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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희토류 복원 의지 견제... 中, 말레이시아 거점서 '부품 차단'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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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희토류 복원 의지 견제... 中, 말레이시아 거점서 '부품 차단' 보복

"中 그립 너무 세다"... 韓·美·日 합작 '희토류 허브' 말레이시아의 딜레마
라이나스 공장, 韓·日·美 합작 허브로 육성... 中 '블랙박스' 기술 이전으로 영향력 확대
미국이 말레이시아를 새로운 희토류 공급망 거점으로 낙점하고 동맹국과 투자를 집중하려고 하지만, 이미 현지 생태계를 장악한 중국 견제가 거세 '공급망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말레이시아 희토류 공장 모습.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 말레이시아를 새로운 희토류 공급망 거점으로 낙점하고 동맹국과 투자를 집중하려고 하지만, 이미 현지 생태계를 장악한 중국 견제가 거세 '공급망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말레이시아 희토류 공장 모습.사진=로이터
미국이 중국의 희토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새로운 공급망 거점으로 낙점하고 동맹국과 투자를 집중하려고 하지만, 이미 현지 생태계를 장악한 중국 견제가 거세 '공급망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1(현지시각) '미국의 희토류 야망은 말레이시아에 집중되지만, 중국은 이미 그곳에 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미·중 간 치열한 자원 확보 경쟁의 실태를 보도했다.

'탈중국' 기수 자처하는 美... ·日 동맹과 '슈퍼 자석' 허브 구축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70%, 가공의 90%를 장악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말레이시아 파항주()에 위치한 호주 기업 라이나스(Lynas)의 정련 시설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밖에서 가동하는 유일한 대규모 희토류 정련 시설인 이곳은 최근 미국의 구상대로 '()중국 연합전선'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달 초 "중국이 우리 머리 위에 드리운 칼날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이번에는 동맹국들을 규합했다"라고 밝혔다. 실제 라이나스 공장은 일본 국영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으며, 곧 한국 기업이 개발한 '슈퍼 자석' 공장이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라이나스는 지난달 11700만 달러(1720억 원) 규모의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자석 제조업체인 'JS링크'와 미국 '노비온 마그네틱스(Noveon Magnetics)'와의 파트너십이 포함됐다. 이들 기업은 생산된 자석을 미국 방어 체계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데이비드 메리먼 '프로젝트 블루' 이사는 라이나스 말레이시아 공장을 두고 서방의 공급망 전략을 이끄는 '횃불 운반자(torch bearer)'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해 말레이시아 측으로부터 "희토류 분야를 미국 기업과 협력해 육성하고, 대미 수출을 제한하지 않겠다"라는 확약을 받아냈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관계자들도 최근 현지를 찾아 기술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미국의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부품 끊고 광산 선점... 중국의 노골적인 '사다리 걷어차기'


하지만 중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중국 공급업체들은 라이나스 공장에 들어가는 중국산 기계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이 탓에 라이나스는 더 비싼 대체 부품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만다 라카즈 라이나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중국의 장비 제약으로 비용 불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라고 토로했다.

중국은 말레이시아 내 광산 개발 단계부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22년 페락주에 설립된 'MCRE 리소스'는 중국 기술인 '현장 침출(in situ leaching)' 공법을 도입해 희토류를 채굴하는 말레이시아 최초의 기업이다. 이 기업은 표면적으로는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합작사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중국인 쑤윈춘이 주도하고 있다.
닉 나즈미 닉 아흐마드 전 말레이시아 천연자원환경기후변화부 장관은 "당초 MCRE의 광석을 라이나스로 보내 국내에서 가공하려 했으나, 중국 측으로부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다"라고 폭로했다.

실제 MCRE의 투자자 공개 자료를 보면, 채굴된 생산물 전량이 중국 국영 '중국희토류그룹'의 자회사로 팔려나갔다. 림 웨이 훙 '서던 얼라이언스 미네랄' 전무는 "장비와 화학물질 등 모든 투입 요소가 중국산이라 공급이 끊길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라며 "우리는 공급망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이 없다"라고 털어놨다.

"기술만 주고 노하우는 안 준다"... '블랙박스' 전략의 유혹


말레이시아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펴고 있다. 텡쿠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 장관은 "우리는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 공급망과 경쟁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중국 기업의 투자도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기술이전을 꺼리는 서방과 달리, 말레이시아에 정련 공장 설립을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하워드 리 말레이시아 의원은 중국이 '노하우 이전이 거의 없는' 방식의 공장 설립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중국 연구기관인 '희토류산업연구'는 이를 '블랙박스(black box)'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광물을 받는 대가로 기술을 공유하되, 중국 엔지니어가 파견돼 운영을 주도하는 아프리카 구리 광산 모델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핵심 기술이나 운영 노하우는 말레이시아에 넘기지 않고 껍데기만 현지에 두겠다는 의도다.

"더 공격적인 전략 필요"... 미완의 과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의 '공급망 무기화'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이크 설리번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주 '차이나토크' 팟캐스트에 출연해 "미국은 특정 정련소를 파산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중국의 능력을 아직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다"라며 "훨씬 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텍사스주 시드리프트에 건설하려던 라이나스 공장이 비용 문제 등으로 불확실성에 빠진 점도 악재다. 반면 말레이시아에는 디스프로슘, 터븀 등 방위 산업에 필수적인 중()희토류가 풍부하다.

창 리 캉 말레이시아 과학기술혁신부 장관은 "순수하게 채굴만 하는 협력은 원치 않는다"라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하워드 리 의원은 "중국이 제시하는 제안을 거절할 여유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라고 우려했다. 라이나스가 상업적 규모로 처리할 수 있는 중희토류는 두 종류뿐인 반면, 중국은 가돌리늄, 이테르븀, 루테튬 등 거의 모든 희토류 원소를 처리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맹을 규합해 말레이시아에서 반격을 꾀하고 있지만, 자본과 기술, 원료를 움켜쥔 중국의 그립(Grip)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