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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석문화의 하나, 선돌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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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석문화의 하나, 선돌을 보셨나요?

[현장] 구례 구산리 선돌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 문화전문기자] 대개 사람들은 "거석문화(巨石文化)"하면 고인돌을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금수강산 삼천리에는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라도 지역에는 2만 여기가 발견되었다 하니 가히 고인돌의 나라라 해도 될 듯싶다. 하지만, 거석문화에는 고인돌만이 아닌 선돌도 존재한다. 선돌은 길쭉하거나 넓적한 바위를 똑바로 세워놓고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로 삼은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이다. 한자말로는 입석(立石:menhir), 입암(立岩)이라고 한다.

▲전남구례군토지면구산리170번지에있는전라남도유형문화재자료제115호<구산리선돌>
▲전남구례군토지면구산리170번지에있는전라남도유형문화재자료제115호<구산리선돌>
우리나라는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 할머니탑 ·할아버지탑 ·할미바위 ·장수지팡이 ·구지바위 ·돌장승 ·쇠뿔미륵 ·수구막이 ·수살장군 ·미륵부처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또 이 선돌은 대개 고인돌 등 다른 여러 종류의 거석 유적과 직접 혹은 간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어, 같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170번지에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15구산리선돌이 있다. 구산리선돌은 지리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내린 낮은 언덕 위에 있는데, 섬진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크기는 높이 240, 100~120, 두께 25~33이다. 크고 넓적한 바위를 세워 놓은 것이며, 측면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앞뒷면은 고르지 않다.

이 선돌은 역사시대에 세워졌다고 하는 다른 입석들과 달리 크고 넓은 형태여서 선사시대 고인돌 주위에 세워진 묘표석(墓標石, 그 지역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45m 곁에 고인돌이 하나 있어 그러한 가능성을 높여 준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자료제115호<구산리선돌>안내판,구산리선돌이라하면좋을것을구산리입석이라고한자말을쓴것이아쉽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자료제115호<구산리선돌>안내판,"구산리선돌"이라하면좋을것을"구산리입석"이라고한자말을쓴것이아쉽다.


▲<구산리선돌>부근에있는고인돌
▲<구산리선돌>부근에있는고인돌


현재 이 선돌에서 하는 의례는 없지만, 주민들이 소원을 빌고 액을 물리치기 위해 빌었던 대상이라고 전한다. 선사시대 묘표의 구실을 하였던 선돌은 역사시대 들어 마을 수호의 기능과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신앙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선돌과 형태나 규모가 비슷한 선돌 하나가 섬진강 건너편 문척면 월전리에 세워져 있는데, 구산리의 것을 신랑바위라 하고, 월전리의 것을 신부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선독거리또는 선돌거리라고 부른다.

이 선돌은 토지면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차로 가는 도중 길가에 구산리입석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어 들어갔다가 막다른 길이어서 돌아 나오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길이 바뀌었다면 그 안내판을 뽑았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더구나 구산리선돌하면 알아듣기도 쉬운 일인데 어찌 구산리입석이는 한자말을 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 선돌은 분명히 곁에 있는 고인돌과 관련이 있을 텐데도 선돌을 위한 울타리를 놓으면서 고인돌은 의붓자식처럼 외면해버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 관리자에겐 대단치 않은 물건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 선돌과 고인돌은 우리 겨레의 귀중한 문화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구산리선돌>울타리를하면서가까운곳에있는고인돌은외면했다.
▲<구산리선돌>울타리를하면서가까운곳에있는고인돌은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