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현대차·엔비디아 합작 '피지컬 AI', 2026년 美 공장 누빈다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현대차·엔비디아 합작 '피지컬 AI', 2026년 美 공장 누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창업자 서울 강연…"로봇은 '몸 달린 지능'으로 진화 중"
"가정용 보급은 시기상조, 산업 현장이 승부처…테슬라도 강력한 경쟁자"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로봇은 더 이상 기계 덩어리가 아니다. 인지하고 이해하며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다."

로봇 산업의 구루(Guru) 마크 레이버트(Marc Raibert) 보스턴 다이내믹스 창업자가 서울에서 던진 화두는 명확했다. 그는 최근 폐막한 '2025 미래 기술 포럼'에서 로봇 산업이 하드웨어 경쟁을 넘어 '지능형 행동(Intelligent Action)' 단계로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제조 역량과 엔비디아의 AI 컴퓨팅 파워가 결합하는 2026년이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분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형태'보다 '능력'…피지컬 AI의 시대


레이버트 창업자는 이날 포럼에서 휴머노이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로봇이 인간의 사지(limbs)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핵심은 상황 인식(situational awareness), 의미적 이해, 그리고 정교한 손 조작 능력"이라고 못 박았다.
그가 정의한 '휴머노이드'는 외형적 유사성이 아닌 '기능적 등가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낯선 환경에서 장애물을 피하고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전제된다면, 사족 보행이든 바퀴형이든 넓은 의미의 휴머노이드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인간 형상을 흉내 내는 데 급급했던 초기 트렌드에 일침을 가하고, '실질적 유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철학을 대변한다.

이러한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로봇 AI 연구소(RAI Institute)'를 설립, 로봇의 운동 신경과 인지 능력을 일치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거대파운데이션모델과 시각-언어 모델(VLMs)을 이식해, 로봇이 눈앞의 상황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즉각적인 물리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엔비디아 동맹, 2026년이 분수령


한국 산업계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 로드맵과 엔비디아와의 협력 관계였다.

업계 소식통과 레이버트의 발언을 종합하면, 아틀라스는 단순 R&D 플랫폼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 투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당장 내년인 2026년부터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아틀라스 검증 프로그램이 가동될 전망이다. 연구실을 벗어난 로봇이 자동차 생산 라인이라는 극한의 실전 환경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 동력은 단연 엔비디아(Nvidia)와의 파트너십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로부터 최신 AI 가속기인 '블랙웰(Blackwell)' GPU 5만 개를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로봇이 복잡한 공장에서 실시간으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수적인데, 엔비디아의 칩이 아틀라스의 '두뇌' 역할을 하며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자동차-로봇으로 이어지는 거대 기술 생태계가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미 산업 현장에서 검증을 마친 사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의 성공 방정식도 아틀라스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스팟은 현재 위험 시설 점검 등에 투입되며 응용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통합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와 노하우는 고스란히 아틀라스의 상용화 밑거름이 되고 있다.

"가정용은 시기상조…테슬라는 강력한 경쟁자"


레이버트 창업자는 경쟁자인 테슬라(Tesla)의 일론 머스크와 휴머노이드 '옵티머스(Optimus)'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머스크가 전기차와 우주 산업에서 보여준 혁신적 성과와 자원 동원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옵티머스 역시 그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노르웨이 '1X' 등 일부 기업이 추진 중인 '가정용 로봇' 시장 진입에는 냉정한 진단을 내놨다. 레이버트는 가정을 "로봇에게 가장 가혹한 환경(the most challenging environment)"으로 규정했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행동, 엄격한 안전 기준 등을 고려할 때 가정용 상용화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가정용 로봇의 도래 시기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통제 가능한 변수가 많은 창고나 공장 등 산업용 자동화가 훨씬 앞서 성숙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막연한 장밋빛 전망보다는 기술적 난이도를 고려한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규제보다 투자"…한국 정부 향한 고언


레이버트는 로봇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에 대해, 인구 구조 변화와 생산성 위기를 해결할 '필수재'라고 반박했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노인 및 장애인 보조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책 입안자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에 기반한 규제 남발을 멈추라"고 조언했다. 과거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초기 인터넷과 AI 투자를 통해 IT 혁명을 이끌어냈듯, 정부는 규제보다 최첨단 연구와 산학 협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RAI 연구소가 서울대, 카이스트와 협력하며 한국의 연구 생태계를 지원하는 것 역시 이러한 장기적 혁신 전략의 일환이다.

로봇은 이제 실험실의 호기심 대상을 넘어,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피지컬 AI'로 진화하고 있다. 현대차와 엔비디아의 기술 동맹, 그리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공학이 빚어낼 2026년의 풍경에 전 세계 테크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