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침체, 회복에 최소 5년 걸린다"... 러우지웨이 전 재무장관 경고
10월 신규 주택 가격 최대 폭 하락... 화샤싱푸(CFLD) 등 기업 연쇄 부도 위기 '현실화’
10월 신규 주택 가격 최대 폭 하락... 화샤싱푸(CFLD) 등 기업 연쇄 부도 위기 '현실화’
이미지 확대보기에포크타임스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중국 국가통계국 데이터와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중국의 주택 시장 침체가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보도했다.
"선분양제가 부실 키워"... 구조 개혁 없이는 회복 요원
러우지웨이(Lou Jiwei) 전 중국 재무장관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신 서밋(Caixin Summit)에서 "부동산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중국 부동산 부문을 안정적인 모델로 전환하는 데 최소 5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의 재정을 이끌었던 거물급 인사가 공개석상에서 이처럼 장기적인 침체를 예고한 것은 이례적이다.
러우 전 장관은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핵심 원인으로 '선분양제'를 지목했다. 그는 "개발사들이 착공도 하기 전에 주택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선분양 시스템이 위험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개발사들이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받은 계약금을 다른 프로젝트의 부실을 메우는 데 유용하는 관행이 만연했고, 자금줄이 마르자 공사가 중단되는 현장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행 선분양 모델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완공 후 분양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과정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단기간 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10월 주택 가격 '날개 없는 추락'... 투자 심리 얼어붙어
실물 경제 지표는 러우 전 장관의 경고를 뒷받침한다. 지난 10월 중국 주요 70개 도시의 신규 주택 가격은 전달보다 0.5% 떨어졌다. 이는 9월 하락 폭(0.4%)보다 커진 수치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하락 폭은 2.2%에 이른다. 통상 가을은 이사철 성수기로 꼽히지만, 올해는 '성수기 효과'가 실종됐다.
기존 주택(중고 주택) 가격 하락세도 가파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쉬 톈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고 주택 가격의 전월 대비 하락 폭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며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베이징 당국이 더 공격적으로 개입해야 할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개발 투자도 쪼그라들었다. 올 1월부터 10월까지 부동산 개발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7% 줄었다.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하는 '부동산 경기 지수'는 10월 기준 92.43까지 미끄러졌다. 기준치인 100을 크게 밑도는 수치로, 시장이 극심한 수축 국면에 있음을 보여준다.
417만 위안 못 막아 법정 관리... 무너지는 기업들
2020년 중국 당국이 도입한 강력한 대출 규제인 '3개 레드라인(Three Red Lines)' 이후 시작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는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때 자산 규모 1000억 위안(약 20조 7500억 원)을 자랑하던 대형 개발사 화샤싱푸(CFLD)는 지난 16일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화샤싱푸를 법정 관리로 내몬 결정적 계기는 거액의 채권이 아닌, 약 417만 위안(약 8억 6500만 원)에 불과한 미지급 공사 대금이었다.
대만의 난화대학교 쑨궈샹 교수는 "이처럼 작은 규모의 채무 불이행으로 기업이 넘어간다는 것은 개발사들의 현금 보유고가 바닥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미국 기반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웡은 "은행 빚이나 채권 같은 금융 부채는 구조조정이 진행됐지만, 하청업체나 공급업체에 줘야 할 운영 부채가 해결되지 않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의 부동산 연구기관인 중국지수연구원(China Index Academy)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개발사는 77곳에 이른다. 이 중 구조조정 계획을 승인받은 곳은 20여 곳에 불과하다.
지방정부 빚더미·인구 절벽... 'L자형' 침체 공포
전문가들은 이번 침체가 단순한 경기 순환적 불황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데이비드 웡은 "지난 20년 넘게 빚으로 쌓아 올린 주택과 토지 확장의 거품을 걷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부동산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양위안천 IMF 이코노미스트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과 관련 공급망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부동산이 무너지면 철강, 시멘트, 가전 등 연관 산업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구조다.
지방정부의 재정 위기도 심각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분석을 보면,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1년 지방정부 재정 수입의 약 38%가 토지 사용권 매각 등 부동산 관련 수입이었다. 땅이 팔리지 않자 지방 재정에 구멍이 뚫렸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정부 자금조달기구(LGFV)의 부채 문제는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그룹 BBVA는 LGFV가 갚아야 할 부채 규모를 약 78조 위안(약 1경 6180조 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중국 전체 경제 규모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쑨궈샹 교수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젊은 층이 대도시로 떠나면서 중소도시의 주택 수요가 구조적으로 감소했다"며 "여기에 미완공 아파트 사태로 무너진 시장 신뢰가 회복되지 않아 당국의 부양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갑을 닫은 중국인들, '소비 다운그레이드'의 공포
부동산 거품 붕괴는 단순한 수치의 하락을 넘어 중국인들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중국 가계 특성상, 집값 하락은 곧바로 '내 자산이 줄었다'는 공포(역자산 효과)로 이어진다. 이는 극단적인 소비 위축을 부르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대신 초저가 쇼핑몰 핀둬둬를 이용하고, 스타벅스 대신 9.9위안(약 1900원)짜리 저가 커피를 마시는 '소비 다운그레이드(Consumption Downgrade)'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청년들은 취업난 속에 소비를 거부하는 '탕핑(누워있기)'을 넘어, 부모의 연금에 기생하는 '전업 자녀'로 전락하고 있다. 내수 부진이 기업 수익 악화로, 이것이 다시 임금 삭감과 고용 한파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중국 대륙을 덮치고 있다. 러우 전 장관의 "5년"이라는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