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호텔 1박 500만 원도 '거뜬' vs 실직자는 여행 포기…상위층, 전체 소비 50% 차지하며 경제 양극화 가속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인 대다수는 여행 지출을 줄이지만, 부유층이 숙박하는 고급 호텔 예약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상위·이코노미 호텔 명암 뚜렷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업체 코스타에 따르면 포시즌스, 리츠칼튼, 세인트레지스 같은 최상위 호텔들 매출은 올해 들어 2.9% 늘었다. 반면 이코노미 호텔 매출은 3.1% 줄었다.
코스타 얀 프라이탁 국가 호스피탤리티 분석 책임자는 "상층부는 괜찮은 편이지만, 하층부는 확실히 어렵다"며 "업계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비틀거리고 있지만, 고소득 여행객은 여전히 여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슈빌 소재 럭셔리 트래블 에이전시 제이슨 사트코비악 부사장은 "고객들이 마이애미와 뉴욕, 유럽과 카리브해로 여행하면서 문의가 15% 급증했다"며 "일반 호텔 1박 요금이 대유행 전 약 900달러(약 120만 원)에서 현재 1500~2500달러(약 210만~350만 원)로 올랐다"고 밝혔다. 그는 "가끔 '1박에 3500달러(약 490만 원)라고 하면 절대 예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객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 호텔 평균 1박 요금은 8월 기준 159달러(약 22만 원)로 전년 대비 거의 변동이 없었다. 코스타 자료에 따르면 평균 객실 요금은 8개월 연속 물가상승률보다 느리게 올랐다.
상위 10%, 전체 소비 절반 차지
이런 극명한 격차는 미국 경제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디스 애널리틱스 최신 자료에 따르면 연간 25만 달러(약 3억5600만 원) 이상을 버는 상위 10% 소득층이 올해 2분기 전체 소비 49.2%를 차지했다. 이는 1989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1990년대 초 약 35%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샌디에이고 인근 고급 리조트 란초 발렌시아 밀란 드레이거 총지배인은 "객실 요금이 1박 1000달러(약 14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도 예약이 꾸준히 늘었다"며 "침실 여러 개를 갖춘 독립형 주택은 1박 2만 2000달러(약 3130만 원)까지 하는데 특히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호텔들은 경기 영향을 느끼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2025년은 대단한 해"라고 강조했다.
실직자는 모든 여행 끊는다
보스턴 북쪽에 사는 제레미 부탱(37) 씨는 지난해 12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자리를 잃은 뒤 모든 휴가와 외식, 오락 지출을 끊었다. 부탱 씨는 몇 달간 실업 상태로 지내다가 최저임금을 주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겨우 구했다. 사서로 일하는 아내와 함께 번 돈은 모두 생활비로 나간다.
부탱 씨는 "우리가 버는 돈은 전부 청구서 내는 데 들어간다"며 "예전에는 여행도 다녔고 이탈리아에서 아내에게 청혼도 했지만,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건 우리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급감도 타격
호텔업계 어려움은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더욱 심해졌다. 관광산업 조사기관 투어리즘이코노믹스는 올해 미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지출이 전년보다 8% 이상 줄어 83억 달러(약 11조 8200억 원) 손실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코스타에 따르면 호텔 매출은 2분기 연속 줄었다. 프라이탁 책임자는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대유행, 2008년 대침체, 9·11 테러 여파 때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이 올해 25% 급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는 미국 최대 외국인 관광객 공급국이다. 트럼프 행정부 강경한 이민 정책과 '미국 우선주의' 수사가 외국인 관광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D.C. 바이스로이와 호텔 제나 옥사나 귤나자리안 지역 총지배인은 "정부 직원과 학회 참석자, 외국인 관광객 모두 계획을 다시 생각하면서 예약이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 줄었다"며 "코로나19 뒤 이렇게 나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업계, 고급 호텔로 방향 전환
이런 양극화 현상에 맞서 글로벌 호텔 체인들은 고급 호텔 확대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기존 670개 럭셔리 호텔에 300개 가까이 더 추가할 계획이다. 힐튼 월드와이드도 고급 브랜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현재 36개에서 66개로 거의 두 배 늘릴 방침이다.
댈러스 보험회사 간부 미셸 통(40) 씨는 올해 호화롭게 여행했다. 카리브해에서 섬을 옮겨 다니며 돌아다녔고, 캐나다 몬트리올과 빅토리아 유적지를 둘러봤으며, 페루 마추픽추를 올랐다. 1주일 동안 유럽을 돌아다녔고, 라스베이거스 폰텐블로에서 40세 생일을 보냈다. 그는 오는 가을 서부 해안으로 몇 차례 더 여행할 예정이다.
통 씨 연봉은 2020년 이후 승진으로 75% 올랐다. 그는 로열티 포인트와 신용카드 보상을 활용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통 씨는 "확실히 더 많이 쓰고 있다"며 "나는 다행히 쓸 돈이 있다. 아이도 없다. 대유행이 인생은 짧다는 걸 일깨워줬고, 여행할 여력이 있다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 마셜 코헨 수석 소매 자문관은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전체 70%를 차지하는데, 지금은 주로 부유층이 이런 소비를 이끌어가고 있다"며 "문제는 돈을 쓰는 사람들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저소득층 소비 감소가 생활비 부담 급증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가스와 전기 요금이 각각 전년 같은 달보다 13.8%, 6.2% 급등했다.
금융 데이터 분석 업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한 분석가는 "저소득 가구는 소득 40%를 주거비와 전기료에 쓰는 반면, 고소득 가구는 보통 30%도 안 쓴다"며 "저소득층이 훨씬 더 힘들어하는 핵심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