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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수출세' 카드 꺼내나…엔비디아에 첫 '통행세' 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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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수출세' 카드 꺼내나…엔비디아에 첫 '통행세' 부과

'미국 우선주의' 관세 전쟁, 수입 넘어 수출까지 번져
의회 승인 없는 초법적 조치…산업계 통제 강화 신호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국 기업 엔비디아에 중국으로 수출하는 AI 반도체 수익의 15%를 '통행세' 명목으로 공유받기로 합의했다. 안보를 명분으로 한 수출 규제가 전례 없는 이익 공유 '거래'로 바뀌면서, 의회 승인 없는 사실상의 세금이라는 논란이 거세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국 기업 엔비디아에 중국으로 수출하는 AI 반도체 수익의 15%를 '통행세' 명목으로 공유받기로 합의했다. 안보를 명분으로 한 수출 규제가 전례 없는 이익 공유 '거래'로 바뀌면서, 의회 승인 없는 사실상의 세금이라는 논란이 거세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넘어 자국 기업의 수출에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중국 수출 수익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도록 한 '통행세' 합의가 그 첫 신호탄이다. 의회 승인 없는 이 같은 조치는 전례 없는 행정권의 확장이자 민간 기업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위험한 선례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 안보 명분 규제에서 '수익 공유' 거래로


이번 일은 올봄 미국 상무부가 '국가와 경제 안보'를 명분으로 엔비디아의 H20과 AMD의 MI308 같은 AI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면서 비롯됐다. 미국의 기술이 중국 '군민융합' 전략에 따라 군사 역량 강화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조치로 중국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은 엔비디아(시가총액 4조4000억 달러)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백악관을 찾아 다각도로 로비를 벌였다. 이러한 로비에 행정부는 지난달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푸는 대가로 반도체 수출 제한을 해제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당시 "우리가 수출을 보류했다가, 중국과의 자석 거래에서 그들에게 다시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거대한 모자이크의 일부"라며 거래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 의회 없는 '통행세'…커지는 비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 칩이 구형인데 판매를 허가해주는 대가를 받는 것"이라며 "중국에 수출 허가를 주는 대신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 발언은 이번 조치가 순수한 안보 정책이 아닌 상업 거래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WSJ은 이를 "사업을 하고 싶으면 마피아에게 돈을 바치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법적 근거도 없는 요구로 기업을 '집단 갈취'하는 모양새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 쪽은 "관련 규정에 따라 미국 정부 지침을 지키고 있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H20 칩은 엔비디아의 최신 고성능 칩 '블랙웰(Blackwell)'에 비해 성능이 낮은 중간급 제품으로, 사실상 규제를 피하려고 일부러 성능을 낮춘 우회용 칩이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블랙웰 칩도 일부 수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내비친 점이다. 그는 이때 칩 판매 수익의 30%에서 많게는 50%까지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 수 있다고 말해, 이번 조치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으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지키려는 안보 목적과 함께, 규제 권한을 써서 직접 경제 이익까지 챙기려는 미국의 이중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편에서는 이번 조치로 중국의 AI 기술 개발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WSJ은 "트럼프가 국가의 긴 팔을 민간 경제 깊숙이 뻗치고 있지만, 공화당 내에서조차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며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