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981년 손정의 회장이 일본 후쿠오카에서 창업했을 당시, 회사의 명칭은 '일본 소프트뱅크'였다. 오늘날 거대한 금융 및 기술 지주회사의 이미지와 달리, 초창기 비즈니스는 PC용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대리점에 불과했다. '소프트뱅크(SoftBank)'라는 사명에는 손정의 특유의 대담한 비전과 수학적 직관이 녹아 있다. 컴퓨터를 움직이는 핵심인 '소프트웨어(Software)'와 자금이 모이고 흐르는 중심지인 '은행(Bank)'을 결합한 조어다. 즉, "정보화 사회의 가장 핵심 자산인 소프트웨어가 끊임없이 유통되고 축적되는 은행과 같은 인프라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손정의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가 아니다. 시대의 메가트렌드를 포착하고 그 길목에 자본의 댐을 건설하는 투자 은행가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해 왔다. 초창기 소프트웨어 유통으로 쥔 자금력을 바탕으로 야후(Yahoo) 투자, 알리바바(Alibaba)의 초기 지분 투자를 성공시키며 축적한 천문학적인 자본은 훗날 그가 반도체 영토를 무차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거대한 자양분이 되었다
손정의 회장의 투자 궤적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올인(All-in)'이다. 그는 과거의 방어적 투자 기조를 완전히 탈피하고, "소프트뱅크의 남은 모든 에너지를 인공지능 혁명에 올인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알리바바 지분을 비롯한 과거의 성공 유산들을 과감히 현금화하여 확보한 수십조 원의 실탄은 오직 AI 전방위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손정의가 꿈꾸는 궁극의 종착지는 인간의 지능을 수만 배 초월하는 초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의 구현이다. 그는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 지능의 1만 배에 달하는 초지능 시대를 맞이할 것이며, 이 시대의 주도권을 잡는 자가 인류 문명의 패권을 장악할 것이라 확신한다.그가 정의하는 인공지능 혁명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에 국한되지 않는다. 초지능이 구동되기 위해서는 거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초고성능 반도체 인프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필수적이다. 손정의는 AI 연산의 핵심 뇌 조직에 해당하는 반도체 지적재산권(IP)과 하드웨어 공급망을 통째로 소유하겠다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을 가동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의 반도체 제국 건설은 전 세계 반도체 설계의 뿌리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소프트뱅크 반도체 전략의 가장 거대한 주춧돌은 2016년 320억 달러(약 36조 원)를 투입해 전격 인수한 영국의 반도체 설계 자산(IP) 기업 ARM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소프트뱅크가 너무 비싼 값을 치렀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ARM은 전 세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AP 아키텍처 시장의 99%를 독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력 효율성을 무기로 데이터센터 및 서버용 AI 칩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손정의는 AI 연산 장치가 스마트폰, 자동차, 로봇, 데이터센터 등 모든 사물에 탑재될 것임을 예견하고, 그 설계 도면의 원천 권리를 장악한 것이다. 2023년 ARM을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시키며 소프트뱅크는 자본의 유동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AI 반도체 생태계의 정점에 올라섰다.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회장의 큰 그림은 글로벌 투자 무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침체에 빠진 일본 제조업의 심장인 반도체 생태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국가적 프로젝트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첨단 반도체 제조 역량을 자국 내에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 과정에서 손정의 회장과 소프트뱅크는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본력을 동원해 대만 TSMC와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연계하여 일본 내 첨단 반도체 수요를 보장하는 강력한 앵커 역할을 자처했다. TSMC의 일본 진출과 미국 내 추가 확장 공정에 필요한 네트워킹을 전방위로 지원했다.
손정의가 TSMC와의 파트너십 및 유치에 앞장선 이유는 철저한 계산에 근거한다. 그가 소유한 ARM의 설계 자산과 그래프코어 등의 기술이 실제 물리적인 반도체 칩으로 대량 양산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인프라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대만 해협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일본과 미국 영토 내에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TSMC의 생산 기지를 확보하는 것은 소프트뱅크 AI 제국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열쇠다. 나아가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최첨단 반도체 연합체인 '라피더스(Rapidus)'와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손정의는 글로벌 인공지능 하드웨어 생산 거점의 대전환을 이끄는 메가 프로젝트의 거대한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역사와 손정의의 행보는 자본이 어떻게 기술 초격차를 만들어내고 패권을 재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이정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사라는 어원에 충실했던 기업이, 이제는 인공지능과 초지능이라는 인류 최첨단 지형의 지배자로 진화했다.트럼프 행정부와 손잡고 백악관에서 발표한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ARM의 인수와 그래프코어의 합병, 그리고 TSMC를 중심으로 한 다국적 생산망 연계 전략은 단순한 단기 투자 차익을 노린 플레이가 아니다.그것은 다가올 초지능 시대에 전 세계 인공지능 연산이 실행되는 모든 통로마다 소프트뱅크의 기술과 자본의 통행세를 내게 만들겠다는 무서운 설계다.물론 천문학적인 자본 투입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여전한 과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먼저 읽고 두려움 없이 판돈을 던지는 승부사 손정의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글로벌 반도체와 AI 산업의 권력 지도는 실리콘밸리나 타이베이가 아닌, 소프트뱅크의 자본 댐이 위치한 도쿄와 미국의 새로운 AI 거점을 중심으로 다시 쓰이게 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