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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군비 경쟁 재점화…방위산업, '고성장 산업'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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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군비 경쟁 재점화…방위산업, '고성장 산업'으로 부상

지정학적 위기 속 세계 국방비 급증…NATO, GDP 5% 증액 합의
AI·드론 등 기술 혁신 맞물려...정부 주도에서 민간 투자 산업으로 확장
록히드마틴의 F-35. 러시아·중국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세계가 '제2의 냉전'이라 불리는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NATO가 국방비 증액에 합의하고 AI, 드론 등 첨단 기술이 전쟁의 공식을 바꾸면서, 방위산업은 새로운 '고성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록히드마틴의 F-35. 러시아·중국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세계가 '제2의 냉전'이라 불리는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NATO가 국방비 증액에 합의하고 AI, 드론 등 첨단 기술이 전쟁의 공식을 바꾸면서, 방위산업은 새로운 '고성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전 세계에서 군비 확장이 빨라지면서 방위산업이 과거 '가치 있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넘어 '지속 가능한 고성장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군비 증강의 역사가 오늘날 국제 무대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모양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소련을 압도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 예산을 1980년 1500억 달러(약 203조7600억 원) 밑에서 1985년 3000억 달러(약 407조5200억 원) 위로 두 배 늘렸다.

당시 미국 정부는 B-1 폭격기와 MX 미사일, 해군 함대 확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았고, '스타워즈 계획'으로 불린 전략 방위 구상(SDI)으로 우주 배치형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 전략으로 미국은 소련보다 기술력과 자금력에서 앞섰다.

주요국의 국방비 증액과 분쟁 확산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포브스 재팬이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GDP 5% 국방비로"... 다시 불붙은 '힘을 통한 평화'


오늘날 이러한 전략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의 국방비 증액 합의로 구체화됐다.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NATO 32개국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늘리기로 공식 합의했다. 이 가운데 3.5%는 직접 군사비에, 나머지 1.5%는 기반 시설, 사이버 안보, 방위산업 기반 강화 등 간접 안보 분야에 투입한다. 이는 2014년 세운 GDP의 2% 목표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NATO의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없었다면 이것은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회원국에 지출액 증액을 압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추가 자금을 본격적인 군비에 투입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장비는 미국산인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며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다시 확인했다.

이 같은 군사비 급증의 배경에는 세계 긴장 고조가 자리 잡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가 발표한 2025년 세계평화지수(GPI)를 보면, 현재 세계적으로 59건의 국가 간 분쟁이 진행 중이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올해 가장 평화롭지 않은 나라로 꼽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3년이 지났음에도 해결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고 군사 위협을 이어가고 있다. NATO는 중국이 첨단 미사일 시스템과 남중국해 해군력 증강 등 '대규모' 군비 확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란 또한 최근 미국의 공습에 보복하고자 카타르에 주둔한 미군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며 중동 지역의 긴장을 높였다.

◇ 정부 넘어 민간으로… AI·드론 기술이 전장 지배


세계 군사비 증가 흐름 속에 NATO 회원국 가운데 일부는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폴란드는 GDP의 4% 이상을 국방비에 써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3.5%로 늘리겠다고 밝혔으며, 이를 위해 헌법상 채무 규칙까지 바꿨다. 영국은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F-35A 전투기 12대를 주문했는데, 이는 동서 냉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핵 억지력 강화 조치라는 평가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국방 예산으로 8483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하면서 군함이나 전투기 같은 기존 투자를 줄이는 대신 무인기(드론)와 스마트 미사일에 중점을 둘 방침을 내놨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최근 전장에서 무인기를 써서 성과를 거둔 점에 주목해, 비용 효율이 높은 최신 장비를 우선시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 주도를 넘어 민간 투자와 혁신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방위기술 신생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스(Anduril Industries)'처럼 인공지능(AI)과 자율무인기 등 첨단 기술을 앞세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며 산업 혁신을 이끄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 군비 경쟁은 탱크나 전투기뿐 아니라 AI, 인터넷, 우주, 차세대 미사일 등 첨단 기술을 아우르는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국방 예산이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의 방위비 또한 2024년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6930억 달러(약 941조 5791억 원)에 이르렀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럽은 여전히 미국의 군사 장비와 생산 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존도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무인기, 미사일 시스템, 사이버 보안, 우주 기술에 힘쓰는 미국 방위 기업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재군비 시대에 가장 큰 혜택을 볼 전망이다. 미국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핵심 동맹국에도 NATO 수준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어, 이들 나라 역시 방위산업 혁신과 예산 확대가 불가피하다.

지정학적 불안과 기술 혁신이 맞물리면서 방위산업은 이제 단순한 가치 보존을 넘어, 앞으로 수십 년간 구조적 성장이 기대되는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