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기고] 'ESG 공시 확대' 공공기관의 부담인가, 혁신의 기회인가

글로벌이코노믹

[기고] 'ESG 공시 확대' 공공기관의 부담인가, 혁신의 기회인가

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한국사회보장정보원 비상임이사·한국지방자치학회 인권경영추진위원장
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ESG 공시는 기업과 시장의 신뢰 인프라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의 방향은 분명하다. ESG(환경·사회·거버넌스)는 더 이상 자율적 캠페인이 아니라 법적·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시행하고 있고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기준 역시 글로벌 시장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민간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가 2028년을 목표로 논의되는 가운데 정부는 공공기관 통합공시(ALIO) 항목을 41개로 확대하며 공공부문을 변화의 선행 영역으로 설정했다.

현장의 부담은 적지 않다. 탄소배출량 산정, 공급망 관리, 인권 리스크 점검, 데이터 검증과 제3자 보증(Assurance)까지 요구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경영평가 대응만으로도 업무 부담이 큰 상황에서 강화된 공시 의무는 공공기관의 행정 부담을 더욱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일부 기관에서는 소수의 전담 인력이 수십 개의 세부 지표를 동시에 관리하는 상황도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은 왜 ESG 공시를 하는가. 많은 조직은 여전히 ESG 공시를 규제 대응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감점을 피하고 최소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접근이다. 행동경제학의 ‘손실 회피 성향(Loss Aversion)’은 이러한 조직의 태도를 설명한다. 조직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을 때의 이익보다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결과 혁신보다 체크리스트 관리에 집중하고 목적보다 형식을 우선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경쟁력과 학습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ESG 데이터와 지표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정보가 실제 사업 혁신이나 운영 개선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대중과 정책 환경에서 주목받기 쉬운 것은 ‘보기 좋은 공시’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직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일이다.

예컨대 에너지 공기업이 탄소배출량을 측정해 공시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규제 대응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축적된 환경 데이터를 활용해 산업단지의 에너지 효율 개선 모델을 개발하고 협력 중소기업의 감축 비용 절감까지 지원한다면 의미는 달라진다. ESG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조직 경쟁력과 혁신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가치와 기관의 경쟁력이 동시에 강화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많은 공공기관에서 여전히 ESG를 본업과 분리된 별도의 업무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ESG 부서가 작성하고, 현업 부서는 기존 방식대로 움직인다. ESG가 조직 전체의 운영 원리가 아니라 일부 부서의 행정 업무로 남아 있는 셈이다.

ESG 공시 확대는 분명 공공기관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담 자체가 아니다. 배는 파도를 없앨 수 없지만, 선체의 구조는 바꿀 수 있다. 공공기관이 ESG 공시를 또 하나의 행정 의무로 받아들이는 순간, 공시는 형식적 절차에 머물게 된다. 반대로 이를 조직 운영 체계와 본업 혁신을 점검하는 계기로 활용한다면 ESG는 규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시 자체가 아니다. 숫자 뒤에 어떤 경영의 방향과 철학이 남아 있는가의 문제다.

이진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eroj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