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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T] 넷플릭스가 연상호 감독을 품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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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T] 넷플릭스가 연상호 감독을 품은 이유는?

'지옥' 이후 연이은 오리지널 작업…SF영화 '정이' 내달 20일 공개
주류 영화계 감당 어려운 아이디어…흥행부담 적은 환경서 매력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이미지 확대보기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부산행'으로 천만감독 반열에 오른 연상호 감독은 영화계에서 이단아 같은 존재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거나 한국영화아카데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연출을 공부한 기존 감독들과 달리 연상호 감독은 상명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 '창', '사이비', '서울역' 등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으며 '부산행'으로 실사영화에 발을 들인 후 '염력', '반도' 등을 선보였다.

이랬던 연상호 감독은 지난해 넷플릭스와 협업해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처음 선보였다. '지옥'은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공동 집필한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실사 시리즈로 유아인,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김현주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지옥'은 누적 시청시간 1억4000만 시간을 기록하며 연상호 감독의 성공적인 OTT 안착을 알렸다. 이후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와 차기 프로젝트를 연달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차기 프로젝트의 첫 주자가 내년 1월 20일 공개를 앞둔 '정이'다.
배우 강수연의 유작으로 알려진 '정이'는 22세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SF 스릴러 영화다. 강수연 외에 김현주, 류경수가 출연한다.

'정이'는 AI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 팀장이 내전을 끝내기 위한 자신의 어머니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던 군인의 뇌를 복제하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와 연상호 감독이 잇달아 협업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영화 시장에서 SF영화는 금지된 장르와 같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에 개봉한 몇 개의 한국 SF영화들이 참패하면서 영화계에서 SF영화는 두려움의 단어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개봉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나 '예스터데이'는 흥행실패의 아이콘과 같은 영화가 돼버렸다. 이런 기세는 2003년 '내추럴 시티'와 '원더풀 데이즈'까지 이어졌다.

이후 기피대상이 됐던 SF영화는 최근 한국의 CG 기술력의 발달과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랑'과 '외계+인 1부', '루시드 드림' 등이 흥행 참패했고 '승리호'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넷플릭스에 판권이 넘어갔다.

그 사이에 '설국열차'나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꽤 괜찮은 흥행성과를 낸 작품이 있었지만, 높은 제작비와 낯선 세계관 탓에 한국의 관객들은 국산 SF영화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넷플릭스로 향한 한국 SF 장르가 반드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원작 단편영화의 기발한 상상력과 탁월한 CG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지만, 공개 후 시청자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 같은 SF 장르의 한계를 연상호 감독은 '정이'를 통해 정면돌파하려고 한다. 만약 OTT가 아닌 다른 제작사가 '정이'의 프로젝트를 접했다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SF영화의 낮은 흥행률에 높은 제작비를 투자하는 모험을 강행할 제작사는 그리 많지 않다.

'정이' 메인 포스터. 사진=넷플릭스이미지 확대보기
'정이' 메인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반면 넷플릭스는 제작기간과 제작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누구보다 존중하는 회사다. 이는 넷플릭스와 작업한 모든 창작자들이 공통적으로 전한 의견이다.

이런 제작환경은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연상호 감독에게는 최적의 환경이다. 애시당초 '지옥'을 실사화하는 것도 지상파나 종편채널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신흥종교에 함락된 방송채널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돼있다.

넷플릭스 고유의 제작환경이 '정이'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이라는 기발한 작가를 품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제작자의 역할이 부재한 넷플릭스의 제작환경에 대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흥행에 대한 산정방식이 극장이나 방송과 달라서 창작자가 갖는 부담은 오히려 적다.

이는 새로운 상영환경에 맞는 제작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은 이 같은 환경에 적합한 작가다. 애시당초 그는 한국영화의 인재양성과 제작 시스템 바깥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노아 바움백이 넷플릭스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노아 바움백은 2017년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제대로 고른 신작)'를 만든 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만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2019년 '결혼 이야기'에 이어 30일 '화이트 노이즈'를 공개한다.

넷플릭스의 이 같은 제작환경은 사실상 인재영입의 방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창작자가 마음껏 뛰어놀 운동장을 제공하는 이런 제작방식은 좋은 창작자를 확보해 흥행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차피 영화업계에서는 '3할만 쳐도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 10편 중 3편만 흥행해도 그 제작사는 성공한 회사다.

넷플릭스 역시 '3할만 치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넷플릭스는 좋은 작가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운동장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가 준비 중인 한국영화는 '독전2'와 '발레리나', '길복순', '대홍수' 등이 있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