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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3800m 잠들었던 '인터넷 원조 케이블' TAT-8, 37년 만에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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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3800m 잠들었던 '인터넷 원조 케이블' TAT-8, 37년 만에 끌어올린다

전 세계 3개사만 가능한 초고난도 작업…구리·광섬유 재활용 순환경제 새 모델로
600개 해저 케이블 시대, 낡은 '혈관' 걷어내야 차세대 광대역망 들어선다
대서양 수심 3800m 바닥에 20년 넘게 가라앉아 있던 케이블 한 가닥이 역사의 현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대서양 수심 3800m 바닥에 20년 넘게 가라앉아 있던 케이블 한 가닥이 역사의 현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대서양 수심 3800m 바닥에 20년 넘게 가라앉아 있던 케이블 한 가닥이 역사의 현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인류가 처음으로 대서양을 광섬유로 이은 해저 케이블 'TAT-8'의 인양 작업 얘기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Wired)는 지난 23(현지시각), 전 세계 통신 인프라의 원조 격인 이 케이블을 심해에서 끌어올려 재활용하는 사상 첫 초광대역 광케이블 인양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TAT-8의 퇴장은 단순한 케이블 하나의 마감이 아니다. 600개를 넘어선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 전체가 차세대로 교체되는 첫 단추로,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초광대역 시대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33500만 달러짜리 혁명, 18개월 만에 꽉 찼다


TAT'대서양 횡단 전화(Trans-Atlantic Telephone)'의 약자다. TAT-8은 그 여덟 번째 노선으로, 미국 AT&T·영국 브리티시 텔레콤(BT)·프랑스 텔레콤 세 회사가 컨소시엄을 꾸려 33500만 달러(4840억 원)를 투자해 198812월 개통했다. 미국 동부 뉴저지 주 터크턴에서 출발해 영국과 프랑스까지 6285㎞를 잇는 노선이었다.

이 케이블이 혁명이라 불린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까지 대서양을 가로지르던 구리 동축케이블은 최대 4000회선을 처리했다. TAT-8은 광섬유로 빛을 쏘아 4만 회선을 동시에 처리했다. 용량이 단숨에 10배로 뛰었다. 개통 당시 업계에서는 "당분간 이 케이블 하나로 충분하다"고 봤지만, 18개월 만에 용량이 꽉 찼다. 디지털 통신 수요 폭발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TAT-8은 그 짧은 전성기 동안 인류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월드와이드웹 탄생, 소련 해체, 닷컴 붐, 20019·11 테러, 소셜미디어 여명기까지. 하지만 2002년 수리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결함이 발생하면서 퇴역 처리됐고, 이후 20년 넘게 심해 바닥에 방치됐다.

전 세계 세 곳 뿐인 '심해 케이블 처리 기업들'


퇴역 해저 케이블을 끌어올리는 일은 아무 선사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해저 케이블 회수와 재활용을 전업으로 하는 회사는 현재 전 세계에 세 곳뿐이다.

이번 TAT-8 인양을 맡은 곳은 영국 기업 서브시 인바이런멘털 서비시즈다. 2014년 설립 이후 6만㎞ 넘는 해저 케이블을 회수하고 10t 넘는 자재를 재활용했다. 올해 1월 건식 도크를 나온 신형 디젤 전기 추진 선박 MV 마스블리트호(Maasvliet)는 지난달 포르투갈 레이솅이스항에 1012㎞ 분량의 TAT-8을 하역했다. 지난해 11월까지 세 차례, 지금까지 네 차례 항해를 마쳤다.

나머지 두 곳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오세아닉 인바이런멘털 케이블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에 처리 시설을 갖춘 머텍 마린이다. OEC2021년 설립 이후 지중해를 중심으로 45000㎞ 넘는 케이블 회수권을 확보했으며, 올해 초 텔레콤 이탈리아(TIM) 해저 케이블 부문 스파클과 지중해 케이블 22000㎞ 회수 계약을 맺었다. 머텍 마린은 2004년부터 약 10만㎞의 케이블을 회수해 온 업계 선발주자로, 3만㎡ 규모 육상 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회수한 케이블에서 뽑아낸 구리, 강철, 폴리에틸렌 등은 재활용 원료로 돌아간다. 와이어드는 "TAT-8을 이루던 폴리에틸렌이 네덜란드 재활용 시설에서 펠릿으로 가공되면, 독자들이 짜내는 샴푸 용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영국 국립 해양학 센터 마이크 클레어 박사는 국제 케이블 보호위원회(ICPC) 연구를 통해 "수십 년 심해에 있던 현대 광케이블은 놀랍도록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며, 회수·재활용 과정에서 환경 교란은 매우 국지적이고 일시적"이라고 밝혔다.

상어 누명, 그리고 진짜 위협은 따로 있다


"상어가 해저 케이블을 물어뜯어 인터넷이 끊긴다"는 전설의 진원지가 바로 TAT-8이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이 소문은 TAT-8 개발이 한창이던 약 40년 전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케이블 업계 종사자들은 이 신화에 애증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 케이블을 끊는 주범은 트롤 어선들의 조업과 선박 닻이다. 상어는 사실상 상관이 없다.

더 현실적인 위협은 지정학이다. 지난해 11월 발트해에서 리투아니아~스웨덴, 핀란드~독일 케이블이 잇달아 끊어지자,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사고가 아닌 혼합형(하이브리드) 공격일 수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 해저 케이블이 이제 군사·안보 자산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현재 전 세계 대륙 간 데이터 트래픽 거의 전량을 처리하는 해저 케이블은 600개를 웃돈다.

TAT-8의 인양은 해저 인프라의 순환경제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다. 노후 케이블을 걷어낸 자리에 초광대역 차세대 케이블이 들어서면서, 전 세계 디지털 통신 인프라의 세대교체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