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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실리콘밸리, ‘모바일 앱’ 시대 끝…AI 중심 ‘하드테크’ 시대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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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실리콘밸리, ‘모바일 앱’ 시대 끝…AI 중심 ‘하드테크’ 시대로 전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 애플의 쿠퍼티노 소재 사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 애플의 쿠퍼티노 소재 사옥. 사진=로이터

미국 실리콘밸리가 인공지능(AI) 중심의 ‘하드테크’ 시대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화려한 사내 복지와 모바일 앱 개발로 상징되던 과거 ‘웹 2.0’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고성능 그래픽카드와 신경망 알고리즘을 다룰 수 있는 인재만이 살아남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 '맥주 마시며 고액 연봉 즐기던' 시절 끝났다


5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한때 구글, 페이스북(현 메타플랫폼스), 넷플릭스, 애플 등의 IT 기업은 엔지니어들이 사내에서 맥주를 마시고 포커를 즐기면서도 고액 연봉과 주식을 받는 ‘레스트 앤 베스트(rest and vest)’ 문화로 유명했다.
레스트 앤 베스트 문화는 실리콘밸리의 대형 IT 기업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직원이 별다른 업무 없이 쉬면서도 스톡옵션(주식 보상)을 계속 받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AI 기술의 급부상과 함께 ‘신경망’, ‘대형언어모델(LLM)’,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기술 용어가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필수 지식이 됐고 ‘얼마나 많은 엔비디아 H100 GPU를 확보했는가’가 스타트업 성공의 잣대가 됐다.

지난 2010년대 중반까지 실리콘밸리의 중심이던 마운틴뷰, 멘로파크, 팔로알토 등은 현재 샌프란시스코로 중심축이 옮겨졌다. AI 스타트업인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이끄는 이같은 흐름은 전통 대기업들의 대규모 채용 중단과 맞물리며 실리콘밸리 내부 문화와 이념 지형까지 바꿔놓고 있다.

◇ ‘리버럴타리언’ 급부상…국방·무기 스타트업에 돈 몰려


실리콘밸리는 그동안 자유주의를 상징해왔지만 최근에는 ‘리버럴타리언(Liberaltarian)’으로 불리는,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반정부적 성향이 강한 신흥 엘리트층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리버럴타리언이란 진보적 자유주의와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입장이 혼합된 개념이다.

이에 따라 과거 기피 대상이던 국방·무기 산업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핫한 영역’으로 부상했다.

NYT는 “예전의 실리콘밸리가 컴퓨터 앞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며 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슈퍼인텔리전스를 지닌 기계를 만들어 진짜 ‘기계 속 신’을 탄생시키려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서브스택’ 출신 테크 칼럼니스트인 자스민 선은 “AI는 클라우드 기술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오프라인 중심 산업”이라며 “해커하우스와 밋업, 네트워킹 파티에서 아이디어가 오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픈AI와 노션 등이 입주한 샌프란시스코 미션지구와 포트레로힐 사이의 지역은 ‘더 아레나(The Arena)’로 불리며 AI 스타트업 격전지로 주목받고 있다.

◇ AI 붐 속 ‘인력 교체’…테드토크형 인재는 퇴출


AI 붐은 기존 실리콘밸리 기업의 조직 구성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22년 메타는 전체 인력의 3분의 1을 감원했고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직원의 4분의 3을 해고했다. NYT는 “콘텐츠 조정자, 마케터, 미디어 담당자,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 인력은 제거됐고 ‘테드토크 전문가’처럼 보이던 인물은 사라졌다”고 전했다.

반면 ‘딥러닝’이나 ‘신경망 최적화’에 특화된 인력은 공격적으로 채용되고 있다. 벤처자본도 마찬가지다. 한때 암호화폐와 메타버스에 돈을 쏟아부었던 투자자들은 이제 피치덱에 ‘AI’ 또는 ‘머신러닝’이 들어가기만 해도 지갑을 연다.

메타가 최근 143억 달러(약 19조1200억 원)를 투자한 스타트업 스케일AI는 과거 게임회사 징가가 사용하던 샌프란시스코 디자인지구 건물을 인수했다. 우버는 지난해 오픈AI에 50만제곱피트(약 4만6500㎡) 규모의 사무공간을 넘겨줬다. 샌프란시스코 금융지구마저 다시 북적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