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눈부신 황금의 이면에는 지독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연방정부의 행정력은 서부 끝자락까지 닿지 못했다. 탐욕이 지배하는 광산촌은 살인과 강도가 판치는 무법천지로 전락했다. 부패한 치안 관리들은 수수방관했다. 참다못한 시민들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1851년 결성된 '자경 위원회(Committee of Vigilance)'는 무능한 공권력을 대신해 범법자들을 추방하거나 처벌했다. 공적인 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민간이 자발적으로 물리력을 동원해 사회의 질서와 균형을 강제하는 미국 '자경단(Vigilante)'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난 1983년 뉴욕 증시 월스트리트에 이 용어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당시 경제 분석가 에드 야데니(Ed Yardeni)가 '국채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것이다. 서부 시대의 무법자들이 선량한 시민을 위협했다면 현대 금융시장의 무법자는 빚을 내어 돈을 펑펑 쓰는 '정부'와 물가 관리에 실패한 '중앙은행'이다. 오늘날 국채자경단의 무기는 윈체스터 소총이 아니라 '매도(Sell-off)' 버튼이다. 정부가 빚 즉 국채를 무분별하게 늘리거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면, 이들은 보유한 국채를 무자비하게 내다 던진다. 시장에 채권이 쏟아지면 가격은 폭락하고 국채 금리는 치솟는다. 감당할 수 없는 이자 폭탄을 맞은 국가는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 시장이 자본의 힘으로 정책 당국의 탐욕과 실책을 강제로 교정하는 것이다.
제롬 파월의 뒤를 이어 케빈 워시(Kevin Warsh)가 연준의장으로 취임하면서 국채 자경단이 다시 꿈틀 거리고 있다. 워시 의장은 지금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일시적(Transitory)인 현상으로 진단하고, 인공지능(AI) 혁명이 주도하는 생산성 향상이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며 금리 인하에 친화적인 '비둘기파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백악관의 요구와 맞물려 시장에서는 연준의 조기 통화 완화에 대한 우려가 급부상했다. 빚더미 국가의 재정과 끈적한 물가를 감시해 온 국채 자경단은 케빈워시의 이러한 통화팽창적 행보에 경고를 내고 있다. 국채 자경단은 워시 의장의 비둘기파적 성향이 자칫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중앙은행의 최우선 책무를 방기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그리고는 시장에 막대한 국채 매도 폭탄을 쏟아부으며 새 연준 의장과 정면 충돌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경단의 반란이 촉발한 금리 급등은 뉴욕증시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자산 가격의 벤치마크인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은 직접적인 압박을 받는다. 오픈 AI의 챗GPT 이후 글로벌 증시를 견인해 온 반도체, AI 등 첨단 기술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무자비하게 깎여나간다. 미래의 막대한 기대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되는 할인율(금리)이 커지면서 고퍼(High PER) 주식들의 매력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명목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을 나타내는 버핏 지수(Buffett Indicator)가 역사적 고평가 구간에 진입해 있는 현 상황에서, 치솟는 무위험 이자율(국채 금리)은 증시의 거품을 찌르는 가장 날카로운 송곳이다. 5%를 상회하는 확정 수익을 주는 안전한 국채를 두고, 밸류에이션이 한껏 달아오른 주식 시장에 자본을 묶어둘 합리적 이유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자본은 증시에서 채권 시장으로 급격히 이탈하며 하락 압력을 가중시킨다.
장기 국채 금리의 향후 전망은 험난하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누렸던 '비정상적인 제로 금리'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지정학적 블록화에 따른 탈세계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에너지 전환, 인구구조의 변화 등 고비용 구조가 세계 경제의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40조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 부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 또다시 국채를 찍어내야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 있다. 중앙은행인 연준마저 물가 때문에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물량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국채 자경단은 만기 보유에 따른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을 지속적으로 더 높게 요구할 것이다.
국채 자경단이 케빈 워시 의장에게 보낸 냉혹한 역설적 환영 인사는 명확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정책 입안자가 인플레이션과 시장의 생리를 무시하고 정치적 수사에 기대어 섣부른 정책을 펼칠 때, 시장은 반드시 가혹한 응징을 내린다는 것이다.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추진하다 자경단의 무자비한 채권 투매에 부딪혀 결국은 고강도 긴축으로 선회했다. 서부 개척 시대의 자경단이 야만의 도시에 피를 흘리며 질서를 부여했듯이 오늘의 국채 자경단은 탐욕과 빚의 수렁에 빠진 국가 경제와 통화 정책에 뼈아픈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이들의 거친 매도 공세는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발작을 일으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거시경제의 완전한 파국을 막기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다. 지금 연준과 시장 참여자들은 방만한 경제를 향해 자본이 내리는 투명하고 냉혹한 최후통첩의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다. 케빈워시와 국채 자경단의 한판 승부가 자못 주목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