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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넥스페리아 사태, 네덜란드·中 정면 충돌…글로벌 車 공급망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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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넥스페리아 사태, 네덜란드·中 정면 충돌…글로벌 車 공급망 '휘청'

네덜란드 '안보법' 발동에 中 '500억 개 수출 금지' 맞불
車 업계 '제2 반도체 대란' 공포…대만 파운드리에 긴급 주문 쇄도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네덜란드의 핵심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의 중국계 최고경영자(CEO) 해임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단순한 기업 내부의 경영권 분쟁을 넘어, 미국·중국·유럽 간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비화하며 전 세계 자동차 공급망을 마비시킬 '제2의 반도체 대란'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고 디지타임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이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이례적인 경영 개입에 중국 정부가 500억 개 규모의 반도체 수출 금지라는 초강수로 맞서면서, 세계 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 사태는 네덜란드 칩 제조사 넥스페리아가 직무 정지된 장쉐정(일명 윙 장) CEO가 "거짓"을 퍼뜨리고 "무단 행위"를 했다고 공개 비난하면서 격화됐다. 넥스페리아 본사는 월요일 늦게 발표한 성명에서, 네덜란드 법원의 결정 이후 나온 장쉐정 측의 주장들을 정면 반박했다. 특히 중국 사업장이 네덜란드 본사와 분리되었다는 현지 보도를 "사실과 다르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일축했다. 또한 "모든 직원의 보상과 운영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중국 직원 임금 체불설도 부인했다.

그러나 본사의 반박 직전, 넥스페리아 중국 경영진은 "현지 직원들이 해외로부터의 지시를 무시할 수 있다"며 "중국 법인은 중국에 뿌리를 둔 중국 기업"이라고 선언하는 도전적인 내부 메모를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사와 중국 법인 간의 공방은 양측의 심각한 내부 갈등이 중국과 유럽 간의 지정학적 분열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美 압박 속 네덜란드 '안보법' 발동…中 CEO 해임


네이메헌에 본사를 둔 넥스페리아는 2019년 중국 자싱에 기반을 둔 전자 그룹 윙테크 테크놀로지(Wingtech Technology)가 인수했다. 윙테크 설립자인 장쉐정은 2020년 넥스페리아 CEO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9월 30일, 네덜란드 정부는 민간 기업에는 단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냉전 시대(Cold-War era)'의 국가 안보법인 '물자 가용성 법'을 전격 발동, 넥스페리아의 임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장쉐정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2주 후인 10월 13일, 암스테르담 기업 법원은 거버넌스 위반을 이유로 그를 공식 해임했다.

네덜란드의 이례적인 조치는 수개월간 이어진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2024년 12월 윙테크를 엔티티 리스트(수출 통제 명단)에 올렸으며, 넥스페리아가 수출 제한 면제를 받으려면 장쉐정을 해임해야 한다고 경고해왔다. 미국 관리들은 넥스페리아가 중국 모회사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민감한 기술 이전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 정부는 네덜란드의 개입을 '정치적 간섭'이라 규정하며 즉각 보복에 나섰다.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은 네덜란드 정부의 넥스페리아 경영권 장악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경고했다. 그는 빈센트 카레만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네덜란드 측이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상무부는 넥스페리아 둥관 공장에서 생산되는 약 500억 개의 칩에 대해 수출 금지 조치를 부과했다. 이 조치는 전력 및 자동차용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전례 없는 행보다. 중국 상무부는 네덜란드에 "즉시 실수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하며, 이번 사안을 유럽의 공정성과 산업 주권에 대한 시험대로 규정했다.

車 업계, 60% 공급 차질 '비상'…"11월 셧다운" 경고


그 여파는 즉각적이었다. 넥스페리아는 전 세계 자동차용 전력 및 신호 부품의 약 60%를 공급하는 핵심 업체다. 중국발 수출길이 막히자 유럽과 미국 전역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대체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 통신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칩 부족 사태가 1주일 이내에 핵심 부품 공급업체들을 강타할 것이며, 10일에서 20일 이내에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과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대체 공급품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르면 11월부터 생산 라인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들은 동등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타이완 세미컨덕터(타이완 세미), 판지트 인터내셔널(판지트), 액트론 테크놀로지(액트론) 등 대만 칩 제조사들에게 긴급하게 눈을 돌리고 있다. 개별 반도체 및 전력 소자 분야에서 넥스페리아와 경쟁해 온 이들 기업은 현재 긴급 주문과 생산 이전 물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는 2021년 자동차 산업을 마비시켰던 글로벌 칩 부족 사태를 연상시키지만,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더 날카로운 변수가 개입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빈센트 카레만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은 이번 주 중국 관리들 및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만나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설명할 예정이다.

그는 "조치가 없었다면 유럽은 이 필수 칩들을 외국 세력에 100% 의존하게 되었을 것"이라며 유럽의 반도체 독립을 위한 필수적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별도 성명을 통해 "건설적인 해결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중국 당국과 계속 접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미국과의 무역 회담을 앞두고 유럽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생했다. 유럽연합(EU)의 마로시 셰프초비치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화요일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럽과 글로벌 차원의 파급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이 심각한 양자 간 문제"에 대해 양측이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양측 모두 시간이 핵심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중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희토류 및 기타 핵심 광물에 대한 새로운 수출 통제를 발표한 것도 이러한 긴장 관계를 고조시키는 요인이다. 왕원타오 부장은 이에 "정상적인" 관행이라며, 중국이 EU 기업들의 수출 승인을 지속적으로 촉진해왔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향후 브뤼셀에서 중국-EU 수출 통제 대화 메커니즘을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윙테크는 2006년 모바일 기기용 독립 디자인 하우스(IDH) 및 제조자 설계 생산(ODM) 업체로 설립됐다. 화웨이, 샤오미, 삼성 등에 스마트폰을 공급하며 급성장했으나, 2018년 매출 총이익률이 7.56%까지 떨어지는 등 한계에 직면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윙테크는 2017년 NXP 반도체에서 분사한 넥스페리아가 매물로 나오자 인수에 착수, 2020년까지 다단계 과정을 거쳐 인수를 완료했다. '뱀이 코끼리를 삼킨 격'으로 불리는 이 인수를 통해 윙테크는 자동차, 산업용 핵심 소자에 강점을 가진 넥스페리아를 품에 안았다.

윙테크는 2024년까지 모든 부채를 상환하고, 반도체 부문에서만 147억 위안(약 20억 6000만 달러)의 매출과 37.5%에 달하는 높은 마진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변신했다. 2024년에는 기존 ODM 사업부마저 럭스셰어 프리시전에 매각하며 칩 제조에 전념했다. 하지만 2025년 9월, 네덜란드 정부가 윙테크의 넥스페리아 경영권을 전격 동결하고 CEO의 권한을 정지시키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윙테크와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