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2020년 이후 첫 감소 전망…호르무즈 차질·중국 감축에도 미국 운전자는 소비 확대
이미지 확대보기전 세계 석유 수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절정이던 지난 202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 운송이 차질을 빚고 유가가 오른 영향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휘발유 가격이 전쟁 전보다 크게 올랐는데도 운전자들의 휘발유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세계 석유시장이 지역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약 10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1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IEA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 평균 9790만배럴로 1년 전보다 하루 530만배럴 줄었다. 감소분의 상당 부분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호르무즈 차질에 원유선 발 묶여
수요 감소의 주요 배경에는 높은 유가와 물리적 공급 차질이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페르시아만에 있던 원유 선박들이 3개월 넘게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하지 못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가스 운송의 핵심 통로다. 이곳이 막히거나 불안해지면 원유 물류와 가격이 동시에 흔들린다.
S&P글로벌에너지의 짐 버크하드 원유 리서치 책임자는 “호르무즈의 미래는 전쟁 시작 때보다 지금 더 불확실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여전히 해협 통제를 시도하고 있고 미국도 정상 운항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중국 수요 감소가 가장 컸다
국가별로는 중국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석유 수요는 하루 150만배럴 줄었다. 감소율은 9%에 달했다.
중국은 봄철 유가 급등 국면에서 국제 시장의 원유 구매를 대폭 줄였다. 버크하드 책임자는 중국이 높은 가격과 위기 상황을 이유로 막대한 재고를 활용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사들이는 원유를 크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전략비축유를 채우는 작업도 일시적으로 멈춘 것으로 전해졌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대니얼 스터노프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하루 100만배럴에 가까운 속도로 전략비축유를 늘려왔지만 이번 위기 속에서 이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도 중국의 도로용 연료 절감에 영향을 줬다. 스터노프 연구원은 “위기가 시작된 이후 중국의 휘발유와 경유 수요가 하루 50만~60만배럴가량 줄어드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상당한 규모”라고 분석했다.
◇휴전 뒤 원유는 풀렸지만 시장은 약해졌다
지난달 취약한 휴전이 이뤄지면서 일부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시장에 원유 공급이 늘어나자 유가는 내려갔다.
이달 초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다시 고조됐지만 유가는 이전만큼 급등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새로 풀린 원유를 사들일 수요가 줄어든 점을 이유로 꼽았다.
중국이 소비와 구매를 크게 줄인 데다 러시아 일부 정유시설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원유 처리 능력이 떨어졌다. 중동 정유시설도 전쟁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그 결과 원유 가격은 상대적으로 진정됐지만 휘발유와 경유 같은 정제유 가격은 더 오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원유는 시장에 더 많이 나왔지만 이를 처리할 정유 수요와 능력이 동시에 약해진 셈이다.
버크하드 책임자는 “시장에 원유 공급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 원유에 대한 수요는 단순히 줄어든 상태”라고 밝혔다.
◇미국만 휘발유 소비 늘었다
세계적 수요 둔화의 예외는 미국이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소비는 2분기에 증가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5월 기준 미국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50달러(약 6800원)를 넘어섰다. 전쟁 시작 전보다 50% 이상 오른 수준이다. 그러나 높은 주유비에도 미국 운전자들은 도로 이용을 줄이지 않았다.
스터노프 연구원은 “미국 가계 소득에서 휘발유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장기적으로 낮아져 왔다”고 설명했다. 휘발유 가격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소비자들이 크게 체감하는 가격이지만 고소득층은 가격이 올라도 실제 운전량을 크게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출근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늘어난 점도 휘발유 소비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출퇴근 이동이 늘어나면서 가격 상승에도 수요가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석유시장도 지역별 양극화
이번 IEA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석유시장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와 유가 부담으로 수요가 크게 줄었다. 중국은 재고를 활용하고 전략비축유 확대를 멈추며 국제 원유 구매를 줄였다. 전기차 보급 확대도 도로용 연료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미국은 높은 휘발유 가격에도 소비가 늘었다. 소득 대비 휘발유 부담이 과거보다 낮아졌고 출근 이동이 증가하면서 가격 상승이 수요를 꺾지 못했다.
석유시장의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 여부가 불확실하고 러시아와 중동 정유시설의 피해도 정제유 가격을 높게 묶어두고 있다.
세계 석유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 휘발유 소비가 늘어난 현상은 에너지 시장의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유가 상승과 공급 차질이 모든 지역에 같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며 각국의 재고 정책, 전기차 보급, 출근 문화, 소득 구조에 따라 석유 소비의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