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22일 독립 리서치사 그로쓰리서치(Growth Research)가 발간한 '로봇 산업보고서–자동차 산업이 로봇 육성에 주목한 이유'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을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관점에서 짚는다.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로봇은 더 이상 연구·실험 단계의 기술이 아니라, 완성차 산업이 미래 생산성과 경쟁력을 위해 직접 키우는 산업 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 자동차와 휴머노이드,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즉, 자동차와 휴머노이드는 별개의 산업이 아니라 같은 기술 뿌리에서 파생되는 산업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자동차 공장은 반복적이고 복잡한 작업 데이터가 대규모로 쌓이는 공간이다. 보고서는 이를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학교'와 같은 실증 환경으로 평가한다. 완성차 기업이 휴머노이드 개발에서 구조적 우위를 갖는 이유다.
실제로 혼다는 2017년 휴머노이드 로봇 ASIMO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균형 제어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해 넘어지지 않는 오토바이 'Riding Assist' 개발에 성공했다. 이처럼 로봇과 자동차 기술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며 시너지를 창출한다.
■ 산업화의 열쇠는 '구동'에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보고서가 기존 로봇 보고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인공지능이나 소프트웨어보다 '구동'이라는 하드웨어 영역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물론 거대행동모델(LAM, Large Action Model)과 같은 AI 기술 발전이 휴머노이드 진화를 이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증권가 시각에서 보면, 실제 산업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로봇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다.
보고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에 평균 40~50개가 들어가는 액추에이터를 '오늘날의 곡괭이'로 비유한다. 19세기 골드러시 당시 금의 위치를 맞히는 것보다 곡괭이를 파는 쪽이 안정적인 수익을 냈듯, 휴머노이드 산업에서도 최종 로봇보다 핵심 부품이 먼저 시장을 만든다는 논리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의 '관절'로 불리며, 전체 원가의 60~7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모터, 감속기, 제어기, 센서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 시스템으로, 로봇 동작 구현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휴머노이드 시장이 2025년 15억 달러에서 2035년 378억 달러로 연평균 3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수혜는 고스란히 액추에이터 시장이 누리게 될 전망이다.
■ 정밀감속기·로봇핸드, 상용화의 마지막 퍼즐
특히 휴머노이드의 상용화를 가르는 핵심 부품으로 정밀감속기와 로봇핸드가 지목된다. 휴머노이드는 무릎과 발목 등 주요 관절에서 고토크와 고정밀도를 동시에 요구한다. 감속기의 성능은 곧 보행 안정성과 내구성으로 직결된다.
보고서는 로봇의 작동 메커니즘을 인지 → 판단 → 구동의 세 단계로 구분하며, 이 중 실제 물리세계와 맞닿아 성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 단계는 '구동'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최근 액추에이터 트렌드가 강성 구동기(TSA)에서 준직구동(QDD) 액추에이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감속비 유성 감속기나 높은 토크 밀도를 가진 사이클로이드 감속기 같은 기술이 성능과 원가를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로봇핸드는 또 다른 난관이다. 인간 사회의 모든 도구와 인프라는 '다섯 손가락'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단순 파지 기능을 넘어 범용 로봇으로 진화하려면, 고자유도 로봇핸드 구현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6~7 자유도면 충분한 팔과 달리, 인간의 손을 모사하려면 좁은 공간에 20개 이상의 자유도(DoF)를 집어넣어야 한다. 기술적 난도는 높지만, 상용화 국면에 들어설 경우 부품 가치 역시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 완성 로봇보다 부품 기업에 주목
이 같은 산업 구조를 바탕으로 보고서는 로봇 산업 내에서 완성 로봇보다 부품과 밸류체인 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기업들을 제시한다.
에스피지는 정밀 제어용 모터와 감속기 부품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 협동로봇 전 모델에 감속기를 공급하며 양산 신뢰성과 납기 안정성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유일하게 하모닉형, RV형, 유성형 등 3종 정밀감속기를 모두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이다. 휴머노이드 보급이 늘어날수록 감속기 교체·유지보수, 즉 오버홀(Overhaul) 시장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수혜 가능성이 언급된다.
로보티즈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를 자체 설계·생산하는 국내 드문 기업이다. 부품 내재화를 통해 고객 맞춤형 생산이 가능하고, 원가 경쟁력도 확보했다는 평가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프로토타입과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액추에이터를 공급한 이력은, 글로벌 로봇 밸류체인에 이미 진입한 기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제조 공정을 80~90% 수준으로 내재화해 브레이크, DYD 등을 자유롭게 조합한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협동로봇과 이족보행 로봇 플랫폼을 보유한 국내 대표 휴머노이드 기업이다. 모바일 양팔 휴머노이드 'RB-Y1'을 통해 전 세계 누적 130대 이상 판매 경험을 쌓았고, 삼성전자의 지분 인수로 전략적 의미도 커졌다. 다만 보고서는 단기 실적보다 플랫폼과 기술 축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대모비스는 전통적인 자동차 부품사이면서도, 로봇 밸류체인에서 주목되는 기업이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에 관절·구동계 액추에이터를 공급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언급된다. 대량 생산과 품질 관리 역량이 휴머노이드 양산 국면에서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익홀딩스는 자회사 원익로보틱스를 통해 고자유도 로봇핸드 '알레그로 핸드'를 보유하고 있다. 보고서는 로봇핸드를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마지막 퍼즐로 규정하며, 이 영역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한다. 반도체·장비 사업을 통해 축적한 제조 역량과 로봇핸드 기술이 결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위치에 있다는 평가다.
■ 로봇 테마, '완성품'에서 '공급망'으로
이 보고서가 증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로봇 산업을 바라보는 기준이 '눈에 띄는 완성품'에서 실제 양산과 공급이 가능한 부품과 공급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휴머노이드가 언제 일상에 들어올지를 맞히기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품과 기업이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휴머노이드는 여전히 미래 산업이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이 생산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로봇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보고서는 로봇 산업을 기술이 아닌 산업 구조와 투자 관점에서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대표는 “현대차그룹의 50조원 투자는 로봇이 실험실을 나와 공장이라는 실전 무대에 배치됨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휴머노이드가 의장 공정 등 제조 현장의 노동 공백을 메우는 핵심 대안으로 자리 잡으면서, 액추에이터와 정밀 감속기 등 핵심 부품 기업들의 경쟁력이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