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어센드' 칩 전환 실패 후 엔비디아 복귀…컴퓨팅 인프라 재정비
독자 데이터 부재로 '환각 현상' 심화…바이두·바이트댄스와 격차 확대
독자 데이터 부재로 '환각 현상' 심화…바이두·바이트댄스와 격차 확대

중국 AI 굴기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딥시크가 창사 이래 최대 기로에 섰다. 차세대 인공지능 모델 'R2' 출시가 8개월 넘게 지연되면서, 기술적 완결성과 시장의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명운을 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대만 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 아시아가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 22일 또다시 핵심인 R2가 빠진 업데이트를 공개하면서, 성공 신화 이면에 가려졌던 기술적·전략적 딜레마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R1의 영광과 R2의 지연
딥시크-R1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파였다. 일부 성능 지표에서 오픈AI의 모델을 능가했을 뿐만 아니라, 코드를 전면 공개하는 '완전한 오픈소스' 정책으로 업계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성공은 '오픈소스와 저비용'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차기 모델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안겼다.
당초 2025년 5월 출시를 목표로 했으나, 9월 27일을 기준으로 R1이 출시된 지 250일이 흘렀다. 그 사이 10여 차례가 넘는 R2 출시설이 시장에 나돌았지만 모두 헛소문으로 끝났다. 같은 기간 알리바바의 '큐원', 바이두의 '어니' 등 경쟁 모델들은 수차례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단행하며 무섭게 치고 나갔다. 이제는 출시 시점이 2026년 초로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 기나긴 기다림은 딥시크 내부의 기술과 전략을 둘러싼 고뇌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기술 자립'의 덫과 '데이터 빈곤'의 한계
R2 개발이 표류하자 량원펑 대표는 기본 모델부터 툴체인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오픈소스 생태계' 구축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특히 엔비디아 GPU는 물론 화웨이의 AI 반도체 '어센드' 플랫폼까지 지원하겠다는 계획은 미국의 기술 압박 속에서 자국산 컴퓨팅 자립을 이루려는 중국의 국가 과제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이 야심 찬 계획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딥시크는 차세대 모델 훈련을 어센드 칩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엔비디아의 '쿠다(CUDA)' 생태계에서 화웨이의 'CANN' 프레임워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심각한 불안정성과 병목 현상을 겪었다. 결국 핵심 훈련 작업을 다시 엔비디아의 하드웨어로 되돌려야 했고, 이 '컴퓨팅 전환의 대장정'이 R2 출시를 지연시킨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현재 딥시크는 안정된 운영 환경과 하드웨어 호환성 개선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컴퓨팅 인프라라는 하드웨어 문제뿐만 아니라 '데이터 생태계의 부재'는 딥시크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다. 2025년 중반부터 온라인에서는 "딥시크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는 사용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사실을 왜곡하거나 꾸며내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 빈번해지며 사용자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딥시크가 자체 데이터 공급망을 갖추지 못한 점이 근본 원인이다. R1 모델이 다국적 소스에서 확보한 양질의 데이터로 성공을 거둔 것과 달리, R2는 그보다 훨씬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했지만 중국 내에서 확보 가능한 데이터의 질이 낮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바이두나 바이트댄스처럼 자체 서비스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최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는 딥시크로서는 모델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상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딥시크는 물밑에서 비공개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초기 사용자와 전문가들이 제한적으로 R2 베타 모델을 시험하며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는데, 코딩이나 논리 추론 같은 특정 영역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이지만, 범용성과 다국어 지원, 안정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량원펑 대표 스스로도 현재 모델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R2의 지연이 길어질수록 시장에서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품질이 미달하는 제품을 성급히 내놓는다면 '기술 선도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미국의 수출 통제와 풀리지 않는 컴퓨팅 전환의 숙제 속에서 딥시크가 기술 순수성과 시장 현실주의 사이 어떤 길을 택할지, 중국 AI 업계 전체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