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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석유 쇼크, 日 소기업 ‘직격탄’… “돌에서 피 짜내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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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석유 쇼크, 日 소기업 ‘직격탄’… “돌에서 피 짜내는 심정”

호르무즈 봉쇄에 원가 30% 급등·공급 차단 위기… 오구수산업 등 현금 확보 사투
석유화학 공급망 마비로 플라스틱 생산 차질… 엔저 심화에 수입 비용 설상가상
토나미 교통은 운전자들에게 연료 절약을 권고하고 있다. 사진=토나미 홀딩스이미지 확대보기
토나미 교통은 운전자들에게 연료 절약을 권고하고 있다. 사진=토나미 홀딩스
중동발 에너지 공급망 혼란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의 기초 산업을 지탱하는 중소기업들이 존립의 기로에 섰다.

미군의 이란 공격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자, 원유 및 나프타 수입에 의존해온 일본 현지 제조·물류 기업들은 치솟는 에너지 비용과 원자재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23일(현지시각) 닛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하마마츠와 오카야마 등 일본 주요 산업 단지의 소규모 기업들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견디기 위해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 "에너지값 오르는데 가격 전가는 하세월"… 제조 현장의 비명


자동차와 농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오구수 산업은 당장 열처리와 절단 공정에 쓰이는 산업용 석유 비용이 30% 이상 폭등할 상황에 처했다.

회사 관계자는 "에너지 비용이 실제로 청구되기 전까지는 고객사와 가격 인상 협상을 시작하기조차 어렵다"며 "협상이 타결되어도 실제 수익으로 돌아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은 여유 현금을 쌓아두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이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며 전쟁 전보다 최대 50% 급등하자, 산업 현장의 원가 부담은 임계치에 도달했다.

◇ 석유화학 공급망 마비… "물건 있어도 못 만든다"


중동발 유조선 입항이 급감하면서 미쓰비시 화학, 미쓰이 케미컬 등 대형 정유사들이 에틸렌 생산을 축소하자 하류 부문 소기업들의 원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오카야마현 미즈시마 산업 단지에 위치한 하기하라 인더스트리는 폴리에틸렌 등 원료 공급 중단 우려에 휩싸였다. 식품 용기 제조사 마루젠 역시 공급업체로부터 "작년 수준의 폴리프로필렌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아 수요가 있어도 증산을 못 하는 처지다.
전쟁 여파로 달러 수요가 몰리며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0엔에 육박, 원자재 수입 비용을 더욱 부풀리고 있다.

산와 카세이 코교는 자동차 엔진오일 제조를 위해 폐유 재활용까지 모색하고 있으며, 토나미 교통은 3000대 이상의 트럭 운전자에게 공회전 금지 등 극한의 연료 절약을 지시했다. 유고 오히라 기획 책임자는 이를 두고 "돌에서 피를 짜내려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 일본 정부의 대응과 공급망 유지의 불확실성


일본 정부는 민간 및 국가 비축량에서 총 8000만 배럴의 석유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민간 15일분, 국가 한 달치를 합친 규모다. 또한 휘발유 소매가를 리터당 170엔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보조금 지급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낙관을 경계한다. 고지마 마사토시 모모야마 가쿠인 대학 교수는 "비축유 방출이 휘발유 유통은 안정시키겠지만, 일본이 사용하는 나프타의 60%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통상성은 중동 외 수입선 확보 시 4개월간 공급망 유지가 가능하다고 추산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기초 소재 산업의 붕괴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한국 물류업계에 주는 시사점


일본 소기업들이 겪는 고통은 한국의 제조·물류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우리 정부도 일본의 사례처럼 중소 제조·물류 기업들을 위한 직접적인 유류세 환급이나 보조금 확대를 선제적으로 검토해 도산 위험을 막아야 할 것이다.

나프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화학 업계는 중동 외에 미국, 동남아시아 등으로의 수입선 다변화를 서두르고,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Recycled Plastic) 활용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에너지 비용 급등 시 납품 단가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납품대금 연동제'의 실효성을 높여 소규모 기업들이 원가 상승의 부담을 오롯이 짊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