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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發 AI 광풍, 닷컴 버블과 '닮은꼴' 위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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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發 AI 광풍, 닷컴 버블과 '닮은꼴' 위험 경고

시스코 주가 25년 만에 닷컴 전성기 수준 회복…美 주식시장 '역사상 최고가' 경신
수익성 없는 AI에 '조 단위' 투자 경쟁…인프라 장비 기업만 막대한 이익 독식
1999년 당시 닷컴 열풍은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으며, 오늘날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과 섬뜩한 유사성을 보인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1999년 당시 닷컴 열풍은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으며, 오늘날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과 섬뜩한 유사성을 보인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25년 전 닷컴 버블의 망령이 2025년 AI 광풍 속에서 다시 돌아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닷컴 버블의 정점이었던 2000년 3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었던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의 주가가 이번 주 25년 만에 당시 수준을 다시 회복한 것은 주가가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고 사례다.

AI 강세론자들은 현재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AI 광풍과 닷컴 버블 사이에 섬뜩할 정도로 닮은 점과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밸류에이션: 역사적 고평가


14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미국 주식의 가치는 다양한 측정 방식으로 볼 때 닷컴 버블 이후 가장 비싼 상태이다. 선행 주가수익비율(Forward P/E Ratio), 주가현금흐름비율 등 모든 지표가 주식이 고평가되었음을 경고한다.
닷컴 버블 당시 나스닥 1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은 약 60배에 달했으며,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선두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각각 5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와 비교해 현재의 AI 광풍 속에서는 엔비디아가 4조 5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최고 기업의 규모는 훨씬 커졌지만, AI 관련성이 없는 S&P 500 종목 중 37%가 하락하는 등 시장의 관심이 AI 분야에 극도로 편중된 것 역시 1999년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S&P 500 종목 중 하락 종목이 상승 종목보다 많았다.

투자: 인프라 경쟁과 '승자 독식'


닷컴 버블이 통신 회사들의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라는 인프라에 100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진행되었다면, 오늘날의 AI는 수조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프라 투자 경쟁에서 '삽과 곡괭이'를 판매하는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독식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닷컴 시대에는 라우터와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한 시스코가 인프라 구축의 최대 수혜자였다. 시스코는 1999년 매출이 40% 이상, 2000년에는 55% 이상 급증하며 투자자들을 열광시켰다.

AI 시대에는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처리 능력을 공급하는 엔비디아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엔비디아의 매출은 최근 12개월 동안 60% 이상 급증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다만, 수익성 측면에서는 차이점이 있다. 닷컴 버블 당시 대부분의 순수 닷컴 기업들은 매출조차 없거나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지만, 현재의 AI 기업들은 최소한 일부 매출은 발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생성형 AI 서비스가 생산 비용 대비 저렴하게 제공되면서 여전히 AI 사업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닷컴 버블과 같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소액 투자자 집중 현상


닷컴 버블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AI 광풍에서도 손실을 내는 소형주에 개인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베팅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러셀 2000 지수(소형주)가 포함 조건에 수익성을 요구하는 S&P 600 지수를 크게 앞지르는 현상은 1999년-2000년과 2020년-2021년(SPACs 및 클린테크 버블)에 이어 올해가 네 번째다. 이러한 투기 열풍은 로빈후드(Robinhood)의 주가를 올해 220% 급등시키는 등, 닷컴 버블 당시 E-Trade(1999년 261% 상승)와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주가 상승 규모의 차이


다만, 이번 AI 광풍은 닷컴 버블에 비해 주가 상승 규모는 상대적으로 완만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1999년 퀄컴 주가는 2620% 폭등했고, 시스코는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올해 엔비디아가 기록한 54% 상승(최고점 기준)이나 다른 주요 메모리 기업들의 3~4배 상승은 닷컴 버블 당시의 극단적인 상승세에는 미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현재의 AI 광풍이 버블로 판명될지 여부는 AI가 약속된 생산성 향상과 그 창조자들을 위한 '높은 이익'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그 후과는 닷컴 버블이 남긴 고통스러운 결과와 매우 유사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