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얽힌 이병철- 정주영-구자경-구본무-최태원 스토리
이미지 확대보기그 당시 중화학공업과 건설, 자동차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정 회장이었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실리콘 칩 공장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것은 제조업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내부의 결사반대와 재계의 비웃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거침없었다. 삼성이 철저히 계산된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다면, 정 회장은 특유의 돌파력 하나로 1983년 3월부터 경기도 이천의 황량한 논밭을 직접 갈아엎으며 거대한 반도체 생산 라인을 깔기 시작하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 법인(HEA)을 세워 재미 교포 엔지니어들을 닥치는 대로 영입했고, 밤낮없이 기술을 훔치고 배우며 독자적인 D램 기술력을 확보해 나갔다.
1980년대 후반 글로벌 D램 시장의 유례없는 호황기가 찾아오자 이천의 논밭에서 싹튼 현대전자는 보란 듯이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거인으로 급성장하였다. 삼성전자, LG반도체와 함께 대한민국 반도체 '빅3' 체제를 구축하며 국가 경제를 먹여 살릴 거대한 반도체 영토의 초석을 다진 것은 오롯이 1983년 2월 23일 법인 등기를 밀어붙였던 정주영의 무모했던 개척 정신이 거둔 결실이었다.
SK하이닉스의 역사를 논할 때 정주영의 현대전자만큼이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축이 바로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이 이끌던 LG반도체(옛 금성반도체)이다. 하이닉스의 자산과 기술적 토대의 절반은 LG반도체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LG그룹은 1989년 금성반도체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현대전자가 정주영식 돌파력과 거대한 설비 투자로 밀어붙였다면, LG반도체는 금성사 시절부터 이어져 온 철저한 장인정신과 초정밀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LG반도체는 1990년대 중반 D램 미세공정 분야에서 세계 최초 기술을 연이어 발표하며 삼성전자를 턱밑까지 추격할 정도로 무서운 기술적 저력을 과시하였다.
재계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1998년 9월 3일 오후,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정·재계 간담회에서 "현대와 LG의 반도체를 하나로 합병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압박이 내려졌다. 구본무 회장에게 반도체는 그룹의 심장이었기에 절대 내줄 수 없다며 청와대에 항소하고 독자 생존을 주장하였다. LG 임직원들은 청주 공장을 사수하며 머리띠를 매고 격렬한 반대 투쟁을 벌였다. 정부와 채권단은 강경하였다. 미국계 컨설팅 업체 AD리틀(ADL)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강제 평가를 진행하였고, 결국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불복하려는 LG를 향해 금융 채권단은 신규 여신 중단, 기존 대출금 즉시 회수, 만기 연장 거부라는 치명적인 자금줄 죄기 칼날을 휘둘렀다. 대마(大馬)인 그룹 전체의 생존이 인질로 잡히자 구본무 회장은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반도체 영토를 통째로 포기해야만 했다. 구 회장은 이 사건 이후 전경련 회의 등 정재계 공식 행사에 전면 불참할 정도로 깊은 한과 상처를 안게 되었다.
1999년,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강제로 삼키며 '현대하이닉스반도체'가 공식 출범하였다. 외형상으로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끌어올린 승리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두 기업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간 비극의 서막이었다. IMF 직후의 살인적인 고금리 체제 속에서 LG반도체를 강제 인수하기 위해 현대전자가 금융권에서 끌어다 쓴 빚은 무려 13조 원을 상회하였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의 갈등이 봉합되기도 전에, 이 천문학적인 부채는 하이닉스의 목을 죄는 치명적인 족쇄가 되었다. 현대하이닉스가 법정관리와 파산 직전의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은 단순히 인수 부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이닉스를 침몰시킨 원인은 세 가지 치명적인 악재의 동시 폭발이었다. 그 첫째는 글로벌 D램 가격의 대폭락(반도체 쇼크)이었다. 합병 직후인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급격한 공급 과잉으로 인해 D램 가격이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폭락 사태가 도래하였다. 물건을 만들수록 손해가 쌓이는 최악의 구조 속에서 하이닉스는 매달 수천억 원의 적자가 쏟개졌다.둘째는 모기업인 현대그룹의 공중분해였다. 2000년을 전후해 정주영 회장의 타계와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린 경영권 승계 분쟁이 발발하면서 현대그룹 자체가 산산조각 났다. 하이닉스를 든든하게 받쳐주어야 할 모기업의 자금줄과 경영 리더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셋째는 천문학적인 시설 투자(CAPEX)의 부재였다. 반도체는 매년 수조 원의 돈을 부어 미세공정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되는 장치 산업이다. 부채 늪에 빠진 하이닉스는 채권단의 가혹한 비용 통제 속에서 신규 장비를 도입할 리스 자금조차 없었다. 결국 2001년, 하이닉스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되어 외환은행 등 채권단 관리체제로 넘겨지는 '주인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금융권의 대표적인 '아픈 손가락'이자 국가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청산과 도산의 길목에 서게 되었다.
2002년,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로의 헐값 매각 협상이 최종 단계에서 이사회의 결단으로 부결된 후, 하이닉스는 오직 현대와 LG 출신 엔지니어들의 독기와 기술 집착 하나로 연명해야 했다. 돈이 없어서 신규 12인치 웨이퍼 장비를 들여놓지 못하자, 연구원들은 먼지가 날리는 공장 바닥에서 밤을 새우며 기존 8인치 장비를 뜯어고쳐 12인치 수준의 생산성을 내는 '블루칩'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세계 반도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눈물겨운 개조 공정이었다. 과거 라이벌로 싸웠던 현대와 LG의 엔지니어들은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기술로 똘똘 뭉쳤다. 채권단이 한 푼의 돈도 내주지 않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미세공정 전환 기술력을 악착같이 유지하며 가까스로 흑자 전환의 불씨를 살려 나가지 시작하였다.
SK하이닉스는 칩을 쌓을 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주입해 굳히는 'MR-MUF(매스 리플로우 몰디드 언더필)' 공정을 독자 개발하는 기술적 모험을 감행하였다.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AI 혁명 속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하며 마침내 세계 1위 HBM 왕좌에 등극하였다. 피눈물로 얼룩졌던 아픈 손가락이 전 세계 AI 패권을 쥐고 흔드는 절대적 고지의 거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정주영의 결단과 구본무의 기술 집착에서 시작되어, 현대와 LG의 피비린내 나는 빅딜 잔혹사, 통장 잔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장비를 뜯어고치며 버텨낸 채권단 시절, 그리고 재계의 만류를 뿌리친 최태원의 대도박까지. SK하이닉스의 역사는 단 한 순간도 순탄한 적이 없었다. 벼랑 끝 생존 투쟁을 거치며 체득한 독기는 이제 안정적인 글로벌 자금 조달과 투자자 다변화를 위해 미국 뉴욕 증시의 나스닥 주식예탁증서(ADR) 발행 및 상장을 모색하는 선제적 생존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정한 승부는 시장이 좋을 때가 아니라, 모두가 파멸을 말하며 발을 뺄 때 미래를 내다보고 전부를 던지는 자에 의해 결정된다. 정주영과 LG의 무모함이 씨앗을 뿌리고, 임직원들의 눈물이 지켜냈으며, 최태원의 도박이 꽃을 피운 SK하이닉스의 역사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전 세계 패권의 중심에서 승부사로 살아남았는지를 증명하는 생생한 기록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