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상태에서 남녀 간에 성관계가 이뤄지면 하룻밤의 실수나 사고를 넘어 성범죄자가 될 수 있다. 형법에 규정된 준강간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간음하는 죄로 강간죄와 같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한 강간죄와 달리 의식을 잃거나 만취로 인사불성이 된 피해자 상태를 이용한 성관계지만 강간죄와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다.
때론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거짓말하기도 한다. 서로 마음이 맞아서 성관계한 것이고 고소인의 동의가 있었는데도 모종의 이유로 준강간을 당했다고 허위 고소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범죄 혐의를 받고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 중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꽤 많다. 클럽, 헌팅포차, 사교모임 등 이성을 만나거나 유흥을 즐기는 장소에서 술을 마시면서 함께 그 순간을 즐겼는데 예상치 못한 경찰의 연락을 받으면 추억이 악몽으로 변한다.
성범죄는 그 특성상 범행의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한 일이므로 강제로 한 것인지, 만취하여 의식불명이었는지 입증해줄 영상이나 목격자가 없다. 그래서 다른 정황증거를 통해서 혐의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없으면 당사자의 진술로 유무죄를 판단한다. 진술은 직접증거지만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으므로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진술의 신빙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면, A(남)와 B(여)는 직장동료였고 둘 다 기혼자였다. 이들은 회사 사람들과 회식하면서 술을 마신 후 두 사람만 남은 상황에서 성관계를 하였다.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된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데 문제는 B가 A를 준강간죄로 고소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A도 B와 마찬가지로 인지 능력, 통제 능력, 행위 조절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였다. 사건 당시 B는 의식상실인 패싱아웃으로 인정되었고, A는 B의 심신상실 상태를 이용한 간음으로 일견 준강간죄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A 역시 심신상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상대방으로부터 준강간을 당한 것인데, B는 형사고소를 하고 A는 문제 삼지 않아서 B는 피해자가 되고 A는 피의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A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심신상실·미약 감경이 안 된다면 A도 B를 준강간죄로 고소하여 둘 다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 마땅한지, 아니면 서로 합의금을 지급하여 감형이나 선처를 받으면서 합의금을 상계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이때는 심신상실·미약 감경을 인정해 책임을 조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함께 그 시간을 즐기다가 벌어졌고 두 사람 다 만취돼 의식이 없었다면 서로에게 성범죄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먼저 고소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되고 고소당한 사람이 가해자가 된다면 결국 쌍방 고소로 사건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여 무의미한 소모전을 벌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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