단순 성능 자체보다 ‘효율성’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의 고성능 AI칩 수출 규제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제한된 GPU 자원과 낮은 비용으로 경쟁력 있는 AI 모델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AI 자립 속도를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AI칩 선두 기업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 역시 최근 “중국은 AI와 로보틱스 분야에서 매우 강력한 국가”라고 공개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가 장기적으로 중국 반도체·AI 생태계 자립을 가속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 중국은 이제 단순히 AI 모델만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AI와 제조업을 결합한 ‘물리적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AI가 로봇과 공장, 물류, 자율주행 시스템에 직접 연결되는 구조다. 세계 최대 제조 기반을 가진 중국은 AI를 현실 산업과 연결하는 속도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국 역시 AI 핵심 반도체 설계와 초대형 AI 생태계에서는 여전히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첨단 AI GPU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초거대 AI 인프라에서는 아직 미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봇의 챗GPT 순간”…중국이 장악한 공급망


로봇 산업은 중국의 성장 속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국제로봇연맹(IFR)과 업계 분석 등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용 로봇 생산량은 2015년 약 3만3000대 수준에서 최근 수십만대 규모까지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단순 생산량이 아니다. 중국은 로봇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빠르게 진행하며 공급망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속기와 모터, 희토류 자석, 배터리, 센서, AI칩까지 로봇 핵심 부품 상당수가 이미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2026년 GTC 행사에서 “로봇의 챗GPT 순간이 왔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로봇 산업의 핵심 공급망 상당수가 중국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 산업계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국가 표준 체계를 발표하며 기술 규격과 인증 체계까지 선점하려 하고 있다. 단순 제조를 넘어 산업 표준 자체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과거 반도체와 통신장비 시장에서 벌어졌던 패권 경쟁이 로봇 분야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광둥성의 한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공장에서 로봇이 조립되고 있다. 중국은 생산량 확대를 넘어 핵심 부품 국산화와 산업 표준 선점까지 추진하며 글로벌 로봇 공급망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사진= 중국 CCTV 유튜브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광둥성의 한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공장에서 로봇이 조립되고 있다. 중국은 생산량 확대를 넘어 핵심 부품 국산화와 산업 표준 선점까지 추진하며 글로벌 로봇 공급망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사진= 중국 CCTV 유튜브

배터리와 전기차…한국 핵심 먹거리 정조준


SNE리서치 등 시장조사업체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CATL과 BYD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단순히 배터리 셀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리튬 정제와 양극재, 전구체, 배터리팩, 전기차 플랫폼, 전력반도체까지 공급망 전체를 수직계열화하며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고에너지밀도 배터리와 일부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과 생산 규모, 공급망 장악력에서는 중국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더 이상 ‘저가 브랜드’가 아니다. BYD는 자율주행과 AI, 반도체, 배터리까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제조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조차 중국 업체들의 기술 발전 속도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중국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유지하는 이유 역시 단순한 무역 갈등 차원이 아니라 산업 패권 방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메모리 반도체…한국의 마지막 보루도 흔들린다


현재까지 한국이 세계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는 대표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여전히 HBM과 첨단 D램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HBM과 EUV 기반 초미세 공정,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업계에서는 첨단 반도체 장비와 AI 반도체 설계 생태계에서는 여전히 한국과 미국, 대만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 속도 역시 예상보다 빠르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중심으로 한 중국 메모리 기업들은 정부 지원과 대규모 투자, 해외 인재 영입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CXMT가 범용 DDR4·DDR5 시장에서는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HBM과 1b(5세대)급 초미세 공정에서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과 격차가 존재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고부가가치 시장의 진입장벽은 아직 높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특히 중국의 인재 확보 전략을 주목한다. 한국과 일본의 핵심 반도체 인력들이 중국 기업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인력의 기술 유출 사건까지 잇따르며 산업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D램 공장 전경. 중국 메모리 기업들은 정부 지원과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DDR4·DDR5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HBM 등 첨단 메모리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 창신메모리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D램 공장 전경. 중국 메모리 기업들은 정부 지원과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DDR4·DDR5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HBM 등 첨단 메모리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 창신메모리 홈페이지

‘중국제조 2025’에서 ‘신질생산력’으로…진화하는 산업 전략


중국 산업 전략의 출발점은 2015년 발표된 ‘중국제조 2025’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이를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산업 패권 전략으로 해석했다.

독일의 중국 전문 연구기관 메릭스(MERICS)는 2016년 보고서에서 “중국제조 2025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의존도가 높고 중국 육성 산업과 중복되는 분야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중국제조 2025’라는 표현 사용을 줄이고 있다. 대신 최근에는 ‘신질생산력’이라는 이름 아래 AI·반도체·로봇 중심 첨단 제조업 육성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당시 경고는 상당 부분 현실화하고 있다. AI와 로봇, 배터리, 전기차, 조선, 디스플레이, 화학, 철강까지 한국 주력 산업 상당수가 중국과 직접 경쟁 구도에 들어갔다.

문제는 중국이 단순히 특정 기업 몇 곳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운다는 점이다.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면 배터리와 반도체, AI, 로봇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 로봇 산업을 육성하면 희토류와 모터, 정밀기계 산업이 동시에 커진다.

중국은 산업 전체를 연결해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단기 처방에 머문다”


반면 한국은 장기 산업 전략 부재가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업 정책 방향이 흔들리고 규제와 지원 정책 역시 단기 정치 논리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AI 분야에서는 인재 양성 체계 자체가 중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은 초등교육 단계부터 AI와 코딩 교육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입시 중심 교육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산업계에서는 대기업 지원에 대한 사회적 시선 역시 문제로 꼽는다. 글로벌 경쟁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기업들이 국가 대표 기업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기업 지원 자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 첨단 제조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장기 전략과 산업 전환 속도라는 지적이다.

특히 조선·자동차·석유화학 기반을 갖춘 울산 같은 산업도시가 AI·로봇·수소 산업 전환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조업 현장과 AI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AI·반도체·로봇 분야에 대한 장기 국가 전략과 인재 유출 방지, 제조업과 AI 융합 가속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권 단위가 아닌 10~20년 단위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미래를 먼저 실행하고 있다”


세계 산업 질서는 지금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지금 중국은 같은 전략을 AI와 로봇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속도다. AI 시대에는 기술 격차가 과거 제조업 시대보다 훨씬 빠르게 좁혀진다. 자본과 데이터, 인재, 공급망이 동시에 움직이면 산업 판도는 순식간에 뒤집힌다.

젠슨 황은 최근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로 생긴 공백을 화웨이 등 중국 AI칩 기업들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가장 큰 강점으로 압도적인 제조 생태계와 가격 경쟁력을 꼽는다. 반면 미국과 한국, 대만은 여전히 AI 알고리즘과 첨단 반도체 장비, 초미세 공정 등 원천 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 산업계의 질문은 이제 단순하지 않다. “중국이 얼마나 빨리 추격하느냐”가 아니라 “한국이 앞으로도 선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앞으로 10년 안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