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석유공룡 5곳 500억 달러 벌고도 정유시설 신설 외면

글로벌이코노믹

석유공룡 5곳 500억 달러 벌고도 정유시설 신설 외면

전쟁 특수에 셸·엑손모빌 자사주 매입 확대…BP는 부채 상환
미국·유럽 정유능력 축소 속 중국·중동은 증설…내년 경유 공급난 지속 전망
미국 텍사스주 패서디나에 있는 발레로의 휴스턴 정유시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텍사스주 패서디나에 있는 발레로의 휴스턴 정유시설. 사진=로이터
세계 주요 석유기업들이 올해 3분기에만 500억 달러(약 66조7900억 원)가 넘는 순이익을 거뒀지만 신규 정유시설 건설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정유시설을 완공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 반면 장기적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어 막대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석유기업들은 신규 생산시설 건설보다 자사주 매입과 부채 상환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기존 정유시설을 확장하거나 가동이 중단된 시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엑손모빌·셰브론·BP·셸·토탈에너지 등 주요 석유기업들이 전쟁으로 늘어난 이익을 주주환원과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하면서 새로운 정유시설 건설은 기피하고 있다고 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 정유시설 신설보다 기존 설비 개선에 집중


FT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5대 석유기업이 올해 3분기에 거둔 순이익은 총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란 전쟁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등으로 세계 연료 공급이 줄어들면서 정유 부문의 수익성이 크게 높아진 결과다.

주요 석유기업들은 기존 정유시설을 거의 최대 생산능력으로 가동하고 있지만 신규 생산시설 건설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경유 공급 부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석유기업들은 현재의 높은 정제마진이 장기간 유지될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대규모 신규 투자보다 기존 시설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 셸 자사주 50억 달러 매입…엑손모빌도 200억 달러 계획


주요 석유기업들이 선택한 자금 활용 방식은 신규 정유시설 투자보다 주주환원과 부채 상환에 가깝다.

셸은 이번 분기의 자사주 매입 규모를 50억 달러(약 6조6790억 원)로 확대했다.

엑손모빌도 내년에 200억 달러(약 26조716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BP는 전쟁으로 늘어난 이익을 주로 부채 축소에 활용하고 있다.

반면 새로운 정유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FT는 주요 석유기업들이 기존 정유시설의 생산량과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소규모 투자는 진행하고 있지만 막대한 자금을 들여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소극적이라고 전했다.

모닝스타의 앨런 굿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신규 정유시설을 건설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새로운 정유시설을 완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재와 같은 높은 정제마진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가공해 생산한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판매가격에서 원유 비용을 뺀 금액이다.

정유시설 건설에는 수년이 걸리지만 현재의 높은 연료 가격과 정제마진이 그때까지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는 의미다.

◇ 엑손모빌 기존 공장 증설…BP도 신규 생산능력 확대 보류


엑손모빌은 미국 텍사스주 베이타운 정유시설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FT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향후 4년 동안 이미 배정한 90억 달러(약 12조222억 원) 규모의 정유 부문 투자계획을 추가로 늘리지는 않을 방침이다.

BP도 신규 정유 생산능력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멕 오닐 BP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독일 겔젠키르헨 정유시설을 매각한 뒤 추가적인 정유시설 매각 계획은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다른 정유업체들도 대규모 신규 시설보다 기존 자산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필립스66은 이번 주 실적 발표에서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을 석유제품 저장·운송 등 중류 부문에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이언 맨델 필립스66 마케팅·상업 담당 수석부사장은 기존 정유시설에 대한 투자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형 사업은 아니라고 밝혔다.

수천만~수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들여 기존 시설의 생산능력과 가동률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일부 업체는 그전에 가동을 중단한 정유시설을 다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발레로는 지난달 30일 라이온델바젤로부터 가동이 중단된 미국 휴스턴 정유시설을 3억2050만 달러(약 4281억 원)에 인수했다.

발레로는 내년 말까지 하루 16만5000배럴의 경질 저유황 원유 처리능력을 우선 복구하고, 이후 중질유 처리로 확대할 계획이다.

◇ 중국·중동 정유능력 늘 때 미국·유럽은 축소


세계 정유산업의 생산능력은 지역별로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중국과 중동의 정유능력은 하루 440만 배럴 증가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유럽과 북미의 정유능력은 하루 210만 배럴 감소했다.

두 지역의 정유 생산능력 변화 방향이 뚜렷하게 엇갈린 것이다.

최근에는 나이지리아·인도·멕시코에서도 새로운 정유시설이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존 정유시설의 효율성을 높이는 투자가 이어지는 반면 신규 대형 정유시설 건설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투자 부족이 에너지 안보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주요 석유기업 경영진을 백악관으로 불러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지도자들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전쟁으로 차질을 빚자 정유시설 확충을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주요 석유기업들은 현재의 높은 이익만으로 장기적인 신규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내년 상반기 브렌트유 120달러 전망…공급 부족 지속 우려


일부 전문가들은 정유시설 공급 부족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으로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라보뱅크의 조 드로라 수석 에너지 전략가는 내년 상반기 브렌트유 평균가격을 배럴당 120달러(약 16만300원)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경유 정제마진도 배럴당 약 100달러(약 13만3600원)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드로라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다시 격화될 경우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과 이란이 이번 전쟁 초기보다 훨씬 큰 규모로 기반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에너지 시설이 공격 대상이 되면 경유와 휘발유의 정제마진뿐 아니라 국제유가도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FT는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재차 높아질 가능성에도 주요 석유기업들이 대규모 신규 정유시설 투자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라고 전했다.

현재의 공급 부족으로 정유업체의 이익이 급증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연료 수요와 투자 회수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새로운 생산시설 건설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