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T 졸업생 미국 진출 50%→10%로 급감
H-1B 비자 70% 점유 인도 인재, 스타트업 붐 타고 '역이민' 가속
트럼프 비자 수수료 100배 인상 충격에 독일·영국·중국 인재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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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레스트오브월드(Rest of World)가 최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수치 감소가 아닌 인도 기술 인재의 세계관 전환을 의미한다.
40년 만에 역전된 인재 흐름
카르틱 라마니 퍼듀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레스트오브월드와 인터뷰에서 "인도에서 컨설팅, MBA 분야 취업 기회가 늘어나면서 미국의 전반적 매력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라마니 교수는 1985년 인도공대(IIT) 마드라스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5년간 미국 학계에서 종사해 왔다. 그에 따르면 한 세대 전만 해도 IIT 학부 졸업생의 절반이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현재는 10~20%에 그친다.
2025년 같은 학교 같은 전공으로 졸업한 니샨트 바산의 선택은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바산은 선배들의 전통적 경로인 미국 대학원 진학 대신 일본 혼다자동차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연구직을 택했다.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비자 문제와 상관없이 일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거기서 하는 일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레스트오브월드에 밝혔다. 바산은 "두바이, 일본,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많이 안다"며 "IIT 졸업생들에게 미국만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 다른 대안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졸업생 절반이 인도로 돌아가 창업"
변화의 핵심에는 인도 국내 창업 생태계의 성장도 있다. 스타트업 정보 분석기관 딜룸(Dealroom) 자료에 따르면 인도는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4600억 원) 이상 '유니콘' 기업 집중도에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벤처 투자금 유치 규모로는 세계 4위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 인도계 미국인 아르준 라마니는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MIT 경제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는 레스트오브월드에 "인도에서 1년간 일했는데, 대학원 진학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있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인도에 돌아갈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탠퍼드에는 매년 10~15명 이상의 인도 출신 학생이 입학하는데, 과거에는 미국 학부를 마친 뒤 미국에 남으려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 동기 절반 이상이 인도로 돌아갔고, 많은 이들이 인도에서 회사를 창업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벵갈루루에 본사를 둔 사르밤AI(Sarvam AI)는 인도의 모든 언어와 방언을 지원하는 대형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있다. 현지 시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 기업이 풀기 힘든 문제를 인도 스타트업이 직접 해결하는 사례다. 인도 정부도 지난해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8300억 원) 규모의 '인도 AI 미션'을 출범해 GPU 인프라 구축과 AI 혁신 허브 지원에 나섰다.
H-1B 비자 수수료 100배 인상 충격
인도 기술 인재의 미국 이탈을 가속하는 외부 요인도 있다. 미국 이민서비스청(USCIS)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H-1B 비자 소지자의 약 71%(28만 3397명)가 인도 국적자다. H-1B 비자 10명 중 7명이 인도인인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 19일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약 146만 원)에서 10만 달러(약 1억 4600만 원)로 100배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시 서명식에 참석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최대 6년간 매년 10만 달러를 납부해야 한다"고 발언해 혼란이 일었다. 그러나 다음 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연간 수수료가 아니라 신규 신청 시에만 적용되는 일회성 수수료"라고 정정했다. 레빗 대변인은 "기존 비자 소지자와 갱신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 조치가 발표된 시점은 피유시 고얄 인도 상무부 장관이 무역 협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기 하루 전이었다. 인도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를 정조준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JP모건의 토시 자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자 규제는 인도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을 줄여 루피화 약세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파견된 노동자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 규모는 연간 약 350억 달러(약 51조 3700억 원)에 이른다.
유럽·아시아, 인도 인재 쟁탈전 본격화
미국의 비자 장벽이 높아지자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인도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필립 아커만 인도 주재 독일 대사는 최근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영상에서 인도 인재들의 독일행을 권고했다. 그는 독일의 이민정책을 '독일 자동차'에 비유하며 "신뢰성이 높고 예측 가능한 독일차처럼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규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독일에서 일하는 인도인은 12만 4000여 명으로 대부분 IT와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한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내각의 '글로벌 인재 태스크포스(TF)'는 비자 신청 수수료를 인하하고 외국 학자와 IT 전문가들의 영국 이주를 쉽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국의 글로벌 인재 비자 수수료는 1000파운드(약 195만 원)로 미국의 기존 H-1B 수수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도 젊은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전문비자인 'K비자'를 신설해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한다.
인도 기술 인력 진출 변화가 한국 기술 인력에 주는 변화
인도 기술 인재의 미국 이탈 흐름은 한국에도 주목할 일이다. 주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한국인에게 약 2800개의 H비자(취업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H-1B 비자 소지자 가운데 인도(71%), 중국(12%)에 이어 한국인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수수료 인상의 영향권에 있다.
올해 H-1B 비자 신청은 47만 건 이상 접수돼 8만 5000개 쿼터의 5배가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추첨에서 선정되더라도 20~30%가 다양한 이유로 거절되는 상황이다. 미주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민 전문가들은 "수수료가 10만 달러로 오르면 사실상 전문직 취업비자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연봉에 더해 10만 달러의 수수료까지 부담할 기업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인도 대한민국 대사관이 최근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H-1B 제한은 해외 고용 증가로 이어지며, 그 효과는 캐나다, 인도, 중국에 집중되는 추세다. 인도 인재들이 일본, 싱가포르, 유럽으로 눈을 돌리듯 한국 인재들도 다변화된 해외 진출 경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인도가 자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워 인재의 '역이민'을 이끌어내고 있는 점은 국내 기술 생태계 강화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