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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과학 칼럼]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거룩함의 촛불, 그들은 너무 빨리 촛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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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과학 칼럼]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거룩함의 촛불, 그들은 너무 빨리 촛불을 켰다

“불면은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이는 지극히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취지공비(吹之恐飛)/집지공함(執之恐陷)으로 “불면은 날아갈까 걱정하고 잡으면 꺼질까 걱정된다”는 말이다.
가냘픈 자태로 꺼질 듯 말 듯한 약한 불꽃을 피우는 양초의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힌다. 이러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촛불의 헌신적인 모습은 오랫동안 희생과 봉사의 상징이 되어왔다.

약한 바람에도 꺼지는 그 불빛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거룩한 수호와 보살핌의 유래가 되었다. 또한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듯 촛불은 오랫동안 사악함에 맞서는 거룩함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나약하면서도 모이면 크나큰 힘을 발휘하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불을 둘러싼 의미만큼 많은 대상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성립에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로 통한다. 물론 이는 일본의 잘못된 번역이다. 비단 조로아스터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불은 숭앙 되어왔다.

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는 불을 만물(萬物)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대표적이며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철학자들도 불을 세상을 이루는 근원으로 봤다. 아마 그 유용성과 강렬한 이미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인류에게 서로 대비되는 ‘밤과 어두움’의 문화를 제공한 것은 바로 양초다. 시간의 개념을 제공했다. 옛날 중국에서는 시간을 재는 양초 시계가 있었다.

성직자와 신도들의 행진에는 늘 촛불 행진이 등장한다. 그래서 무모한 전쟁의 종식을 염원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알리는 반전(反戰)시위에도 처음으로 촛불 시위대가 생겨난 것이다.
절의 불상 앞에서도 자비와 광명의 불을 밝힌다. 중생의 무명(無明)을 일깨우기 위해 촛불을 켠다. 촛불과 함께 켜는 향은 세상의 모든 번뇌와 더러움이 연기와 더불어 사라지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몸을 태워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대표적인 작품은 김동리의 <등신불>이다. 나쁜 짓을 서슴지 않았던 모친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그리고 쫓겨나 거지가 되고 문둥병에 걸린 이복 여동생과 남동생을 위해 스님이 된 주인공이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에게 공양해 부처가 된다는 내용이다.

촛불의 양초는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불’이라는 뜻에서 양촉(洋燭)이라는 말로 썼다. 인류의 문명 생활에 가장 밀접하면서도 그 기원이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양초는 대개 쇠고기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밀랍이나 파라핀을 원료로 만든다. 적당한 온도에서 잘 녹는 가연성 고체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로 이주한 미국인들은 쇠고기 기름으로 양초를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디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부리면서 양초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했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자 양초 산업은 쇠퇴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행사 뿐만 아니라 그 수요는 대단하다. 촛불은 여전히 희생과 봉사, 그리고 겸허함의 상징으로,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시작으로 배려되고 있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거룩한 분노의 상징 상아탑. 그들은 왜 촛불을 들었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을 향해서? 그들은 너무 빨리 조급하게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촛불의 의미가 퇴색해진다.


김형근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hgkim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