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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희토류 수출 빗장 푸나…美·호주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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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희토류 수출 빗장 푸나…美·호주 러브콜

2024년 원광 수출 중단 뒤 일부 허용 검토…투자·기술 이전 연계해 2030년 아시아 가공거점 노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전경.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전경. 사진=로이터
말레이시아가 가공하지 않은 희토류 원광의 일부 수출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희토류를 원료 상태로 해외에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에서 정제·가공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얻기 위해 지난 2024년 원광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통제한 뒤 미국과 호주, 프랑스, 인도 등이 새로운 공급처 확보에 나서면서 말레이시아산 희토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단순히 수출 규제를 푸는 대신 자국에 대한 투자와 희토류 가공기술 이전을 끌어내는 조건으로 일부 원광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사이드 이브라힘 사이드 노 말레이시아 천연자원·환경지속가능성부 차관이 최근 인터뷰에서 미가공 희토류의 일부 수출 허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다만 규제 완화 여부와 시행 시점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원광 수출 막아 가공산업 키웠지만 해외 요구 커져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와 풍력발전기, 스마트폰, 가전제품, 첨단무기 등에 사용되는 핵심광물이다.

희토류라는 이름과 달리 지구에 존재하는 양이 반드시 적은 것은 아니다. 여러 광물이 섞인 원석에서 필요한 성분을 분리하고 정제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환경오염 위험도 커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광산에서 캐낸 뒤 충분한 분리·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를 원광 또는 미가공 희토류라고 부른다.

원광은 가공된 희토류 산화물이나 영구자석보다 가격이 낮다. 자원 보유국이 원광만 수출하면 정제와 부품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일자리와 이익은 해외 기업이 가져갈 수 있다.

말레이시아가 2024년 원광 수출을 중단한 것도 자국 안에 정제공장과 관련 제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광물을 캐낸 상태로 싸게 수출하기보다 자국에서 가공해 더 비싼 제품으로 판매하겠다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가 니켈 원광 수출을 제한한 뒤 현지 제련소와 배터리 소재 투자를 유치한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러나 중국이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과 호주, 프랑스, 인도 등 주요국이 중국 이외 지역에서 희토류를 확보하려 하자 말레이시아산 원광을 수출해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이드 이브라힘 차관은 “말레이시아 주정부와 투자자들로부터 규제를 완화하라는 압력이 이미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호주, 프랑스, 인도가 말레이시아 희토류에 관심을 보이며 정부와 접촉하고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희토류 공급이 막히면 전기차와 전자제품, 방산 장비 등의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일부 희토류는 전기모터와 미사일 유도장치 등에 들어가는 고성능 영구자석의 필수 원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양국 간 핵심광물 공급망 협정을 체결했다.

◇ 수출 허용 대가로 투자·기술 이전 확보


블룸버그에 따르면 말레이시아가 수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조건 없이 희토류 원광을 판매할 가능성은 낮다.

사이드 이브라힘 차관은 원광 수출을 허용할 경우 말레이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와 가공기술 이전을 연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 기업이 원광을 가져가려면 말레이시아의 광산이나 정제공장에 투자하거나 현지 기업에 기술을 제공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부 수출 물량은 해외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조건도 검토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로서는 당장 원광을 판매해 수출수입을 얻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자국의 정제·가공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조건 없이 원광 수출을 재개하면 2024년 수출을 중단한 취지가 약해지고 자국 내 정제산업 투자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전면적인 규제 폐지보다 제한적이고 조건부인 수출 허용을 검토하는 이유다.

말레이시아는 2030년까지 동남아시아의 핵심광물 거점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광산 개발부터 희토류 분리·정제, 부품과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체 공급망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사이드 이브라힘 차관은 특정 국가의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위험을 낮추려면 공급망 다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희토류는 자원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어렵다. 서로 성질이 비슷한 여러 희토류 원소를 분리하고 고순도로 정제하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십년 동안 희토류 분리·정제 기술과 관련 생산시설을 축적해 세계 공급망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과 호주, 프랑스, 인도 등의 투자를 유치해 중국 이외의 기술을 확보하면서도 중국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사이드 이브라힘 차관은 중국이 기술을 공유한다면 말레이시아와 중국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국 기업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 중국 기업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셈이다.

말레이시아에는 호주 희토류 업체 라이너스 레어어스의 대형 정제공장도 있다.

라이너스는 중국 이외 지역에서 희토류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주요 업체 가운데 하나다.

현재 공장에 투입되는 원광은 주로 호주에서 채굴해 말레이시아로 가져온다. 말레이시아 공장에서는 이를 분리하고 정제해 각국에 공급한다.

말레이시아는 이미 희토류 정제시설과 관련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자원 보유국보다 공급망을 확대하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라이너스도 아직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말레이시아 내 희토류 자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희토류 기술업체 카레스터는 말레이시아 광산업체 말라코 마이닝그룹과 함께 북부 페락주에 희토류 분리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현지 복합기업 버자야도 희토류 관련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 1610만톤 자원 뒤에 환경·외교 과제


말레이시아 정부가 파악한 희토류 추정 자원량은 약 1610만t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자원의 잠재적 가치를 9700억링깃(약 343조원)으로 추산했다.

다만 이는 모두 당장 채굴해 판매할 수 있는 확인 매장량을 뜻하지 않는다.

‘추정 자원량’은 지질 조사 등을 통해 자원이 존재할 가능성을 계산한 수치다. 실제 매장 규모와 품질, 채굴비용, 경제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물량도 포함된다.

민간 투자회사 해넘앤파트너스리서치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인정된 말레이시아 희토류 매장량은 세계 전체의 약 1%다. 중국은 50% 이상을 차지한다.

말레이시아가 제시한 1610만t은 개발 가능성이 완전히 입증된 매장량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전국의 희토류 분포를 조사하고 실제 채굴이 가능한 지역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희토류 자원의 상당 부분은 보호림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호림에서 대규모 채굴이 시작되면 산림 훼손과 수질오염, 생물다양성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

희토류는 채굴보다 분리·정제 과정에서 더 큰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여러 화학물질을 사용해야 하며 광석의 종류에 따라 방사성 부산물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보호림의 생태계를 크게 훼손하지 않고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수출 제한을 완화해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 경제성보다 개발 속도가 우선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말레이시아가 희토류 공급망 거점으로 성장하려면 채굴 확대와 환경보호 사이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라이너스가 미국 국방부에 희토류를 공급하기로 한 계약도 말레이시아에서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라이너스는 미국 군에 희토류를 공급하는 4년 계약을 체결했다.

말레이시아 의회 위원회는 이 계약이 자국 외교정책과 충돌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왔으며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말레이시아에서 가공한 희토류가 미국 무기와 군사 장비에 사용될 가능성을 놓고 외교적 적절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사이드 이브라힘 차관은 의회 조사 결과를 아직 전달받지 못했다며 계약 취소 여부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계약에 위법 사항이나 말레이시아 외교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확인되면 정부가 조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의 희토류 정책은 산업 육성과 수출 확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공급망 경쟁, 국내 환경보호, 팔레스타인 지지 외교까지 얽힌 사안이 된 셈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실제로 원광 수출을 허용할 경우 적용 대상과 물량, 투자·기술 이전 조건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라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