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가 계속되고 있는 미국에서 한때 전송이 정지됐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뜨겁다. 6월 24일부터 영화 본편 전에 전문가가 노예제 묘사의 문제점 등을 해설한 동영상을 붙인 형태로 재전송이 시작됐지만, 이 영화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우리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
■ 전송 중단 계기가 된 작가 존 리들리의 글
전송 중단의 계기는 백인에 의해 유괴돼 노예로 팔려나간 자유 흑인 노예 체험기를 토대로 한 영화 ‘노예 12년’의 작가 존 리들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기고한 글이었다.
리들리는 “영화인으로서 영화라는 것이 종종 역사의 순간을 잘라낸 스냅 샷이란 것은 이해한다. 영화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태도나 의견뿐 아니라 일반적인 문화도 반영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선의로부터 만들어진 영화라도 소외된 커뮤니티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실패할 수 있다”라고 전제를 한 다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표현의 점에서 단순히 미흡한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남북전쟁 전 남부를 찬미하고 있다. 노예제도의 공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유색인종 사람들의 가장 애처로운 스테레오 타입을 영속시킬 만한 영화”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검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며 남부연합이나 노예제의 진면목을 그린 작품과 함께 소개하거나 역사적 문맥을 보여주는 등의 조치를 동영상 전송 서비스인 HBO Max에 제안했다. 기고문이 게재된 다음 날인 6월 9일 HBO Max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전송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 비판은 원작 소설 출판 당시부터 존재했다
뉴욕타임스는 6월 14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둘러싼 긴 투쟁에서 영화의 무엇이 문제인지를 해설했다. 신문은 “1939년 개봉한 이 고전 작품은 인플레이션율을 조정하고도 여전히 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렸으며, 남북전쟁과 재건기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아마도 다른 어떤 작품보다 크게 형성해 왔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비판은 1936년 영화의 원작이 된 마거릿 미첼의 소설이 출간될 당시부터 있었으며 ‘전미 유색인종 지위 향상협회(NAACP)’가 영화화 시 흑인 ‘팩트 체커’를 채용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936년 NAACP의 서기인 월터 화이트는 우려를 표명하고 사실과 해석의 ‘오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 가능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고용할 것을 제안하는 편지를 프로듀서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는 “부흥기의 역사 서술이 최근 2~3세대 사이에 완전히 남부연합에 치우치고 있어 당연히 우리는 다소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요망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작진이 원작에 있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인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 나와 있는 ‘KKK는 비극적인 필요악’이라는 문구는 삭제되고, 스칼렛이 흑인 남성에게 강간당할 뻔한 장면을 흑인 남성이 아닌 가난한 백인 남성으로 변경하는 등 변경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흑인계 매체 피츠버그의 ‘쿠리에’지는 영화의 흑인 묘사를 “행복한 하인과 사고력 없는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때의 관객 중에는 10대의 맬컴 X도 있었다. 그는 극장에 있던 흑인은 나뿐이었고 스칼렛 하녀역의 버터플라이 맥퀸이 등장할 때마다 카펫 아래로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자서전에 썼다.
■ 흑인 관객까지 사로잡은 교묘한 노예제 은폐
르몽드는 산타 바버라 캘리포니아대에서 미국 문화의 흑인 표상을 연구하는 안나 에버렛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종차별적 관점에서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문제점을 소개했다.
에버렛 교수에 따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문제점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남부가 남‧북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감각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며 남북전쟁의 진정한 역사인 노예제보다는 남부 귀족에게 초점을 맞춰 그려졌다는 점이었다.
또 상영에 대한 반대 운동이나 보이콧은 있었지만, 최신 컬러 기술로 촬영된 아름다운 남부풍경은 당시 흑인 대중들도 매료시켰다. 비평가이자 시인이었던 멜빈 B. 톨슨이 흑인계 신문 ‘워싱턴 트리뷴’에 게재한 비평을 에버렛은 소개하고 있다.
톨슨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얼마나 노예를 소유했던 남부를 미화했는지, 로맨틱한 이야기 뒤에서 흑인 대중이 눈치채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부유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백인 처녀를 강간하는 흑인 큰 남자가 나오지 않아 대부분 흑인은 황홀해 했다”고 그는 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원작자인 마거릿 미첼과 감독인 빅터 플레밍이 '반 흑인, 반 북부인, 쿠 클랜의 선전물을 ‘국가의 탄생’(KK의 부활에 불을 지른 D.W. 그리피스 감독의 1915년 영화)보다 더 교묘하게 퍼뜨려 흑인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 전송중단 보다 차별 논의 활성화 계기삼아야
미 동영상 전달 서비스 HBO Max는 24일 아프리카계의 영화 비평가이자 시카고 대학교수인 재클린 스튜어트의 해설을 영화 본편 앞에 붙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재전송을 개시했다. 스튜어트는 해설 동영상을 통해 이 영화는 제작 발표 때부터 여러 차례 항의를 받았다며 작품 세계의 기반인 동산으로 취급된 노예제도의 잔학성을 인정하지 않고 남북전쟁 전 남부를 우아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제시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등장하는 흑인 노예들은 “백인의 주인에게 헌신적인 하인으로 오래된 인종의 스테레오 타입에 부합하고 있다. 향수를 통해 그 세계를 다루는 이 작품은 노예제도의 무서움과 인종적 불평등의 유산을 부정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 하인 마미를 연기한 해티 맥다니엘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지만, 시상식에서 다른 배우와 동석할 수 없었다는 점도 동영상 속 소개됐다.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는 것은 불쾌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며 “그래도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영화를 시청이나 논의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대의 눈으로 볼 때 차별적 표현을 담은 예술작품은 많다. 하지만 작품을 볼 수 없게 되어 버리면 문제점에 대해 논의할 기회도 잃어버린다. 제작된 당시의 시대 배경을 반영한 작품과 향후 어떻게 마주해 가야 할 것인가, 이번 재송신은 참고가 될 사례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