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173조의3 무색케 한 '하루 시차' 계약의 이면
3월 4일 매각 예고 후 5일 담보 설정…31일 반대매매로 지분 처분
전문가 "대규모 차입, 사전 협의 필수…거래계획 공시 진정성 의문"
거래계획 미이행에도 정정 공시 없어 불성실공시 제재 가능성
코스닥 상장사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인 휴림홀딩스가 휴림로봇 지분(150만 주) 거래계획을 사전 공시한 바로 다음 날, 해당 주식 552만 주를 담보로 50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돼 투자자 기만 및 사전공시 의무 위반 의혹이 일고 있다.3월 4일 매각 예고 후 5일 담보 설정…31일 반대매매로 지분 처분
전문가 "대규모 차입, 사전 협의 필수…거래계획 공시 진정성 의문"
거래계획 미이행에도 정정 공시 없어 불성실공시 제재 가능성
휴림홀딩스는 매각 예정 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식 담보설정계약 및 기한의 이익 상실 사유에 의한 반대매매로 지분을 대거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지분이 강제 매각당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휴림홀딩스는 차입금을 상환하고 560억원(추가 대출 포함)의 현금을 확보한 반면, 휴림로봇 지분율은 5.2%에서 0.87%까지 추락했다.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최대주주가 단기 주식 담보대출과 반대매매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형식적인 거래계획을 공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지분 매각 예고' 공시 다음 날 500억원 차입 및 주식 담보설정계약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인 휴림홀딩스는 지난 3월 4일 '임원·주요주주 등의 특정증권 등 거래계획서'를 공시했다. 오는 4월 3일부터 4월 30일까지 휴림로봇 주식 150만 주를 장외(불가피할 경우 장내) 매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휴림홀딩스는 이 공시를 낸 바로 다음 날인 3월 5일, 채권자 '휴앤미'와 휴림로봇 주식 552만0800주를 담보로 500억원을 차입하는 주식 근질권설정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실은 4거래일 뒤인 3월 11일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통해 시장에 알려졌다.
자본시장법 173조의3(임원 등의 특정 증권 등 거래계획의 보고)에 따르면, 주요주주 등 내부자의 깜깜이 대량 매도로 인한 일반 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내부자가 지분을 대규모로 매매할 때는 '거래개시일 30일 전'에 거래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시장에 매각을 예고했던 휴림홀딩스는 정작 매각 예고 기간(4월 3일~30일)이 시작되기도 전인 3월 31일, 담보설정계약 상 기한의 이익 상실 사유에 따른 담보권 실행으로 주식이 대거 반대매매 처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 대규모 차입 관행 비춰볼 때 "사전 인지" 가능성 무게
이에 따라 휴림홀딩스가 3월 4일 거래계획을 공시할 당시, 이미 이튿날 체결될 500억원 대출의 담보설정계약이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더욱이 거래계획 공시 주체와 차입금 담보설정계약 주체가 모두 휴림홀딩스로 동일하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증권업계 전문가는 "단기(1개월) 담보설정계약과 이에 따른 반대매매 리스크를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거래계획을 공시한 것은 시장에 오인 정보를 제공한 것과 다름없다"며 "앞선 공시(거래계획)와 모순되는 사후 행위(담보설정계약 및 반대매매)로 시장 신뢰를 무너뜨린 행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휴림홀딩스는 당초 공시했던 거래계획 기간(4월 3일~30일) 동안 실제 거래를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거래계획 취소나 변경' 등의 정정 공시가 없었다.
예정된 매각 기간 이전에 반대매매로 지분이 매각됐다면 이는 기존 공시 내용의 중대한 변경에 해당하며, 공시했던 거래계획을 이행할 수 없거나 변경 이행 상태가 된다. 따라서 "담보권 실행(반대매매)으로 인한 거래계획 취소 또는 변경" 형태로 정정 공시를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같은 공시 변경(정정·취소) 절차를 누락할 경우 코스닥시장 상장공시규정 제28조 등에 따라 공시 위반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최대주주의 이 같은 행위는 상장법인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거나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본지는 거래계획에 대한 정정·취소 공시를 진행하지 않은 구체적 사유를 질의했으나 회사 측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 쟁점…회사 측 "법적 상충 없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안이 자본시장법 173조의3(임원 등의 특정 증권 등 거래계획 보고) 위반을 넘어, 동법 178조(부정거래행위 금지)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만약 처음부터 주식을 예고된 방식으로 매도할 의사 없이 주가 하락을 방어하거나, 우회적인 지분 현금화(대출 담보제공 후 반대매매) 등을 목적으로 진정성 없는 거래(매각)계획을 공시했다면 '부정한 기교'나 '중요사항 누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최대주주가 주가 방어나 우회적 지분 처분 등 다른 목적을 위해 진정성 없는 거래계획을 공시함과 더불어 거래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동법 173조의3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거래계획 공시에서 지배구조 변화 신호를 준 뒤 실제로는 매각 전 주식 담보제공 및 대출을 받고 기한이익상실을 통한 반대매매로 동법 178조(부정거래행위 금지)에 따른 투자자 기만 및 부정한 기교 등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
회사 측은 서면 답변을 통해 관련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회사 측은 "당시 거래계획서 제출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향후 발생 가능한 지분 변동 가능성을 시장에 투명하게 예고한 합법적 사전 조치였다"면서 "이후 실행된 주식담보대출은 경영상 필요에 따라 별개로 이뤄진 의사결정이며, 두 행위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법률적으로 상충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어 “자본시장법 147조(주식 등의 대량보유 등의 보고)에 따른 적법한 절차로 특정 정보를 은폐하거나 시장을 기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한 자본시장에 밝은 변호사는 "최대주주 측이 '경영상의 별개 결정'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앞선 매각 예고 공시의 신뢰성을 뒤쪽의 담보설정계약이 소멸시킨 형태"라며 "제도 시행 취지인 소액주주 보호를 우회한 공시 차원의 맹점이 드러난 만큼 당국의 정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1234@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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