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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방관 어깨에 얹힌 ‘태극기의 무게’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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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방관 어깨에 얹힌 ‘태극기의 무게’가 미안하다

소방관 어깨에 새겨진 태극마크.
소방관 어깨에 새겨진 태극마크.


전국 4만여 소방관 이제는 '태극기 휘날리며'
[글로벌이코노믹 안재민 기자] 소방관 제복에 태극기 마크를 부착하는 사업이 모두 완료됐다.(관련 기사보기)

지난해 8월 개정된 ‘소방공무원 복제규칙’에 따른 국가안전처 사업 결과물이다.

소방관은 재난으로부터 국가 재산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다하는 직업이다.

태극기를 부착한 제복을 입은 소방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믿음직스러움과 뭉클한 감정을 유발한다.

‘태극기의 무게’를 짊어질 직업으로 이만한 직업이 또 있을까?

지금껏 태극기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이유는 전국 4만여 명의 소방관이 대부분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 신분이라는 데 있다.

지방직이기에 각 지방을 대표하는 상징마크를 부착해왔다.

개정안으로 인해 앞으로 모든 소방관은 제복에 태극기를 짊어진다.

화마현장에 뛰어든 소방관들.이미지 확대보기
화마현장에 뛰어든 소방관들.


소방관에게 ‘태극기 마크’보다 중요한건


짐작컨대 정작 대다수의 소방관은 본인의 어깨에 달린 마크가 태극기이건 어느 지방의 심벌이건 관계치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무거워진 사명감이 자리잡겠지만 막상 생명을 구하는 일에 뛰어들었을 때 마크가 태극기이건 뭐건 무슨 상관을 하겠는가?

하지만 현장에서 무거워진 사명감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가는 현실적으로 다른 문제다.

사명감이 있다고 해서 맨몸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에게 소방관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적지 않은 수가 열악한 환경과 희생, 안타까움 등을 나열한다.

이 같은 현실이 오히려 소방관들을 더욱 괴롭히겠지만 관련 뉴스를 그만큼 자주 접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2년 전 일선 소방관들이 예산 부족으로 방화 장갑을 지급받지 못한 채 일반 면장갑을 사비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에 준하는 일이 여전히 대한민국 소방관에게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더 좋은 보호 장구를 지급해도 모자란 상황인데 비리로 얼룩져서, 예산이 모자라서 또 갖가지 이유로 열악한 환경을 벗 삼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군산소방서 소속 소방관이 소방 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군산소방서 소속 소방관이 소방 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기득권 싸움으로 국가직 전환 희생돼선 안돼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방관을 지방직이 아닌 국가직으로 전환해 OECD 수준에 걸맞은 복지와 근무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지방 자치단체별로 발생하는 지원금 격차로 인한 '소방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하지만 포털 검색창에 소방관 국가직 전환과 관련된 내용만 쳐봐도 이 같은 논의가 사회적으로 행정적으로 짧지 않은 세월을 거쳐 왔음을 알 수 있다.

당사자인 소방관 역시 원하고 있고 국민의 여론도 찬성에 가깝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기관의 알량한 기득권 싸움으로 관련 법안은 유령처럼 국회를 떠돌고 있다.

과거 한 정치인은 국회의원 시절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찬성했다가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되고 나선 180도 태도를 돌변해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화재현장을 진압한 소방관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화재현장을 진압한 소방관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태극기에 걸맞은 지원 후행 필수


태극기 부착사업은 개정안이 공포된 지난해 8월 이후 단 6개월 만에 끝났다.

이들의 어깨에 얹힌 태극기를 보고 있자니 현실적 처우 개선은 없이 무리한 희생만을 더 요구하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쩐지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물론 국가직 전환이 소방관에게 일어나는 모든 처우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카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직 전환이란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이들에게 국가의 무게를 묵직하게 심어준 만큼, 적어도 이와 관련한 현실적인 지원책이 후행돼야 할 것이다.

화마로 인해 목숨을 잃고 유가족은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재민 기자 jae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