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서밋서 ‘에너지 공유협정’ 논의… 공급망 마비에 물가 폭등 비상
역내 전력망 통합 가속화로 중동 의존도 탈피 모색
역내 전력망 통합 가속화로 중동 의존도 탈피 모색
이미지 확대보기알자지라(Al Jazeera)는 8일(현지시각) 필리핀 세부에서 개막한 제48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11개 회원국 정상들이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마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 대응책을 집중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봉쇄가 부른 에너지 대란… 아세안 ‘공동대응’ 천명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이란 전쟁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였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개회사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의 여파가 역내 물가 상승과 민생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필리핀과 중동에 진출한 자국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까지 거론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현재 동남아시아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 물동량의 핵심 통로로, 아세안 국가들의 주된 에너지 수입 경로다.
이 통로가 막히면서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주요 국가는 이미 에너지 수급 불균형에 따른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다.
아세안 정상들이 채택할 공동성명 초안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적인 재개방 촉구와 함께 위기 상황에서의 통신·조정 체계 개선 내용이 담겼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수사를 넘어, 생존을 위한 경제적 결사체로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에너지 공유협정’과 ‘통합 전력망’… 자구책 마련 분주
에너지 부족 사태가 심화하면서 각국의 대응도 긴박해지고 있다. 필리핀은 지난 3월 이미 에너지 부족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태국과 베트남 등은 전기료 상한제와 재택근무 권고 등 강도 높은 절전 대책을 시행 중이다.
필리핀이 주도하는 이 협정은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회원국끼리 에너지를 상호 융통해 충격을 분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2045년까지 역내 전력망을 하나로 묶는 '아세안 파워 그리드(APG)' 구축 사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탄시엔리 싱가포르국립대(NUS) 법대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서밋은 과거보다 훨씬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라며 "아세안 경제 공동체(AEC) 협력과 디지털 경제 기본법(DEFA) 협상 등에서 결정적인 진전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남중국해 긴장과 중동 위기의 기시감… 국제법 준수 목소리
아세안 리더들은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연결해 바라보고 있다. 두 곳 모두 국제 무역의 동맥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법 존중, 국가 주권 수호, 항해의 자유를 강력히 주장할 예정이다.
중동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의 남중국해 군사 훈련이 겹치자, 역내 국가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아세안은 전통적인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물류 마비가 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라 이전보다 강경한 대외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아세안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른 기구들과 경제 협력을 다각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자원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7억 명 아세안 인구의 생존을 결정지을 핵심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결속력, '선언' 넘어 '실행' 시험대 올랐다"
싱가포르 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아세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싱가포르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이미 공급 불능(포스마쥬르)을 선언하며 계약 책임 면제를 주장하는 등 실물 경제의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아세안이 추진하는 에너지 공유협정이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추느냐가 향후 역내 인플레이션 억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에너지 수입국인 태국, 필리핀과 생산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간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아세안 파워 그리드 성공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