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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 엔비디아에 HBM4 '제값 받기' 승부수…"SK하이닉스와 동등한 가격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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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 엔비디아에 HBM4 '제값 받기' 승부수…"SK하이닉스와 동등한 가격 원해"

HBM3E 굴욕 딛고 차세대 제품서 가격 주권 회복 시도…엔비디아 공급망 불안 파고들어SK하이닉스 500달러대 합의설 속, 삼성 1c D램 수율 50% 극복이 관건…조기 공급 가능성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삼성전자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판도를 뒤집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를 던졌다. 현재 엔비디아와의 HBM4(6세대) 가격 협상 막바지 단계에 돌입한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동등한 수준(Price Parity)'의 가격 책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 5세대 제품인 HBM3E 공급 과정에서 겪었던 가격 열세를 만회하고, 엔비디아의 공급망 불안 심리를 역이용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7일(현지 시각) 반도체 업계와 외신 트렌드포스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재 엔비디아와 내년도 HBM4 공급 단가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협상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늦어도 연말 안에는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삼성이 '가격 할인'이라는 기존의 추격자 전략을 버리고, '제값 받기'로 선회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의 디스카운트는 없다"…삼성의 배수진


업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삼성이 내부적으로 HBM4 12단 제품의 가격을 SK하이닉스와 동일하게 맞추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고 전했다. 이는 현재 시장 판도와는 대조적인 행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하면서 SK하이닉스 대비 약 30% 낮은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발 주자로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HBM4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삼성의 판단이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SK하이닉스의 물량만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공급자 우위'의 시장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엔비디아의 강력한 수요는 삼성 제품을 더 높은 가격에라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삼성 입장에서는 굳이 HBM4 가격을 낮춰 부를 명분이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만약 삼성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 HBM3E 시장에서 벌어졌던 양 사 간의 가격 격차는 HBM4 세대에서 급격히 축소될 전망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DS) 수익성 개선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HBM4 가격 500달러 돌파하나…치솟는 몸값


이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HBM4의 예상 가격대는 메모리 반도체가 더 이상 단순 부품이 아님을 증명한다.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엔비디아와 HBM4 공급가를 500달러(약 73만 원) 중반대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존 HBM3E 12단 제품 가격이 300달러 중반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50% 이상 급등한 수치다.

물론 원가 상승 요인도 존재한다. SK하이닉스는 HBM4 생산 공정에서 베이스 다이(Base Die) 제조를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에 맡기면서 전체 생산 비용이 약 30%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엔비디아와의 가격 협상에서 비용 상승분 이상의 프리미엄을 확보함으로써 수익성을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역시 이러한 시장 가격 형성 기류에 편승해 HBM4의 고가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1c D램에 사활 건 삼성…범용 D램 수익성도 '투트랙'


삼성전자는 가격 협상과 동시에 생산 능력(CAPA) 확충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HBM4의 핵심인 10나노급 6세대(1c) D램 생산 라인 증설이 핵심이다.

현재 월 2만 장 수준인 삼성전자의 1c D램 생산 능력은 2026년 말까지 월 15만 장 규모로 7배 이상 확대될 예정이다. 이는 향후 폭증할 HBM4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다만 삼성은 급격한 라인 전환보다는 점진적인 증설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외신은 "삼성전자가 내년도 경영의 핵심을 '수익성 확보'에 두고 있다"며 "이에 따라 당분간은 HBM보다는 수익 구조가 안정적인 범용(Legacy) D램 생산에 더 비중을 둘 것"이라고 전했다. 무리한 HBM 올인보다는 범용 제품과 차세대 제품 간의 균형을 맞추며 실적 안정을 꾀하겠다는 계산이다.

'수율 50%'의 벽…조기 공급의 열쇠


시장의 관심은 삼성전자가 과연 '언제' HBM4를 엔비디아에 공급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통상 HBM 개발 및 인증은 '워킹 다이(WD) → 엔지니어링 샘플(ES) → 커스터머 샘플(CS)'의 3단계를 거친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9월 엔비디아에 ES를 제공했으며, 이달 중 인증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양산용 샘플(CS) 공급이 이어지며, 최종 품질 승인(Qual)은 2026년 초로 점쳐진다.

당초 업계에서는 삼성이 내년 초 인증을 통과하더라도 실제 양산 및 출하 시점은 하반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HBM4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급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요청에 따라 삼성의 공급 시점이 이르면 2026년 2분기까지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내년 상반기 HBM4 시장을 SK하이닉스가 독점할 것이라는 당초 전망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공급 격차가 6개월에서 1분기(3개월) 내외로 좁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후의 걸림돌은 여전히 '수율(Yield)'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HBM4용 1c D램 수율은 5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웨이퍼 두 장 중 한 장은 불량이라는 의미로,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결국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의 가격 줄다리기에서 승리하고 조기 공급까지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남은 기간 동안 이 수율을 양산 가능한 수준까지 얼마나 빠르게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엔비디아라는 거대한 수요 앞에서 삼성이 던진 '가격 동등화' 승부수가 과연 기술적 완성도라는 뒷받침을 통해 결실을 맺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