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의 기차에는 1학년 홍성운, 김현수, 2학년 소현성, 허건, 김원빈, 추황길, 오재영이 탑승했다. 방학 2주차에 실시하는 ‘국어여행’이어서 걱정이 되었다. 가족여행이나, 교회 수련회, 학원 수강 등 다양한 사유가 ‘국어여행’과 동반되어 ‘방해(?)’ 아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28일(화),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국어여행’의 첫날부터 아이들은 문자로 학교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대견한 녀석들이다. 방학이면 특별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디, 집에서 나오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이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니던가.
수업은 9시부터 12시 20분까지 진행되었다. 아이들에게는 45분 수업에 잠시의 휴식, 그렇게 4시간의 수업이 진행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국어여행’을 통한 아이들의 흥미유발과 2학기 성적향상이라는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렇게 우리 일곱 식구는 ‘국어여행’ 기차를 타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 첫 시간은 시를 써 보는 것이었다. ‘시’는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학기 중 국어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아이들이 어려워 하는 장르가 바로 ‘시’이다. 시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미지, 주제나 소재,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 시대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말한다. ‘시’를 읽지 않으니, ‘시’를 쓴다는 것은 더욱 힘이 든다. 학기 중 백일장 대회 참가 학생 선발 과정에서도 ‘시’는 아웃사이더다. 거의 대다수 학생이 ‘수필’을 선호한다.
어찌되었든, 아이들에게 ‘시’를 하나 제시하고 ‘모방시’를 작성하게 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를 넘어섰다. 손을 들어 시를 하나 더 작성하면 안 되겠냐(?)는 질문이 10분도 지나지 않아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재미있다며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우, 대단한디, 평상시 볼 수 없었던 여러분들의 감성이 잘 표현되었네요. 부끄럽겠지만, 다른 친구들의 시를 서로 읽어 보면서 감상을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장난은 아니죠 잉.”
“네. 쌤”
“쌤, 현성이는 정말 시인 같아요. 울 현성이가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줄 처음 알았어여. 이런 재능도 있네요. 친구에게. 부러워요.”
“현성이는 좋겠네, 황길이가 칭찬을 해 줘서, 쌤이 볼 때는 황길이 시도 참 좋은디, 창의적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당께, 앞으로도 시간이 되면 느낌 그대로 시로 옮겨보거라 잉.”
공간
소현성(2-2)
빈 공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이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가 들어가
그 공간에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공간은 쓰레기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고
그 공간에다가 예쁜 꽃을 심었습니다.
공간은 예쁜 화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담기는 것에 따라
공간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어떤 것을 담아야 할 지
시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아이들에게 시에 그림을 통한 전달효과를 표현해보도록 지도하였다. 아이들은 이 작업도 재미있게 따라주었다. 친구들이 그리는 그림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친구들아, 오늘 이 수업 작품은 쌤이 코팅해서 개학하면 2층 국어실 게시판에 전시해 줄게. 자신의 시가 부끄러운 친구들 있니? 부끄러울 게 뭐 있어. 이미 너희들은 시인인디. 자랑스러워 하거라. 그리고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국어의 기본이란 것 잘 알제.”
교실 밖은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근디, ‘국어여행’ 기차 교실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열정으로 숨이 막힌다. 어휘력이나 표현력, 그리고 상식이나 지식이, 독서의 양이나 신문 읽기가 부족하다고 해서 울 아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누가 이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무시하려 하는가.

폭염주의보 기사를 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국어여행’은 2015년 뜨거운 여름의 열정을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파일을 만들었다. 컵라면과 아이스크림도 함께여서 너무나 즐거웠다.
사랑한다. 야그들아.
방학 잘 지내고 멋진 추억들 많이 만들어 오거라. 2학기의 재잘거림을 위해......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