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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강국' 日 체면 구긴 도쿄 올림픽…원인은 '뇌물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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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강국' 日 체면 구긴 도쿄 올림픽…원인은 '뇌물 잔치'

마케팅 에이전시 맡은 '덴츠' 중심으로 카르텔 형성
'역대 최악' 혹평 받았던 개막식 연출도 적극 개입

지난해 8월 8일 거행된 도쿄 올림픽 폐막식 전경. 사진=신화통신·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8월 8일 거행된 도쿄 올림픽 폐막식 전경. 사진=신화통신·뉴시스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가 스폰서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스캔들로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도라에몽·마리오·피카츄 등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올림픽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 또한 뇌물이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도쿄 지방검찰 특별수사부는 지난달 다카하시 하루유키 전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를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했다. 대형 의류업체 아오키(AOKI)의 경영진은 뇌물을 증여한 혐의로 함께 체포됐다. 이달 14일에는 미디어 기업 카도카와(KADOKAWA)의 카도카와 츠구히코 회장 또한 검찰청으로 끌려갔다.
다카하시 전 이사가 뇌물 스캔들의 중심이 된 배경에는 일본 최대 광고전문기업 덴츠가 있다. 그는 과거 덴츠의 전무이사로서 스포츠 비즈니스 사업을 이끌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그를 두고 "회사를 떠난 후에도 올림픽 스폰서 관련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절대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덴츠는 지난 올림픽에서 마케팅 에이전시 사로 참가, 각 기업에서 3000억엔 이상의 스폰서 자금을 끌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덴츠가 대표적인 '친 자민당(자유민주당)' 기업이라는 점을 들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덴츠, 다카하시 전 이사의 뒤를 봐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카하시 하루유키 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 사진=AP통신·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다카하시 하루유키 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 사진=AP통신·뉴시스

다카하시 이사를 중심으로 한 '덴츠 카르텔'은 특정 지역, 기업, 연예인을 올림픽을 통해 홍보할 수 있도록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을 받았던 개막식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올림픽은 당초 일본의 '콘텐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아베 총리는 직접 인기 캐릭터 '마리오'의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도라에몽·헬로키티 등 유명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올림픽 예고 영상도 공개됐다.

그러나 실제 올림픽 개막식에선 선수 입장 순서에 게임 음악을 활용한 행진곡 메들리를 선보였을 뿐, 캐릭터들은 퍼포먼스에서 배제됐다. 이는 케이팝 아이돌을 주요 소재로 한 2018년 평창 올림픽이나 '피터 팬', '해리포터' 시리즈 등 콘텐츠를 적극 활용했던 2012년 런던 올림픽 등과 비교돼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 콘텐츠가 실종됐다"는 평가를 낳았다.

미국 매체 폭스 스포츠는 "리허설이나 다름 없었던 개막식", "멋진 선수들이 텅 빈 스타디움에 모여있다"는 등 네티즌들의 댓글을 종합하며 "역대 최악의 올림픽 개막식"이라고 혹평했다. 영국 매체 폴리틱스의 이안 던트 칼럼니스트는 "장례식장에 온 것 같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게임 캐릭터 '마리오'의 모자를 쓰고 나타나 도쿄 올림픽 예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AP통신·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게임 캐릭터 '마리오'의 모자를 쓰고 나타나 도쿄 올림픽 예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AP통신·뉴시스

일본 매체 분게이슌츄(문예춘추)에 따르면, 당초 올림픽 연출을 맡은 것은 안무가 출신의 연출가 미즈노 미키코였다. 그녀는 인기 애니메이션 '아키라', 게임 캐릭터 '마리오'나 '피카츄' 등 유명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한 개막식 퍼포먼스를 준비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측에서도 이를 호평했다.

그러나 덴츠 측은 자사 출신 광고 전문가 사사키 히로시를 총괄 책임자로 내세워 연출 팀에 압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미즈노 등 연출 담당자들이 올림픽 개최 8개월 전 활동을 중단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업계 일각에선 앞서 언급된 캐릭터들이 개막식에서 배제된 이유가 카도카와가 포함된 '덴츠 카르텔'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카도카와는 게임·만화·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리오·피카츄 등의 원작사 닌텐도, '헬로키티' 판권사 산리오, '아키라' 판권사 코단샤, '도라에몽' 판권사 쇼가쿤샤 등은 모두 카도카와의 업계 라이벌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번 올림픽 뇌물 스캔들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로이터 통신은 도쿄 올림픽 개최를 9개월 앞둔 지난 2020년 10월, "덴츠가 600만달러(약 84억원) 이상의 돈을 들여 IOC에 직접 로비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은 "타카하시 전 이사는 당시 IOC 위원 라민 디악에게 디지털 카메라·시계 등을 선물했는데 그 해 디악 위원은 부패 혐의로 인터폴의 적색 수배 대상자가 됐다"며 "IOC를 비롯한 국제 스포츠 업계 역시 이번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