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 백악관의 금리인하 압박
통화정책을 둘러싼 성벽에 거센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백악관은 인플레이션의 완화 국면 진입과 실물 경기 부양을 이유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향해 파격적이고 전격적인 금리 인하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중이다. 정치권과 시중 금융시장은 당장이라도 중앙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선회하여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해 주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실의 마이크를 잡은 리사 쿡(Lisa D. Cook) 연준 이사의 진단은 냉철하고 단호했다. 쿡 이사는 최근 공개 연설과 이사회 발언을 통해, 근치되지 않은 서비스 물가의 하방 끈자갈(stickiness) 현상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재상승 가능성을 정밀하게 짚어냈다. 그녀는 성급한 금리 인하가 겨우 잡혀가던 물가 기대심리를 자극하여 더 큰 경제적 혼란을 부를 수 있음을 경고하며, 필요하다면 고금리 기조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금리 인상 카드조차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매파적(hawkish) 소신을 강력히 피력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금리 인하를 조속히 단행하여 정권의 경제적 치적으로 삼으려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지향점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고금리 고수가 대출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미국 경제의 활력을 꺾고 있다며 연일 맹비난을 퍼부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쿡 이사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언급은 백악관의 정책적 요구에 대한 완강한 거부이자, 통화정책의 주도권을 정치권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 중앙은행 110여 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백악관과 연준 간 ‘정치·사법적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리사 쿡 이사는 미국 통화정책 역사에서 독보적인 학문적·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13년 연방준비법 제정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준 이사회는 주로 백인 남성 엘리트 경제학자들과 워싱턴의 기득권 금융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2022년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미 상원의 승인을 통과하고 2023년 재임명되어 2038년까지의 장기 임기를 확정한 쿡은 ‘연준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이사’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녀의 연준 입성은 단순한 인종적·성별 다양성의 구색 맞추기를 넘어선다. 기존 연준 이사진이 거시경제 수학 모형이나 대형 금융기관 규제 분석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쿡 이사는 노동 시장의 불평등 구조, 인종 간 특허 및 혁신 격차, 소외 계층의 금융 접근성 등 실물 경제의 뿌리를 구성하는 주제들을 깊이 있게 연구해 온 노동·혁신 경제학자였다.
연준 내에서 그녀의 존재는 통화정책이 지표상의 숫자뿐만 아니라 사회 하층민과 실질적 경제 주체들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을 다각도로 검토하게 만드는 정책적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백악관이 그녀를 직접 표적으로 삼아 축출하려 했을 때, 미 경제학계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지하는 거시경제학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이유 역시, 그녀가 상징하는 학문적 정통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연준 전체의 기강이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리사 쿡의 생애적 궤적을 살펴보면, 그녀가 외압에 굴하지 않고 통화정책의 소신을 지키는 강단이 어디에서 파생되었는가를 나름 이해할 수 있다. 쿡은 미국 조지아주 밀레지빌(Milledgeville)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문은 1960년대 미 남부 인권운동의 거목들과 깊이 교류하던 집안이었다. 어린 시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료들과 인권운동가들의 비폭력 투쟁 철학을 목격하며 성숙한 사회적 책임감과 정의관을 형성했다. 미국 최고의 역사적 흑인 대학(HBCU)인 스펠만 컬리지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뛰어난 학업 성적을 바탕으로 스펠만 출신 최초의 마셜 장학생(Marshall Scholar)에 선정되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St. Hilda's College에서 철학·정치·경제학(PPE) 학사를 취득하며 국제적 정책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이어 버클리대(UC Berkeley)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구소련의 통화 시스템 개혁과 러시아 경제 전환기 분석, 그리고 미국 내 인종 간 특허 출원 격차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 혁신적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이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 연구원을 거쳐 미시간 주립대학교(MSU) 경제학·국제관계학 교수로 수십 년간 재직하며 수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2012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선임 경제학자로 일하며 거시경제 정책 수립의 실무를 담당했다. 미국경제학회(AEA) 동등기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학계 내 인종 및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고 여성 경제학자들의 입지를 넓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금리 정책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자, 백악관은 연준의 정책 기조를 바꾸기 위해 리사 쿡 이사를 직접 겨냥한 전방위적인 신상 털기와 사법적 압박에 착수했다. 백악관은 쿡 이사가 연준 이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며, 1913년 연준 설립 이래 최초로 현직 연준 이사를 대통령 권한으로 해임(Termination)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연준을 백악관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시도였다.
연방주택금융청(FHFA)과 법무부(DOJ)를 동원해 백악관이 제기한 핵심 혐의는 ‘주택담보대출 사기(Mortgage Fraud)’였다. 쿡 이사가 연준 이사에 임명되기 전인 2021년, 미시간주 앤아버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주택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대출 서류의 기재 내용이 불일치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나의 주택을 '주 거주지(Primary Residence)'로 기재하여 더 유리한 대출 금리와 조건을 제공받고, 연준 임명 검증 서류 등에는 이를 '제2의 거주지' 또는 '휴양지(Vacation Home)'로 다르게 설명함으로써 금융기관을 기만했다는 주장이었다. 백악관은 이를 “지극히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범죄적 성격을 띤 행위”로 규정하며 연방준비법상 해임 요건인 ‘정당한 사유(For Cause)’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쿡 이사 측 변호인단과 법학계는 이러한 혐의 제기가 사소한 공문서상의 표기 차이를 부풀린 표적 수사이며, 금리를 낮추지 않는 연준 이사를 협박하여 사퇴시키려는 정치적 사법 무기화(Weaponization of Justice)의 전형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백악관의 거센 폭주에 맞서 리사 쿡 이사는 즉각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를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및 이사직 유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워싱턴 D.C. 연방법원의 지아 콥(Jia Cobb) 판사는 쿡 이사가 제출한 가처분 신청을 전격 인용했다. 법원은 연방준비법에 명시된 연준 이사의 신분 보장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연준 임기 개시 이전의 서류 기재 불일치 문제나 명백한 위법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안은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For Cause)'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항소를 거쳐 사건을 미 대법원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대법원 역시 행정부가 연준 이사를 소명 기회(Procedural Due Process)도 없이 소셜미디어 선동과 입증되지 않은 혐의만으로 해임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이 미국 경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핵심 보루임을 재확인하며 쿡 이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언론의 추가 취재 과정에서도 쿡 이사가 세금 감면 혜택을 부당하게 누리지 않았으며, 대출 기재 문맥상 고의적 사기 의도가 없었음이 드러났다. 이로써 백악관의 해임 시도는 법원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했고, 쿡 이사는 당당히 의결권을 유지하며 연준 이사회실로 복귀했다.
법원 판결을 통해 이사직을 완벽히 수호해낸 쿡 이사는, 백악관이 제롬 파월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하고 연준 이사회에 진입시킨 케빈 워시(Kevin Warsh) 신임 연준 의장의 완화적 노선에 맞서 다시 한번 강력한 반기를 들고 있다. 케빈 워시 의장이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응하여 과감한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 완화를 추진하려 하자, 쿡 이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대외 연설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쿡 이사는 정치적 스케줄에 맞춰 통화정책을 성급히 완화하는 것은 1970년대 찰스 번스(Arthur Burns) 의장 시절의 치명적 실수, 즉 인플레이션의 재발발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사회 내부의 견제와 균형: 의장 한 사람의 독단이나 행정부의 외압으로 연준의 금리가 결정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데이터가 물가 안정을 지시할 때까지 금리 인하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연준 내부에서 '독립파 이사' 그룹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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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앙은행 독립성
리사 쿡 이사와 백악관 간의 전면전은 단지 한 개인의 신상 문제나 특정 금리 수치를 둘러싼 대립이 아니었다. 이는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정치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백악관의 표적 수사와 검찰 기소 위협, 그리고 대통령의 직권 해임이라는 유례없는 폭풍 속에서도, 쿡 이사는 법치주의와 학자적 양심에 기반하여 자리를 지켰다. 그녀가 이끌어낸 법원의 승리는 향후 어떤 정권도 통화정책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르기 위해 연준 이사를 임의로 쫓아낼 수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판례적 방화벽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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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흑인 여성 연준 이사라는 역사적 타이틀로 시작하여, 백악관의 정면 공세에 맞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온몸으로 수호해낸 리사 쿡. 그녀의 소신 있는 행보는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질서의 안정성과 관련하여 거시경제적 사건으로 기록 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