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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대답하지만 사람은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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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 (330)] 인공지능 상담의 장점과 한계
요즘에는 AI 상담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상담객이 AI와 상담하는 모습.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요즘에는 AI 상담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상담객이 AI와 상담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요즘에는 인공지능(AI) 상담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럴 때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정말 잘못한 건가요?" "불안해서 잠이 안 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과거라면 가까운 친구에게 속을 털어놓거나,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혹은 큰 결심을 하고 전문 상담실을 찾아가 던졌을 이런 질문들을 이제는 AI에 묻는다.

AI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다. 게다가 한결같이 친절하다. 인간처럼 사용자의 말을 중간에 끊는 법도 없고, 아무리 오래 대화를 나눠도 피곤해하지 않는다. 똑같은 질문을 대여섯 번 반복해도 짜증 섞인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찾아와도 불평 한마디 없다. 남들에게는 수치스러워 도저히 꺼내지 못할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AI의 화면은 동요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AI는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AI와 대화하면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세상에 내 말을 온전히 받아 주는 대상이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는 감각, 바로 거기서 오는 위안이다.

이러한 점에서 AI 상담은 분명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 예약 절차도 필요 없고, 고비용이나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타인에게 말하기 힘든 심각한 고민이 생겼을 때, 혹은 자신의 마음이 미처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 AI는 마치 훌륭한 심리적 응급처치 도구의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 사람에게 말하면 낙인이 찍힐까 두려운 이야기, 가족에게마저 번복하기 미안한 염원을 쏟아내기에 이보다 편한 대상은 없다.

'안전한 편안함'이 가로막는 성장의 기회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역설이 발생한다. AI 상담이 가진 압도적인 장점은, 동시에 치명적인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AI가 인간 상담의 영역을 온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정교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AI가 너무 잘 받아 주고, 너무 빨리 대답하며, 사용자를 지나치게 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다. 즉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상담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AI가 건네는 공감의 문장과 질문은 겉보기에 인간 상담자의 그것과 유사해 보인다. 감정을 언어화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주는 기능도 탁월하다. 그러나 두 관계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 상담자와의 관계는 살아 움직이는 상호적 교류(交流)인 반면, AI와의 관계는 상담적 언어를 정교하게 모방한 일방적 반응에 불과하다.

인간 상담자는 기계적인 반응 장치가 아니다. 상담자 역시 내담자의 언어와 정서에 실제로 영향을 받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내담자의 깊은 슬픔을 들으며 함께 가슴이 미어지고, 끝없이 반복되는 분노와 원망을 들으며 피로감이나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내담자의 공격적인 태도 앞에서 내면의 긴장을 경험한다. 물론 전문 상담자는 이러한 역전이(逆轉移) 감정을 미숙하게 표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중요한 치료적 자산으로 전환한다.

예를 들어, 상담자가 특정 내담자의 반복되는 하소연 속에서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는 사적인 감정을 넘어 현실을 반영하는 열쇠가 된다. '이 내담자는 실제 삶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고통에만 함몰되어 타인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전혀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인간 상담은 이처럼 내담자가 상담자와의 관계적 역동 안에서 자신의 대인관계 패턴을 인지하도록 이끈다.

상담실은 내담자가 편안하게 숨을 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가고 있는지를 배우는 사회적 실험실이다. AI는 사용자의 텍스트에 반응하지만, 인간 상담자는 내담자의 존재 자체에 응답한다.

실존적 만남과 현존, 그리고 '제3의 귀’


상담 관계의 핵심에는 ‘현존(現存)’이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와 함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텍스트의 교환을 초월하는 영역이다. 상담자의 미세한 표정 변화, 침묵의 무게, 눈빛, 호흡, 조심스러운 기다림이 모두 치유의 에너지가 된다. 내담자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며 비로소 실존적인 경험을 한다.

“내가 이런 추악한 면을 고백해도 이 사람이 나를 거부하지 않는구나.”, “내가 분노를 쏟아내도 이 관계가 파괴되지 않는구나.” 이것은 정보가 얼마나 유용하냐를 가르는 차원을 넘어 존재 자체를 느끼고 체험하는 경험이다. 사람 앞에서 온전히 벌거벗었으나 버림받지 않는 경험,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 상담에는 상처의 공유라는 실존적 성격이 깔려 있다. 상담자 역시 삶의 고통을 겪고, 실패를 경험하며, 상처받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취약한 존재다. 바로 그 취약성이 담보되어 있기에 내담자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명할 수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처절한 비극을 듣다가 잠시 말을 잃고 먹먹한 침묵에 잠긴다면, 그것은 상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야기가 상담자의 인간적 내면에 닿아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냈다는 증거다.

반면 AI는 고통을 모른다. 실패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AI가 생성하는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라는 문장은 수준 높은 위로가 될 수 있으나 그 언어 뒤에 작동하는 실존적 내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피눈물이 AI의 알고리즘을 흔들 수는 없다. AI는 고통을 처리할 뿐, 고통에 맞서 함께 흔들려 주지 않는다.

상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의 관계를 '나와 너(I-Thou)'의 관계와 '나와 그것(I-It)'의 관계로 분류했다. '나와 너'는 상대를 도구나 대상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 마주하는 만남이다. 치료적 도약은 바로 이 '나와 너'의 순간에 일어난다. 반면 아무리 다정하게 세팅된 AI라 할지라도 기계와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나와 그것'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유용한 도구일 수는 있으나 실존적 만남을 살아내지는 못하는 한계가 여기에 있다.

정신분석가 테오도르 라이크(Theodor Reik)는 분석가란 단순히 귀로 들리는 말소리만 듣는 이가 아니라 말 뒤에 숨겨진 무의식적 의미와 정서적 울림을 포착하는 '제3의 귀'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두 귀는 사건의 시간 흐름을 이야기로 정리하지만, 제3의 귀는 그 사건을 몸으로 견뎌낸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읽어낸다.

우리말의 "속마음을 읽는다"는 표현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인간 상담자는 "괜찮다"는 내담자의 말속의 서운함을, "분노한다"는 외침 뒤의 두려움을 읽는다. 소리를 귀로 듣는 것을 넘어 그 소리가 암암리에 표현하는 속마음을 읽는 ‘관세음(觀世音)’의 영역에 이르는 것이다. AI는 언어 정보를 훌륭히 처리하지만 말의 속살을 보지는 못한다.

자립인가, 의존인가: 상담의 성숙을 향하여


인간관계에는 한계와 거절이 존재한다. 인간 상담자는 내담자를 존중하지만, 상담 시간이 종료되면 단호하게 다음을 기약해야 하고, 내담자의 모든 사적 요구를 수용해줄 수 없다. 내담자는 상담실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경계(境界)를 경험하며, 거절이 곧 버림받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숙하게 배운다. 그러나 거절이 없는 AI의 무한한 수용은 오히려 내담자를 유아기적 전능감에 머물게 할 위험이 있다.

공격성의 처리도 마찬가지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전이된 분노를 표출할 때, 상담자는 방어벽을 세우지 않고 이를 치료적 도구로 삼아 내담자의 내면에 깊숙이 숨어있지만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패턴을 역추적한다. 반면 아무리 공격해도 타격을 입지 않는 AI 앞에서는 이러한 관계적 수치심의 치유와 역동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좋은 상담의 궁극적 지향점은 내담자를 상담자에게 계속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에 '상담자의 귀'를 구축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초기에는 상담자의 귀를 빌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던 내담자가, 상담이 무르익으면서 점차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과잉 반응을 하고 있지?', '과거의 상처라는 필터로 현재를 왜곡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바로 심리적 성숙이자 자립이다. 성공적인 상담은 내담자가 더 이상 상담자를 찾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AI는 대답하지만, 사람은 들어준다. 그리고 인간은, 오직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또 다른 인간 앞에서만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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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