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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에 美 바나나 산업도 비상…수익성 한계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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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에 美 바나나 산업도 비상…수익성 한계 직면

경유값 70% 급등·비료·해상운송비 동반 상승…델몬트 바나나 이익률 2.3% 불과
지난 2017년 3월 17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카레파의 바나나 농장에서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7년 3월 17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카레파의 바나나 농장에서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란 전쟁의 경제적 충격이 원유와 비료 시장을 넘어 미국의 대표적인 서민 과일인 바나나 산업까지 확산하고 있다.

전쟁 이후 연료비와 비료값, 운송비가 크게 올랐지만 바나나 생산업체들은 비용 증가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다 병충해와 기후변화, 관세 문제까지 겹치면서 세계 바나나 공급망의 취약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대표적인 바나나 공급업체 델몬트의 중미 농장부터 미국 소매점까지 이어지는 약 4000km의 운송 과정을 추적한 결과 이란 전쟁이 바나나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인들은 1인당 연평균 약 80개의 바나나를 소비한다. 바나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지만 생산과 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판매가격은 매우 낮은 상품이다.

◇경유값 70% 급등…중미 농장에서 미국 매장까지 비용 상승

바나나 산업은 복잡한 국제 물류망에 의존한다.

열대 지역에서 재배한 바나나는 손상을 막기 위해 조심스럽게 포장한 뒤 냉장 트럭과 화물선으로 수천㎞를 이동한다.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별도의 숙성시설을 거쳐 소비자가 원하는 상태로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온도 관리와 운송 일정이 중요하지만 이란 전쟁으로 관련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

NYT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이후 7개월 동안 미국 경유 가격은 약 70% 올랐으며 한때 갤런당 6달러(약 7990원)를 넘어섰다.

경유는 바나나를 운송하는 냉장 트럭에 필요한 핵심 연료다.

델몬트의 화물선이 사용하는 선박 연료 가격도 상승했다. 중남미 바나나 농장에서 관개시설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연료비 역시 높아졌다.

비료 가격 상승도 부담이다.

바나나 농장에 필요한 비료 상당수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생산된다. 중동의 천연가스 공급 차질이 비료 가격에 영향을 미치면서 농업 생산비까지 높이고 있다.

운송비 상승은 골판지 상자와 플라스틱 포장재, 병충해 방제에 사용하는 농약 등으로도 번지고 있다.

델몬트 북미사업부의 대니 듀마스 수석부사장은 NYT에 모든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했다.

◇바나나 한 개에 200원대…가격은 10년째 제자리

NYT에 따르면 생산비 상승보다 바나나 업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판매가격을 올리기 힘든 구조다.

미국의 바나나 평균 소매가격은 지난 8월 기준 파운드당 약 65센트(약 866원)로 지난 1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바나나 한 개는 통상 15센트(약 200원) 정도의 낮은 가격에 판매된다. 이는 바나나가 식료품점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저가 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형 소매점들은 바나나를 저렴하게 판매해 소비자를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여러 업체가 사실상 비슷한 상품을 공급하는 산업구조도 생산업체의 가격 인상 능력을 제한한다.

델몬트, 치키타, 돌, 파이프스 등 주요 바나나 업체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생산비가 올라도 소비자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것이다.

NYT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반영한 미국 바나나의 파운드당 평균가격은 지난 40년 동안 약 절반으로 떨어졌다.

반면 바나나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데 필요한 연료와 인건비, 포장재 비용은 상승했다.

이런 구조에서 델몬트의 올해 2분기 바나나 사업 이익률은 2.3%에 불과했다.

후안 알라르콘 파이프스 북미사업부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이 바나나 사업을 비영리사업에 비유하곤 했다고 말했다.

◇바나나 300만개 이상 실은 화물선…40시간 안에 하역

NYT는 델몬트의 화물선 '델몬트 스피릿'을 통해 바나나 산업의 물류 구조를 살펴봤다.

길이가 축구장 두 개에 맞먹는 이 배는 중미에서 미국으로 바나나를 운송하는 델몬트의 화물선 7척 가운데 하나다.

지난여름 이 배는 과테말라와 코스타리카에서 생산한 바나나 수백만 개를 싣고 3200km 이상을 이동해 미국 뉴저지주 글로스터시티 항구에 도착했다.

당시 화물량은 미국에 그 주 수입될 전체 바나나의 약 7%에 해당했다.

델몬트는 이 항구에서 매주 최대 30만상자의 바나나를 하역한다.

이 배의 선원들에게 주어진 하역 시간은 40시간에 불과했다. 화물을 내린 뒤 다음 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중미로 출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바나나는 과테말라 태평양 연안 티키사테 지역에서 재배된다.

수확한 바나나는 손상되지 않도록 포장한 뒤 냉장 트럭으로 400km 이상 이동해 카리브해 연안의 산토토마스데카스티야 항구로 운송된다.

이후 화물선을 통해 미국에 도착하면 소매점으로 바로 배송되거나 숙성시설로 옮겨진다.

숙성시설에서는 온도를 서서히 높이고 에틸렌 가스를 투입해 바나나가 노란색으로 익도록 한다.

이처럼 여러 단계에 걸친 운송과 숙성 과정은 모두 에너지 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델몬트의 모하메드 아바스 사장은 공급망의 모든 과정이 에너지에 의존한다고 강조했다.

◇전쟁에 병충해까지…바나나 생산 기반 위협

NYT에 딸면 바나나 업계의 고민은 당장의 생산비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비료와 농약 가격이 계속 오르면 자금 사정이 어려운 농민들이 사용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해 바나나 수확량 감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중미에서는 이미 일부 농민들이 바나나 대신 파인애플 재배로 전환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병충해도 심각한 위협이다.

현재 미국에서 소비되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 품종이다. 유전적으로 매우 비슷한 캐번디시 바나나들은 특정 병원균이 확산할 경우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1950년대까지 주로 그로미셸 품종을 먹었지만 파나마병이라는 곰팡이성 질병이 확산하면서 1960년대까지 해당 품종의 상업적 생산 기반이 크게 무너졌다.

이후 업계는 캐번디시 품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유형의 파나마병이 동남아시아와 남미의 캐번디시 농장을 위협하고 있다.

이 병원균은 토양에서 수십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어 감염된 농장의 장기적인 생산 중단을 초래할 수 있다.

바나나 기업들은 이러한 위험에 대비해 새로운 유전적 특성을 지닌 품종을 연구하고 있지만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생산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에 투자할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

◇페루 농민 생산비 30% 증가…장기계약에 가격 인상도 어려워

남미의 바나나 생산지역에서는 생산 기반이 이미 크게 약화되고 있다.

페루 북부의 소규모 바나나 생산업자 미겔 앙헬 모랄레스는 “파나마병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지역의 바나나 재배 계곡 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 생산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농민들과 함께 농장을 이전해야 했다.

5년 전 이 지역에서는 바나나 12개 컨테이너 분량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1개 컨테이너만 채울 수 있는 수준으로 줄었다.

여기에다 이란 전쟁까지 겹치면서 올해 생산비가 25~30% 상승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나 정부의 지원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모랄레스는 “기존 연간 공급계약 때문에 아직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델몬트 등 대형 업체들도 장기계약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부 생산업체의 계약은 오는 12월 만료되지만 소매업체들이 어느 정도의 가격 인상을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는 관측이다.

북미바나나협회의 톰 스텐젤 상무이사는 “유통업체들이 바나나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믿는 것은 사실상 고정관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과 등 다른 과일에 비해 바나나는 재배와 운송에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업계의 비용 흡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교란 장기화…저가 과일 공급망의 취약성

이란 전쟁이 바나나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로는 국제 에너지시장이다.

NYT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 세계 비료의 약 3분의 1과 해상 원유의 약 4분의 1이 이동하던 통로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페르시아만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동량은 이전보다 크게 줄어든 상태다.

중동의 원유 공급이 일부 회복됐지만 지난 7개월 동안 국제유가는 여러 차례 배럴당 100달러(약 13만3190원)를 넘어섰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쟁 종료를 거듭 선언했음에도 휴전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했다.

NYT는 이러한 에너지 공급 차질이 멀리 떨어진 중미와 남미의 바나나 농장부터 미국 식료품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바나나는 생산과 운송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면서도 판매가격은 장기간 낮게 유지돼 온 상품이다.

이란 전쟁으로 연료와 비료, 포장재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그동안 낮은 가격을 유지해 온 바나나 산업의 수익구조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에 따른 비용 부담이 장기화하면 농민들의 생산 축소와 병충해 대응 투자 감소가 겹쳐 향후 바나나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