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춤밭을 일군 사람(3)]-한국 춤의 거탑 양선희

공유
2

[춤밭을 일군 사람(3)]-한국 춤의 거탑 양선희

아침이슬의 영롱함으로 빛나는 舞城의 든든한 성주

양선희, 박범신, 장사익이 만나면 서정의 강물이 넘쳐나고,
춤은 시가 되고, 미답봉의 전설이 피어난다

정교한 춤 수사로 인간의 삶 섬으로 비유한
'섬 섬 섬'으로 장편 안무 데뷔
현대적 감각으로 춤판의 시적 서정을 개척


▲ 양선희 세종대 무용학과 교수[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평론가] 춤꾼 양선희(세종대 무용학과 교수‧안무가)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강의 동쪽, 땅은 비옥하고, 사람들이 순수한 그곳에서 그녀는 청춘시대의 도전과 개척의 가치를 피워내고 있다. 희향(喜香)으로 극찬을 받아 마땅한 작품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들어선 구성의 틀 위에 아침이슬의 영롱함과 저녁노을을 거느린 오팔처럼 빛난다.

그녀는 시적 상징 속에 인간의 본성과 상황을 포착, 선율과 춤 수사, 빛과 색감으로 빚은 비주얼로 사회적 행위와 사건들을 순식간에 예술적 가치의 아름다움으로 전이시킨다. 동풍연행(東風演行)은 분명 실제적이어서 이기적 시기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견제의 장벽을 뚫고 그녀는 해마다 한국 춤의 거탑을 쌓아 왔다.

명문 경남여고에서 수도여자 사범대학교(현 세종대)로의 과감한 진격은 그녀의 개성과 안무작들을 이끌어가는 춤 방법론과 상호 연관성이 있다. 양선희의 춤은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늘 관객들을 열광케 만드는 매혹인자를 소지하고 있다. 가슴으로 느끼는 뤽상부르 공원의 추억과 68학생혁명의 분위기가 봄을 불러오는 안무가의 작품에서 동시에 교차된다.

불을 닮은 침묵, 여유로운 미소, 봄을 불러오는 마음으로 심기일전을 끊임없이 주술처럼 요구하는 안무가, 여명의 언덕에서 치솟아 오를 해를 기다리듯 그녀는 예작(藝作)들이 가마에서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작업을 해마다 해왔다. 늘 갈 길이 바쁘지만, 때론 일탈 같은 여행, 혹은 구상을 위한 야성적 비무용적 상상세계를 순환과 소통의 고리로 삼는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그녀의 춤에 대한 열정은 해마다 무용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춤 혁명가 양선희의 전투는 1990년 4월 20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시작된다. 정교한 춤 수사로 인간의 삶을 섬으로 비유, 현실과 꿈 사이의 아득히 먼 간극을 사랑으로 채워야한다는 장편 안무 데뷔작 『섬 섬 섬』의 메시지는 이후의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까미유 끌로델의 친 남동생 뽈 끌로델 원작의 『하얀 시간, 까만 시간』(1992)에서 안무가는 불확실성의 현실에서 밝은 부분을 보고자 한다. 뽈은 초현실주의 작가로 단 한편의 무용대본을 썼고, 인간 내면의 세계와 양면성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늘 시례악(詩禮樂)을 바탕으로 한 야생화적 서정성이 짙게 묻어나고 있다. 춤으로 세상을 구해내는 일, 상생의 덕목으로 버전을 달리하는 예술적 브랜드 창출에 경계를 허문 적극적 동참을 요구한다.

▲ 갈망그녀는 ‘조망과 성찰의 미학’을 실천하는 무용가로서 현대적 감각으로 춤판의 시적 서정을 개척해 왔다. 격정적 창작무『비우니 향기롭다』(2010)는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세밀하게 관찰한 모던한 작품으로 비주얼의 화려함, 한층 농밀해진 춤사위와 풍부한 이미지들, 총체적 완성도로 우리 예술 춤의 위상을 크게 높인 바 있다.

춤다솜무용단 대표로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23회 ‘올해의 최우수예술인’으로 선정되었고, 3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수상함으로써 거침없이 질주한 그녀의 춤 작업의 정당성이 입증되었고, 예술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진정한 춤의 기쁨을 찾아준 공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춤 작업은 한국 창작 춤의 본격적 상업화에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미덕의 일면, 양선희는 스승과 제자를 존중한다. 스승 추사 김정희를 큼직이 사모한 이상적의 선행과 견주어지는 2006년 故 황무봉 선생 추모 10주년 기념,『당신의 춤사랑 뒷그림자 이어갈 때』의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의 공연은 인상적이었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애절하고 정감어린 시 낭독은 그녀의 본심을 읽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 사계부산 춤의 텃밭을 일군 마에스트로 황무봉을 기념한 이날의 『허허바다』는 만장과 깃발의 의미, 바다의 이미지를 장사익의 노래 가락에 실어 고난도의 천 퍼레이드를 선보였다. 관객의 눈을 뜨게 해주는 풍경소리, 깃발, 사운드가 어우러진 가운데 바닷가에 내려앉은 안개는 인생의 허허로움의 의미와 바다의 서정을 ‘비움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었다.

대극장 선호의 통 큰 양선희는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문예회관 대극장 등에서 공연해왔고, 안무와 총연출 작품은 선이 굵고, 무용수가 많이 등장한다. 올해 총연출작 『키스 더 춘향』은 보름 동안 광진나루센터에서의 장기공연 신기록을 세웠다. 양선희의 직선적 추진력과 관객의 욕구에 대한 춤의 적합성 연구의 결과는 현(弦)의 공명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양선희의 ‘현실성 원칙’은 춤의 도약과 협동, 장르 허물기 등으로 지속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창작 춤 『혼의 소리』(1994)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97)는 제목 자체에 주제가 실린 작품들로 각각 ‘산 자의 영혼’에 대한 고찰과 ‘사랑’의 의미를 캐내는 작품이다. 음악에 실린 가벼운 리듬의 춤들은 21세기에 들어와 성숙한 단계에 접어든다.

▲ 사랑했으므로시대춤 『용비어천가』(1995)로 장르 개척을 시도한 양선희는 성숙의 단계로 진입하는 『빈터』(1996)로 고존(孤存)의 쓸쓸한 분위기를 창출하여 공허함을 채우는 정신적 에너지는 무엇인가를 공동의 화두로 삼았다. 홀어머니 밑, 무남독녀로 성장한 탓에 늘 그리움을 타고, 연(緣)의 소중함을 생명처럼 여기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는 늘 우울이 투영된다.

새로운 천년을 여는 작품은 『갈망』(2000)과 『회소곡』(2001)이었다. 양선희는 인내의 성(城)에서 변방(limbo)의 성이 뜯겨나가는 것을 목도했다. 페미니즘이 도출되고, 소통을 위한 오감(五感)으로 공간 확장이 이루어진다. 흔적과 신의의 회소에 사랑이 칡넝쿨처럼 널 부러져 있다. ‘통증’에서 시작된 그녀의 사유는 금년 봄의 ‘사랑’으로 한 단계 도약한다.

『사계』(2003)는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의미를 반추한 상위 개념의 춤을 보여준 작품이다. 음양오행과 생로병사가 사계에 걸쳐지고, 나무와 꽃의 탄생과 개화(봄), 불놀이와 열정(여름), 축제에 이은 고독(가을), 소통과 내려놓음(겨울)의 인간의 굴레는 결국 피안의 세계로 연결된다. 비발디, 양선희, 김기덕이 써머셋 모음의 정원에서 만나는 셈이다.

▲ 하얀시간 까만시간『하루』(2006)는 ‘하루’에 걸린 현재와 과거의 조우, 구슬 같은 미래를 나를 통해 성찰한다. 안무가 양선희는 비극이 탄생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춤의 철학적 가치를 고양시켜 왔고, 현대적 춤 형식의 발견과 인지를 통하여 타 장르와의 협동과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교육자로서 그녀는 수행자적인 위치를 견지하며 제자의 성공과 미래에서의 완성을 확신한다. 예술가가 되건 교육자가 되건 그녀의 후학들은 불굴의 춤 정신을 배울 것이다.

『하루』를 통해 담론을 창출하고, 몸짓언어의 난해함을 일거에 해소한 이 작품은 무용 인텔리겐치아들의 ‘무용의 미학적 존재(Sein)’에 대한 인식 전환을 선도한다. 티베트의 바르도(Barr)가 한국식으로 수용되는 과정은 불교가 전래되던 충격의 일부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파격적 발상은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그러하듯 평범함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창작춤 『비우니 향기롭다』는 『하루』와 맥을 같이하며 ‘비움의 미학’을 근저로 욕심을 털어내는 수행의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선희, 박범신, 장사익이 만나면 서정의 강물이 넘쳐나고, 춤은 시가 되고, 미답봉의 전설이 피어난다. 대중적 기반의 중요성을 고려한 것이다. 존재의 가없는 하찮음과 가혹한 무거움을 만나면서 피어난 명무(瞑舞)다.

안무가 양선희는 법구경의 구절을 히말라야 정상에 쏘아 올리고 춤은 선문답처럼 깨달음을 향해 작은 걸음들을 우주로 향하게 한다. 이 깨달음을 향해 가는 가운데 양선희는 법정의 무소유를 만나고 도도하게 버티고 있는 무크파르밧을 만난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경쟁과 욕망, 패배와 소외, 쾌락, 산의 정령들과 영혼, 구도와 고행, 회한과 관용을 가르친다.

▲ 빈터양선희 춤의 1기(1990년~1999년)는 시적 감흥과 조화된 춤 안무와 춤 정신 찾기, 2기(2000~2009년)는 자연과 나, 주변에 대한 성찰, 3기(2010년~현재)는 서정적 판타지와 고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구분하면 무난할 것 같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 회복과 치유, 나와 인간에 대한 성찰, 과거와 현재를 살피게 하는 종합선물세트다.

양선희 총연출, 권용상 안무의 『키스 더 춘향』(2012)은 자수정 같은 춤의 맛깔, 댄스 뮤지컬로 진화한 춤 춘향은 형식과 양식에 대한 다양한 혼재, 현대음악과 전통음악, 모던댄스와 발레, 한국창작무용, 현대의상과 전통 의상, 연극과 춤, 춤과 음악에 대한 총체 예술로 스펙트럼을 짜고 춤의 진화를 실증해보인 작품이다.

그녀는 늘 꿈을 꾼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다. 면벽 설산, 산중 설원, 만물 동근, 자아성찰로 겸허를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 놓인 욕망들의 부질없음을 앞에 두고 나를 되돌아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매번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춤에 임하는 그녀의 춤에 대한 경외심에 갈채와 존중의 마음을 갖는다.

/장석용 댄스칼럼니스트(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