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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개인정보 고위험' 논란…"TV 끄면 녹화 불가, 광고 노출 꼼수" 주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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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개인정보 고위험' 논란…"TV 끄면 녹화 불가, 광고 노출 꼼수" 주장 나와

2025년 호주발 '데이터 프라이버시' 역풍…하드웨어 명가에서 '광고판' 변신에 소비자 반발
LG 전자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LG 전자 로고. 사진=로이터
LG전자가 최근 호주에서 한 스마트 TV 운영체제(webOS) 업데이트로 사용자 동의 없이 핵심 녹화 기능을 없애고, 수익 창출을 위해 시청 데이터 수집을 사실상 강요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호주 유력 IT 전문 매체 채널뉴스(ChannelNews)는 지난 23(현지시간) "LG TV나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는 소비자에게 '고위험(High Risk)'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LG전자가 최근 단행한 webOS 업데이트 이후 TV가 꺼진 상태에서 방송을 녹화하는 기능(PVR)이 작동하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는 이를 단순한 기능 오류가 아니라, 사용자가 TV를 켜두도록 유도해 시청 데이터를 수집하고 광고를 노출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핵심 기능 슬그머니 삭제"…소비자 기만 논란


논란의 발단은 LG전자가 최근 호주 시장에 배포한 webOS 최신 업데이트다. 하비 노먼(Harvey Norman), JB 하이파이(JB Hi-Fi) 등 현지 대형 유통채널에서 LG 스마트 TV(모델명 C4 )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업데이트 직후 기존에 잘 쓰던 '대기 모드 녹화' 기능이 차단됐다고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한 소비자는 "최신 기능을 유지하려고 업데이트를 했는데, TV 전원을 끄면 예약 녹화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TV가 켜져 있을 때만 녹화할 수 있다면 녹화 기능 자체가 무용지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LG전자 고객센터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초기에는 문제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다가, 거듭된 항의 끝에 "무료 방송(Free-to-air) 저작권 문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저작권 문제라면 TV가 켜져 있을 때도 녹화가 안 돼야 한다"며 회사의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현지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LG전자가 사용자로 하여금 TV 전원을 끄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한다. TV가 켜져 있어야 LG의 광고 플랫폼이 작동하고, 시청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능을 뺀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기기를 '데이터 수집 단말기'로 활용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드웨어 기업서 '광고판'으로…데이터 장사 본격화 논란도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LG전자의 사업 구조 재편이 자리 잡고 있다. LG전자는 단순 가전 판매를 넘어, 전 세계에 깔린 수억 대의 기기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광고와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초 호주 법인의 광고 사업 부문인 'LG 애드 솔루션즈(LG Ad Solutions)' 조직을 확대하고 알렉스 블런델 존스(Alex Blundell Jones)를 커머셜 디렉터로 선임했다. 이 조직의 핵심 임무는 LG TV와 가전에서 수집한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데이터 수집의 핵심 기술은 '자동 콘텐츠 인식(ACR·Automatic Content Recognition)'이다. LG TV '라이브 플러스(Live Plus)'라는 이름으로 탑재된 이 기능은 사용자가 현재 무엇을 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식별한다. 공중파 방송뿐만 아니라 셋톱박스, 스트리밍 서비스, 연결된 게임기 화면까지 분석해 시청 습관을 파악한다.

LG2021년 인수한 데이터 분석 기업 알폰소(Alfonso)의 기술력을 더해 맞춤형 광고 타기팅 정교화를 꾀하고 있다. 스마트홈 플랫폼인 'LG 씽큐(ThinQ)' 앱은 세탁기, 에어컨 등 생활 가전의 사용 패턴까지 수집한다. 최근 스마트홈 허브 기업 '아톰(Athom)'을 인수한 것 역시 타사 기기로 데이터 수집 범위를 넓히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동의 안 하면 TV 못 써"…불투명한 추적과 보안 구멍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 수집이 소비자의 명확한 인지 없이, 혹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채널뉴스와 스마트하우스(SmartHouse)가 진행한 테스트 결과, 사용자가 LG TV의 초기 설정 단계에서 방대한 분량의 이용 약관과 개인정보 처리 방침에 동의하지 않으면 스마트 기능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소비자 데이터 및 디지털 권리 센터(CDD) 관계자는 "LG의 소프트웨어는 핵심 기능을 볼모로 잡고 소비자에게 데이터 수집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LG 측은 '개인정보 보호 센터'를 운영하며 철회를 선택할 수 있다고 안내하지만, 전문가들은 추적 비활성화 메뉴가 깊숙이 숨겨져 있어 일반 사용자가 찾기 어렵고, 설령 기능을 꺼도 데이터 전송이 완전히 차단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보안 취약성도 우려를 키운다. 사이버 보안 연구가들은 최근 webOS에서 동일한 와이파이(Wi-Fi) 네트워크에 접속한 해커가 인증 절차를 우회해 TV 제어권을 탈취할 수 있는 보안 허점을 발견했다. TV가 가정 내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만큼, 이러한 보안 공백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호주 시장에서의 이번 논란은 데이터 중심 사업 모델로 전환하려는 글로벌 가전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비자 경험 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과도한 정보 수집과 선택권 제한이 브랜드 신뢰도를 깎아먹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LG전자는 호주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확고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등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의 최신 자료(20251분기 기준)에 따르면, 한국·호주 등을 포함한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LG OLED TV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71.8%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평균(52%)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호주 소비자들이 LG전자의 프리미엄 라인업을 매우 선호함을 보여준다.

LG전자의 스마트 TV 플랫폼인 'webOS'20252월 기준 호주 내 약 170만 대의 스마트 TV에 탑재되어 구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이번 데이터 프라이버시 논란이 소수 기기가 아닌 호주 전역의 광범위한 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