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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 장벽 구축…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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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 장벽 구축…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흔든다

실질적 통제권 행사하며 선박별 차등 검문 및 ‘보안료’ 징수
미국 제재 피하려는 각국과 이란 간 물밑 거래 급증 전망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에 자체적인 검문 체계를 구축하며 사실상 해상 봉쇄를 단행하고 있어서다.

로이터 통신은 20일(현지시각), 이란은 혁명수비대(IRGC)를 앞세워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대상으로 정밀 심사를 진행하고, 경우에 따라 ‘보안 및 항행 명목’의 현금을 징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정치적 거래’가 가르는 통행의 운명


이란의 호르무즈 통제는 단순히 무력을 과시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란 당국은 사전에 지정된 ‘친이란’ 성향의 국가나 외교적 합의를 마친 선박에 한해 통행을 허용하는 다단계 필터링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최근 베트남으로 향하던 유조선 ‘아기오스 파누리오스 1호(Agios Fanourios I)’의 사례는 이 같은 ‘거래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선박은 이라크 정부가 이란 측과 직접 담판을 지은 끝에 통행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란은 선박 소속 국가와 화물 성격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긴다. 러시아·중국 등 동맹국 선박이 1순위이며, 인도와 파키스탄 등 우호국이 그다음이다. 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은 아예 통행이 금지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불투명한 비용’이다. 복수의 해운 소식통은 일부 선박이 검문과 안전 통행을 대가로 15만 달러(약 2억 원) 이상의 비용을 이란 당국에 지불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제법상 해협 내 보안 서비스 비용 청구는 가능하지만, 이를 특정 국가에만 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첩보전 방불케 하는 ‘심사 프로세스’


이란의 심사 절차는 매우 치밀하다. 선주들은 이란이 설립한 ‘페르시아만 해협 당국’에 화물 가치, 선박 국적, 승무원 국적 등이 포함된 상세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혁명수비대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과의 연계성을 조사한다.
인도 해운 당국 관계자는 “이란 해군이 지정한 항로를 준수해야 하며, 통과 과정에서 위치 추적 장치(AIS)를 끄고 위성 통신을 제한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전 세계 해운업계에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약 1500척의 선박이 걸프 해역에 발이 묶였으며, 무사히 호르무즈를 통과하더라도 다시 미 해군의 봉쇄망에 걸려 2중고를 겪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병목 현상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 전체의 패러다임이 ‘이란의 허가제’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변동성 고조’ 불가피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란의 행보가 단기적인 분쟁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장기적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내다본다.

대니 시트리노비치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연구원은 “이제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여부는 전적으로 이란 체제의 결정에 달려 있다”며 “글로벌 해운사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더 높은 물류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의 강력한 제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공급이 절실한 국가들은 이란과의 물밑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란이 구축한 이 ‘신 해상 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체제와 이란의 지정학적 무기화 전략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파열음이다.

앞으로의 핵심은 이란의 통제권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그리고 서방 국가들이 이에 맞서 어떤 대체 경로를 마련할지에 달려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이 더 이상 국제표준이 통용되는 ‘공해’가 아닌, 정치적·군사적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전략적 교착지’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글로벌 공급망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촉발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