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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모델 개발보다 '현장 도입'이 승패 가른다"… AI 패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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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모델 개발보다 '현장 도입'이 승패 가른다"… AI 패권의 진실

"누가 최고의 모델 만드느냐 아닌, 누가 실제로 쓰느냐의 싸움"… 美 독점 신화 균열
中 오픈소스 'Qwen·Kimi' 동남아 침투 가속… 고가 미국산 라이선스 대신 '주권 AI' 구축
제도·조직 개편 없는 규제·수출 통제는 무용지물… "1890년대 전기 혁명처럼 현장 재설계가 관건"
알리바바와 Qwen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알리바바와 Qwen 로고..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을 미국의 원천 혁신과 중국의 모방 기술 간의 대결로 규정짓던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AI 경쟁의 진정한 승부처는 '누가 가장 뛰어난 프런티어 모델을 개발하느냐'라는 화려한 벤치마크 점수 싸움이 아니라, '누가 산업과 공공 현장에서 이를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느냐'라는 지루하고 지난한 조직 개편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는 석학들의 날카로운 분석이 제기됐다.

알리바바의 '통이첸원(Qwen)'과 문샷AI의 '키미(Kimi)' 등 중국산 고성능 오픈소스 모델들이 동남아시아와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급속히 침투하면서, 미국 소수 빅테크 기업에 첨단 AI가 독점될 것이라던 시장의 믿음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기업과 정부들이 값비싼 미국산 폐쇄형 모델에 종속되는 대신, 무료로 공개된 개방형 모델을 다운로드해 자체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탓이다.
10월 4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에 게재된 브루노 S. 세르지(Bruno S. Sergi) 하버드대학교 강사와 케빈 첸(Kevin Chen) 호라이즌 파이낸셜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공동 기고문에 따르면, 아시아와 유럽의 비즈니스 현장은 이미 원산지 논쟁을 넘어 '실제 도입과 채택(Adoption)'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발 오픈소스의 맹공… '미국산 독점·희소성' 편견 깨졌다


기고진은 지난 7월을 기점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과 산업계에서 AI 기술의 '희소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과거 시장에서는 오픈AI나 구글 등 미국 소수 기업의 초고가 모델만이 최고 수준의 성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안도 섞인 가정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공개 벤치마크나 홍보가 거의 없었던 중국의 Qwen 및 Kimi 최신 버전이 서방의 첨단 모델에 필적하는 연산 능력을 무료 혹은 파격적인 저가로 입증해 내면서 이러한 신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 워싱턴 정계가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장벽을 높이는 데 몰두하는 사이, 아시아 각국은 발 빠르게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싱가포르의 국가 AI 진흥 기구인 'AI 싱가포르'는 최근 알리바바의 오픈소스 Qwen 모델을 기반으로 동남아 다국어 특화 모델인 'Qwen-SEA-LION-v4'를 전격 구축했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아세안 주요국들은 상하이에서 출범한 중국 주도의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CO)'에 대거 합류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정밀 제조업체나 자카르타의 대형 은행, 방콕의 병원 그룹들은 이제 막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치르며 미국 플랫폼에 데이터를 넘길 필요가 없어졌다. 고성능 개방형 모델을 자체 서버에 직접 설치해 민감 데이터를 내부에 안전하게 보관하면서도 독자적인 '주권 AI'를 손쉽게 구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진짜 걸림돌은 법률 아닌 '낡은 관료주의'… "규제 탓하는 건 헛다리"


기고진은 미국 정계가 AI의 확산을 가로막는 진짜 장애물을 완전히 오판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수출을 옥죄려는 '제한주의자'들이나 규제 철폐만을 외치는 '가속주의자'들 모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국에는 포괄적인 연방 차원의 AI 규제법이 전무하며, 일본의 가이드라인이나 싱가포르의 정책 프레임워크 역시 병원이나 제조 공장이 내일 당장 AI를 도입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AI 배치가 지연되는 이유는 헤드라인을 장식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지루한 '조직적 병목' 때문이다.

오사카나 보스턴의 대형 병원에서조차 병동 간 환자 전자의무기록(EMR) 호환이 불가능한 현실, 분기나 회계연도 단위로 굳어진 경직된 조달 관행, 실험을 원천 봉쇄하는 낡은 레거시 IT 인프라, 과거 시대에 머물러 있는 위험 관리 프로세스 등이 AI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반도체 수출 통제나 무역 장벽으로도 이 같은 내부 관료주의와 제도적 결함을 해결할 수는 없다.

1890년대 전기 혁명의 교훈… "승자는 제도를 가장 빨리 재설계하는 국가"


경제사는 새로운 범용 기술(GPT)이 생산성 폭발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증명한다.

1890년대 미국 공장들에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실질적인 국가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공장들이 기존 증기기관 중심의 중앙 구동축을 완전히 뜯어내고, 소형 전기 모터를 중심으로 작업 라인과 제조 공정 전체를 물리적으로 재조직한 뒤에야 비로소 전기의 진정한 경제적 혜택이 발현됐다. 과거 컴퓨터 혁명 당시 일본이 겪었던 디지털 전환(DX)의 지체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범용 기술은 위대한 발명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가 아니라, 기업과 공공 기관들이 그 기술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체질을 뜯어고칠 때 비로소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그 재조직의 과정은 눈에 띄지 않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지만, 진정한 패권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결정된다.

영국이 18세기에 산업혁명을 지배한 것은 단순히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증기기관을 활용할 수 있는 법제, 자본 시장, 공장 노동 체계라는 '경제적 인프라'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고진은 AI 시대의 최종 승자 역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프런티어 모델을 만드는 국가가 아니라, 자국의 제도와 업무 프로세스를 가장 신속하고 과감하게 재설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화려하지 않은 진검승부는 실리콘밸리의 첨단 연구실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공장 조립 라인, 병원 진료실, 정부 조달 부서의 낡은 책상 위에서 이미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