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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계열 '스팟', 英 세계 최대 방사선 위험 핵 해체 현장 정규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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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계열 '스팟', 英 세계 최대 방사선 위험 핵 해체 현장 정규 투입

보스턴다이내믹스 4족 로봇, 시범에서 상시 임무로 격상…감마·알파 방사선 탐지·3D 스캔·원격 시료 채취까지
총사업비 265조 원·완공 2125년 세기적 원전 해체 프로젝트, 로봇 기술로 안전·효율 동시에 잡는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영국 핵폐기물 처리 시설 셀라필드(Sellafield)에서 정규 업무 로봇으로 공식 전환됐다. 사진=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영국 핵폐기물 처리 시설 셀라필드(Sellafield)에서 정규 업무 로봇으로 공식 전환됐다. 사진=제미나이3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영국 핵폐기물 처리 시설 셀라필드(Sellafield)에서 시범 운용 딱지를 떼고 정규 업무 로봇으로 공식 전환됐다.

영국 정보 전문 매체 에크바리(Ekhbary)가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총사업비 1360억 파운드(약 265조 원), 완공 목표 2125년이라는 세기적 규모의 원전 해체 현장에서 방사선 위험 구역 진입·3D 스캔·감마·알파 방사선 측정·시료 채취까지 상시 수행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영국 핵폐기물처리청(NDA·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 산하 공기업 셀라필드 유한회사(Sellafield Ltd)는 최근 공개한 공식 사례 연구 보고서에서 이 같은 결정을 명문화했다.

셀라필드 측은 보고서에서 "셀라필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핵 시설 중 하나로, 일부 구역은 위험하거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냉전이 남긴 세기의 숙제…완공까지 99년 남은 초대형 해체 현장


셀라필드의 전신은 냉전 시대 핵물질·핵무기 생산 기지였던 윈드스케일(Windscale)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의 장기 처리 방안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핵 시설을 급속 확장했고, 1957년에는 대형 화재로 방사성 낙진이 대기 중에 방출되는 사고까지 겹쳐 현재의 해체 작업 난도를 극도로 높였다. NDA는 완전 정화 완료 시점을 2125년으로 잡고 있다.

영국 감사원(NAO)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셀라필드 해체 사업의 진척 속도가 납세자 세금 대비 충분한 가치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셀라필드 유한회사는 이런 압박 속에서 로봇 기술을 돌파구로 삼고 있다.

셀라필드 유한회사의 원격장비 프로그램 총괄 데온 불먼(Deon Bulman)은 "스팟을 원격으로 운용하는 능력은 디지털 혁신이 핵 시설의 안전성·효율성·의사결정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며 "앳킨스레알리스와의 협력으로 해체 임무를 뒷받침하는 첨단 해법을 찾아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5년 검증 끝에 정규직 된 로봇…감마·알파 탐지부터 원격 시료 채취까지


스팟의 셀라필드 투입 역사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더홀(Calder Hall) 원자력발전소 터빈실에서 사흘간의 첫 시험을 거쳤고, 2022~2023년에는 계단·협소 공간 등 복잡한 구조물 안에서도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운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2024년부터는 방사선 고위험 구역에서 고화질 이미지와 방사선 데이터를 수집하는 점검 임무에 실전 투입됐다.

지난해에는 영국 원자력 분야 최초로 발전소 허가 구역 바깥에 있는 화이트헤이번(Whitehaven) 소재 웨스트레이크스 사이언스 파크(Westlakes Science Park) 원격운용실에서 스팟을 완전히 원격 조종하는 시범 운용에 성공해 작업자와 현장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완전 원격 작업 가능성을 입증했다.

앳킨스레알리스(AtkinsRéalis)의 해체 기술 솔루션 총괄 리처드 브룩(Richard Brook)은 "셀라필드는 기술 도입을 선도해 왔고, 이번 성과는 해체 분야에서 로봇이 맡을 역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장에 투입된 스팟에는 방사선 저항 감지 시스템과 고성능 데이터 수집 장치가 달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환경 지도 작성용 라이다(LiDAR) 센서, 감마 및 알파 방사선을 정밀 측정하는 탐지기가 핵심이다.

이를 통해 기반 시설의 3차원(3D) 스캔, 위험 구역에서의 실시간 영상·데이터 전송, 방사성 물질 존재 여부 특성화 작업을 수행한다.

스팟의 인식 시스템은 영국 기업 크리에이텍(Createc)이 핵 환경에 맞게 개조·공급·유지하고, 캐나다 공학 기업 앳킨스레알리스가 시스템 통합과 임무 계획을 맡았다.

영국원자력공사(UKAEA), NDA, 셀라필드 유한회사, 맨체스터대학교, AWE 핵안전기술팀이 참여하는 '로봇·인공지능 협력체(RAICo·Robotics and AI Collaboration)'도 초기 시험과 실증을 뒷받침했다.

이달 13일에는 셀라필드 유한회사와 RAICo가 방사성 물질이 있는 구역에서 스팟에 오염 표면 시료 채취(스와빙) 도구를 장착해 운용하는 첫 시험을 마쳤다고 '핵공학인터내셔널(Nuclear Engineering International)'이 보도했다.

사람의 손동작을 모사하는 촉각 제어 방식을 적용해 방사선 보건물리팀이 위험 구역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방사선 오염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셀라필드에서는 해마다 이 채취 작업을 수백 건씩 수행해 왔다.

셀라필드 측은 "스팟이 사람보다 훨씬 오래 현장에 머물며 점검을 계속할 수 있어 전체 해체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고 밝혔다. 개인 보호장비(PPE) 사용이 줄면서 작업 폐기물도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트윈·원격망으로 진화…유럽 원전 해체 시장 표준 경쟁 본격화


셀라필드 유한회사는 앞으로 스팟 수집 데이터를 3D 시각화 도구, 디지털 트윈(실제 설비의 가상 복제 모델), 기존 설비 정보 관리 시스템과 연동해 실시간 현황 파악 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협력사들과 새로운 탑재 장비·감지 모듈을 개발·시험해 방사선 지도 작성, 설비 상태 점검, 환경 특성화 등으로 임무 범위도 넓힌다. NDA 소속 다른 시설로의 확대 투입도 검토 중이다.

셀라필드의 성과는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스페인 가로냐(Santa María de Garoña) 원전 해체 현장에서도 스팟을 방사선 탐지에 활용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지난해 5월에는 스코틀랜드 둔레이(Dounreay) 원전의 연료순환구역 프로젝트에서도 스팟이 3D 방사선 지도 작성 임무를 완수했다. 유럽 각국은 2030년까지 위험 핵 구역의 인력 투입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4족 보행 로봇 도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영국 IT 전문 매체 '더레지스터(The Register)'는 첨단 로봇 기술의 핵심 공급사가 자국 기업이 아닌 상황에서 사이버 보안 위험은 없는지, 일론 머스크 계열이나 중국 기업들이 개발 중인 인간형 로봇의 도입 가능성은 어떤지를 셀라필드 측에 질의했다.

이에 셀라필드 측은 "모든 로봇 기술이 핵 분야의 엄격한 보안 요건을 충족하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재 포스코, 호주 최대 천연가스 생산업체 우드사이드 에너지(Woodside Energy), 글로벌 식품 기업 카길(Cargill) 등의 산업 현장에서도 스팟을 점검·순찰·감지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셀라필드의 성과가 전 세계 노후 원전 해체 시장에서 스팟의 상업적 입지를 넓히는 발판이 될지 주목된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