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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물가 오르면 반드시 금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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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물가 오르면 반드시 금리인상?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연구소 소장 / 전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연구소 소장 /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연구소 소장 / 전 고려대 교수)

미국 CPI 물가 폭등이 가져온 긴축의 공포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후 보루이자 방향타 역할을 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마침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시장이 양보할 수 없다며 공언해 온 '최후의 억제선'을 크게 넘어섰다. 그동안 전 세계 경제주체들은 물가 상승세가 일정 수준에서 통제되거나 둔화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번에 발표된 CPI 수치는 그러한 낙관론을 단숨에 집어삼키며 통제 불가능한 궤적으로 치솟았다. 억제선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물가 폭등의 결과는 참혹하다. 에너지 가격의 상방 압력과 주거비의 고착화, 그리고 지정학적 위기발 공급망 교란이 한데 맞물리며 현대 거시경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대중들은 흔히 "미국 물가가 오르는 것이 내 주식계좌와 무슨 상관이냐"고 안일하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 CPI가 억제선을 넘어 폭등했다는 것은 전 세계 돈의 흐름을 쥐고 흔드는 연준이 가차 없이 가장 매파적이고 가혹한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것이 바로 거침없는 '기준금리 인상'이다. 이제 지난 수년간 자산 시장을 유토피아로 만들었던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의 시대는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거대한 고금리의 습격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주가 폭락의 서막을 알리는 선전포고이자 신호탄이다. 우리는 수년간 당연하게 여겼던 자산 시장의 모든 투자 패러다임이 통째로 뒤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 대중들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물가가 올라서 살기 힘든데, 왜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리까지 올려서 대출 이자 부담을 더 크게 만드는가"라는 원망 섞인 질문이다.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이 조치에는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중앙은행의 절박한 이론적 근거가 숨어 있다.쉽게 말해, 지금의 물가 폭등은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지난 팬데믹 암흑기를 통과하며 정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시장에 살포했다. 돈의 양이 재화와 서비스의 양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건의 가격이 치솟는 원리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시중에 풀린 돈의 절대적인 양을 줄이지 않고서는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물가의 불길을 잡을 수 없다.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시중에 흐르는 돈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행위와 같다. 은행 금리가 오르면 사람들은 위험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기보다 안전한 은행 예금으로 돈을 회수하려 한다. 또한 대출 이자가 무서워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공장을 짓거나 직원을 뽑는 투자를 미루게 된다. 이처럼 경제 전체의 소비와 투자를 강제로 꽁꽁 얼려버림으로써, 과열된 통화량을 흡수하고 물가 상승 압력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이는 비록 가혹한 경기 침체를 동반할지언정, 화폐 가치 폭락이라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한 중앙은행의 필수불가결한 '정공법'이다

금리 인상은 주가 폭락의 선전포고이자 신호탄이다그렇다면 왜 금리가 오르면 주식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가. 주식 투자를 하는 대중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메커니즘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산 가격의 중력'이 작동한다 금융시장에서 금리는 자산 가격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과 같다. 주식의 현재 가치는 그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모든 이익을 현재 시점의 가치로 '할인'해서 계산한다. 이때 적용되는 할인율의 기준이 바로 국채 금리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에 벌어들일 돈의 현재 가치는 수학적으로 깎여 나갈 수밖에 없다. 특히 당장의 이익은 없지만 미래의 원대한 꿈과 성장성을 담보로 주가를 올렸던 기술주, 바이오주, 성장주들은 고금리라는 거대한 중력 앞에서 낙엽처럼 추락하게 된다. 금리 인상이 성장주 폭락의 신호탄이 되는 이유다.

둘째, 기업의 지갑에서 이자가 통째로 빠져나간다. 대다수 기업은 은행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여 경영 자금을 조달한다. 금리가 인상되면 기업이 매달 감당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매출을 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더라도, 금융 비용이 폭증하기 때문에 손익계산서상의 최종 성적인 '당기순이익'은 반토막이 나기 일쑤다. 이익이 줄어드는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특히 빚으로 간신히 버티던 한계기업들은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이는 주식시장 전반의 공포를 확산시킨다.
셋째, "주식 말고 대안이 생겼다" (역 머니무브)금리가 제로(0)에 가깝던 시절에는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이 바보 취급을 받았다.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주식 시장이나 가상자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은행 예금 금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국채 수익률이 치솟으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된다. 투자자들은 굳이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위험한 주식 시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다. 거대한 자본들이 위험자산인 주식을 던지고 안전한 예적금과 채권 시장으로 대이동하는 '역 머니무브'가 시작되면서 증시의 매수 기반은 통째로 무너진다.

넷째, 지갑이 닫히니 기업 실적이 무너진다고금리는 서민들의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신용대출 이자를 폭등시킨다. 매달 은행에 바쳐야 하는 이자가 늘어나니 소비자들이 부유할 리 만무하다. 가계는 외식을 줄이고, 옷을 사지 않으며, 자동차나 가전제품 같은 고가 내구재의 구매를 무기한 연기한다. 가계의 소비 닫힘은 기업의 매출 급감으로 이어지고, 매출이 꺾인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투자 축소라는 방어기제를 가동한다. 실물 경기가 얼어붙는 이 차가운 현실을 주식시장은 폭락이라는 형태로 선반영하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번 물가 폭등이 단순히 소비가 과열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원유 공급망 차질, 원자재 가격의 폭등 등 '물건 공급이 부족해서' 발생한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이다.이 경우 경제는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되는 최악의 괴물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진입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중앙은행의 고민은 깊어진다.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면, 이미 비용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는 기업들과 가계의 목을 더 죄어 경기 침체의 골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카드는 시중의 수요를 강제로 파괴할 수는 있어도, 중동의 분쟁을 해결하거나 원유 매장량을 늘릴 수는 없다. 즉, 원인 치료제가 아닌 독한 해열제를 강제로 주사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주식시장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라는 '쌍둥이 악재'를 동시에 맞이하며 유례없는 장기 폭락 국면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크다.

지금 자산 시장은 수년간 이어져 온 유동성 파티의 잔상을 지우고 냉혹한 고금리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조정기를 지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 저금리 시대의 투자 법칙은 이제 완전히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아무 주식이나 사두면 오르겠지", "성장성이 높으니 대출을 끌어다 사자"는 식의 안이한 접근은 자산의 파멸을 부르는 지름길이다.이제 투자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산의 '양적 확장'을 노리던 공세적 태도에서 벗어나, 내 자산을 지키는 '질적 방어'로의 전면적인 전략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투자자들은 지금 당장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냉정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빚이 많고 막연한 미래의 꿈만 먹고 사는 성장주와 테마주들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대신, 불황기에도 전 세계 소비자들이 소비를 끊을 수 없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 부채 비율이 극도로 낮아 고금리 폭풍 속에서도 이자 부담이 없는 자산 구조를 가진 기업, 그리고 무엇보다 장부상의 숫자가 아닌 눈에 보이는 '진짜 현금(Cash Flow)'을 매년 따박따박 벌어들이는 우량한 독점 기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의 영토를 재편해야 한다.금리 인상이라는 주가 폭락의 신호탄은 위기인 동시에, 거품이 걷힌 진짜 알짜 자산을 헐값에 매수할 수 있는 평생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미국 CPI 물가가 억제선을 돌파한 지금, 거시경제의 거대한 격랑을 거스르려 하지 말고 고금리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며 내 투자 지도를 전면 개편하는 전략적 혜안과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