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는 1만개 품목 가격 내려…캠벨·클로록스는 원가 못 버티고 인상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기업들이 이란 전쟁에 따른 고유가와 관세 부담이 일시적인 충격인지 장기간 이어질 새로운 현실인지 판단하지 못하면서 제품 가격을 놓고 엇갈린 선택을 하고 있다.
비용 상승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며 두 자릿수 가격 인상에 나서는 기업이 있는 반면, 물가가 결국 안정될 것으로 보고 이익을 줄이면서까지 가격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내리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기업들이 높은 에너지 비용의 지속기간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가격책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16일(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최근 미국의 물가상승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가격 결정은 향후 인플레이션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는 비용 못 떠안아”…최대 21% 가격 인상
WSJ에 따르면 미 뉴햄프셔주의 플라스틱 부품업체 앰빅스 매뉴팩처링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력배전업체에 플라스틱 부품을 공급하는 앰빅스는 수개월 동안 원가 급등이 진정될 것으로 예상해 제품 가격을 유지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상승이 플라스틱 원료인 수지 가격을 계속 끌어올리면서 판단을 바꿨다.
공동 소유주인 멜리사 플로리오는 이제 이란 전쟁을 일시적인 가격충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비용 안정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앰빅스는 공급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이를 고객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 올여름 고압 송전선용 플라스틱 절연체 등을 포함한 전 제품의 가격을 10~21% 올렸다.
앰빅스는 이전까지 3년 동안 가격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플로리오는 비용을 회사가 계속 부담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과거에는 외부 충격이 일시적으로 나타나 기업이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충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에너지 물가가 다시 가속하면 그동안 가격을 유지했던 기업들도 결국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디젤 가격은 최근 사상 처음 갤런당 6달러(약 8200원)를 넘어섰다.
◇월마트는 1만개 품목 가격 인하
반대 전략을 선택하는 기업도 있다.
높은 물가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당장의 이익을 줄이더라도 가격을 유지해 경쟁업체의 고객을 끌어오겠다는 계산이다.
월마트는 연료 관련 비용이 수십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지난달 1만개가 넘는 상품의 가격을 인하했다고 밝혔다.
존 퍼너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물가 부담을 겪는 고객을 지원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 우유 등을 판매하는 농부 짐 바버도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다.
바버가 세 개 카운티 떨어진 지역에서 건초를 운반하는 비용은 약 15% 올랐지만 그는 판매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중동 정세가 안정되면 연료 가격도 다시 내려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바버는 “지난 5년 동안 육류 가격을 한 차례만 올렸으며 현재는 높은 투입비용을 이익 감소로 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캠벨·클로록스는 결국 가격 인상으로 선회
당초 가격 인상을 피하려다가 전략을 바꾼 대기업도 늘고 있다.
식품업체 캠벨은 지난 6월만 해도 높은 비용이 결국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가격 조정을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현재는 전체 제품군의 절반이 넘는 품목에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캠벨은 다른 방식의 비용절감을 시도했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상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생활용품업체 클로록스도 올봄 가격 인상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지만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방침을 바꿨다.
클로록스는 이번 회계연도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2억달러(약 2726억원)로 예상하고 있다. 평상시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플라스틱 수지 가격이 오르면서 대표 상품인 글래드 쓰레기봉투 가격도 인상하고 있다.
반려동물 목줄 등을 제조하는 루핀펫 역시 관세와 연료 할증료로 비용이 늘자 올여름 가격을 5% 인상했다.
다만 가격을 계속 올리기도 어렵다. 소비자들이 비필수 제품의 구매 자체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가격전가가 물가 장기화 변수
기업들의 고민은 미국 소비자의 구매력이 이미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 커지고 있다.
인적자원업체 ADPD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말부터 2024년 말까지 임금근로자의 3분의 1 이상이 구매력 하락을 경험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높은 원가를 그대로 떠안으면 수익성이 악화하지만 이를 전부 가격에 반영하면 판매가 감소할 수 있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기업들의 전반적으로 견조한 이익이 많은 기업이 이미 높아진 투입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물가 상승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판단은 크게 엇갈린다.
일부 업체는 중동 정세와 에너지 시장이 안정되면 비용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전쟁과 관세, 연료비 변동성이 이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업환경의 상시적 요소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WSJ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선택하는지,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는지가 앞으로 미국의 물가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