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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북극해 뚫은 부산의 컨테이너선…빙판길 뒤에 숨은 지정학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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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북극해 뚫은 부산의 컨테이너선…빙판길 뒤에 숨은 지정학 방정식

- 부산발 컨테이너선 첫 북극 왕복…수에즈 대비 최대 열흘 앞당겨
- 조선 3사 극지 선행 기술 착수…중국 맹추격 맞선 미래 표준 경쟁
- 러시아 통제 해역 통과 부담과 고액 보험료…채산성 검증은 숙제
북극해를 경유해 유럽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판스타 아크로호가 2026년 8월 20일 대한민국 부산 항에 정박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북극해를 경유해 유럽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판스타 아크로호가 2026년 8월 20일 대한민국 부산 항에 정박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로이터

한국 컨테이너선이 사상 처음으로 북극항로를 관통해 유럽을 왕복하는 시범운항을 무사히 마치며 기존 수에즈 항로 대비 운항 일수를 열흘가량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국제 학술 분석 매체 이스트아시아포럼은 10월 29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높은 운영비와 자연재해 위험 속에서도 미래 해양 물류 주도권을 겨냥해 북극항로 개척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극한 환경과 복잡한 국제정치 난제 속에서 부산항을 극지 물류의 거점으로 키우고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포석이다.

유럽 뱃길 단축과 부산항의 길목 이점

팬스타그룹 소속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 8월 부산을 떠나 9월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닿은 데 이어 10월 11일 부산항으로 50일 만에 귀항했다. 한국 국적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유럽 주요 항만을 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경로와 비교해 유럽 항만까지의 운항 시간을 10일에서 길게는 20일까지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운송 기간 단축은 정밀 부품이나 유통기한이 촉박한 특수 화물 시장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지리 위치 면에서 부산항은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중국 주요 항구 도시와 견줘도 북극항로 진입로에 더 가깝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북극 바다로 나아가는 선박 대다수가 부산 앞바다를 지나쳐야 하는 해상 길목이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지리 혜택을 살려 부산을 북극항로 거점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는 북극항로 탐색 지원과 관련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추세다. 부산항만공사 대표단은 지난 3월 노르웨이 트롬쇠를 찾아 북극 해운 협력 체계를 다지기도 했다.

특수 선박 선행 연구와 중국의 추격


북극항로 개척은 장기 관점에서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술 수요를 만들어 낼 통로로 꼽힌다. 북극 항행이 정착되려면 얼음을 깨며 전진하는 쇄빙선, 혹한 추진체계를 얹은 선박, 극지용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같은 고난도 선박 설계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형 조선사들은 선제 연구에 들어갔다. 인하대학교는 지난 9월 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과 함께 선박용 빙해 분석 기술 공동 개발 과제를 시작했다. 당장의 상업 수주를 넘어 북극 바다를 안전하게 가르는 기술 표준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의 공세도 거세다. 중국은 지난 8월 자국 선사가 북극항로 정기 컨테이너선 운항 계획을 최초로 발표하며 실선 운항에서 한발 앞서갔다.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는 화물선 운항도 잦아졌다. 한국은 극지 운항 실적과 선박 설계 역량을 축적해 앞으로 열릴 북극권 해상 규범 제정 과정에서 발언권을 지킨다는 구상이다.

러시아 해역 통과 부담과 안전 비용


청사진 이면에는 만만찮은 걸림돌이 놓여 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북극 얼음이 줄었다고는 하나 유빙은 여전히 강철 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어 배를 띄울 수 있는 기간 자체가 짧다. 사고 발생 시 수색과 구조가 까다로워 선사들이 감당해야 할 보험료 부담도 무겁다.

러시아 통제 해역을 통과해야 하는 점은 복합적인 난제다. 북극항로 대부분은 시베리아 해안선을 끼고 있어 러시아의 관할을 받는다. 뱃길을 열려면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의무로 지정된 쇄빙선 호위 비용도 치러야 한다.

이스트아시아포럼은 대러 제재 국면 속에서 이러한 통항 절차가 국제외교가에서 민감한 시선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북극은 기후변화와 자원 선점이 얽히며 주요 강국이 부딪히는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당장 거둘 수 있는 상업 이익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해양 물류 판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각국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가운데, 높은 비용 부담과 안전 위험을 기술력과 정교한 외교력으로 풀어내는 일이 향후 해운·조선업계의 오랜 과제로 남았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