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선유도 칼럼] 국가채무 폭주하는 ‘확장재정’, 경제위기 때 쓸 ‘재정 여유’ 바닥낸다

글로벌이코노믹

[선유도 칼럼] 국가채무 폭주하는 ‘확장재정’, 경제위기 때 쓸 ‘재정 여유’ 바닥낸다

‘반도체 착시’, ‘통계 착시’에 편승하는 역대급 확장재정
기축통화선진국 부채비율 100% 비교…“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꼴”
사진=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26년 일반정부부채(D2) 비율 전망을 보면 미국(129.0%), 일본(226.8%), 프랑스(118.4%) 등 주요 기축통화 선진국은 일찍이 부채비율 100%를 초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과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축통화 선진국의 부채비율 사례를 근거로 적극적 확장재정을 주장하고 있다. "GDP 대비 부채비율 100%를 넘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절반 수준에 불과해 재정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논리다. 기획예산처 역시 이러한 확장 기조에 맞춰 2027년 예산(안)을 전년 대비 12.8% 증액해 외환위기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며 ‘재정과 성장의 선순환’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이 지닌 화폐와 금융의 구조적 차이를 망각한 위험한 비교이고 국민적 기만이다.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은 부채비율 100%를 넘어서는 기축통화 선진국이 아니다. 대상은 자국 통화를 사용하며 부채비율 50~55% 선에서 엄격히 통제하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체코 등 비기축통화 선진국이다. 기축통화 선진국 부채비율의 절반에 불과하므로 국가채무를 더 늘려도 된다는 식의 정치적 발언은 삼가하고, 정책 기조로도 삼지 말아야 한다. 이미 잘못되어가는 선진국 부채비율을 왜 따르려 하는가.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의 금융 구조적 차이 '망각'


부채비율의 절대적 수치만으로 국가재정의 안전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결정적 차이는 ‘발권력’과 ‘자국 통화에 대한 글로벌 수요’에서 발생한다.

기축통화 선진국은 부채 수용력이 있다. 미국, 일본, 유로존 등 기축통화국은 위기 발생 시 자국 통화 표시 국채를 발행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다. 유사시에는 중앙은행 발권력으로 국채를 매입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을 흡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체코, 덴마크, 스웨덴 등 비기축통화국은 사정이 다르다. 경제 규모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을지라도 대외신인도가 흔들리면 국채 수요가 순식간에 급감한다. 부채 축적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자본 유출과 환율 폭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위기(재정위기+외환위기)’에 직면한다.

하버드대 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신흥국 및 비기축통화국이 경험한 외채 위기의 절반 가까이가 GDP 대비 부채비율 60% 미만에서 발생했다. 비기축통화국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 한계선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IMF 역시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 선진국에는 부채비율 60%를 마지노선(Debt Anchor)으로 설정하고, 평상시 50~55% 수준에서 엄격히 관리할 것을 권고한다.

IMF 10월 보고서, ‘통계 착시’와 누적되는 적자성 채무

지난 10월 IMF 보고서에서 한국의 2026년 D2(일반정부부채) 비율 전망치는 기존 54.4%에서 47.3%로 7.1%p 하향 조정됐다. 표면상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통계적 착시에 불과하다. 최근 반도체 수출 특수 등으로 명목 GDP(분모) 추정치가 급증함에 따라 부채비율 하락 착시가 발생했다. 확장재정의 통계적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 일반정부부채(분자) 수치는 지난 전망치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반도체 특수에 의존한 GDP 확장은 지속 불가능하다. 향후 경기 침체로 GDP 증가세가 둔화하면 부채비율은 순식간에 급반등한다.

국제금융협회(IIF) 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명목 성장을 끌어올려 부채비율 상승을 억제한 ‘안정성 착시’”라고 지적하고 “향후 반도체 착시가 걷히면 부채비율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IMF 4월 전망치와 10월 전망치, 그리고 기획예산처의 국가재정운용계획 간 산출 시기와 추정 방식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고무줄 통계’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당사자인 기획예산처가 바라보는 시각과 전혀 다른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변동성이 큰 통계 지표에 기댄 방만한 확장재정은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다.

장제스 정부의 ‘법폐’ 무제한 발행과 정권 몰락…통화팽창과 초인플레이션의 반면교사

국가채무 누적과 무분별한 통화 공급이 초래한 비극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확인된다. 중화민국 장제스 국민당 정부 시절, 전비 조달을 위해 법폐(法幣)와 금원권(金圓券)을 무제한 발행한 결과는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대혼란, 그리고 정권의 몰락이었다.

확장재정으로 국채를 대량 발행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당장 눈앞의 재정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화폐 가치 하락과 물가 폭등이라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정 규율이 무너진 국가의 결말은 예외 없이 가혹했다.

초고령화 지출 급증과 경제위기 대비한 ‘재정적 여유(Fiscal Space)’ 확보해 두어야


반도체 특수 등으로 세수가 일시적으로 늘어나거나 GDP 분모가 커지는 시기야말로 국가재정 건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하지만 최근 정부 정책과 예산 운용 흐름을 보면 세수 증가분을 곧바로 소진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채무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대규모 확장재정을 편성하며 국민과 미래세대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금,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등 법적으로 지급이 강제된 ‘의무지출’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한번 늘어난 의무지출은 향후 경기 악화나 세수 부족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쉽게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프랑스,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 남유럽과 남미 선진·신흥국들의 사례에서 똑똑히 목격해 왔다. 국가채무를 억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치 수준인 일반정부부채(국가채무 포함) 비율 60%를 한도 끝까지 채우거나 넘어서는 순간, 미래세대는 과도한 채무 부담에 눌려 정작 필요한 시기에 추가 국채조차 발행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이는 미래세대의 자율적 정책 선택권과 복지를 사전에 박탈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평상시 재정적자를 엄격히 관리하고 일반정부부채 비율을 50% 이내로 안정적으로 유지해 두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금융위기, 대규모 팬데믹 등 예상치 못한 대외 충격이 몰아칠 때,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Fiscal Space)’가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8년 통합재정 지출규모는 115.4조 원으로 전년 대비 15.1%나 급증했다. 당시 정부는 금융 구조조정, 실업 대책,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확장재정을 집행하며 경제 위기 탈출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러한 대담한 확장재정이 가능했던 근본적 힘은 위기 직전인 1997년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12~13%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 1998년에도 부채비율은 16~17% 선에 그쳤다. 현재 논의되는 부채비율 50~60%대 수준과는 비할 바 없이 튼튼한 재정 여력이 있었기에 위기 시 국가가 주도적으로 재정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주요 선진국(100% 이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국가 빚을 더 늘리기 위한 눈가림이자 국민을 기만하는 명분일 뿐이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 건전화 노력을 통해 미래를 위한 ‘재정적 여유’를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수석 전문위원 h1234@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