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 씨, 평전 통해 여인 관계와 북 행적 밝혀내
"하늘아래 이만한 마력 지닌 시인은 없을 것" 극찬
▲ 백석 시인[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분단에 의해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천재 시인 백석(1912~1995). 올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토속 언어로 쓴 시와 번역시들이 발굴돼 화제다.
백석 전문가 송준(50) 씨는 최근 평전 '시인 백석'(총 3권)과 '백석 시전집'을 출간하면서 미공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작품은 '깜찍한 여우와 어진 물오리' '계월향 사당' '감자' '우레기' '굴' 등이며, 백석의 초기 번역시 '사랑의 신'도 함께 발굴됐다.
송 씨가 백석의 시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베이징 도서관, 옌볜 도서관 등을 샅샅이 뒤진 덕분이다. 수십년 간 백석 연구에 몰두한 그는 백석 자료를 가장 많이 발굴해낸 주인공이다. 머리카락을 한껏 뒤로 치켜 올린 청년 백석의 대표적 사진도 그가 발굴했다.
송 씨는 이번 책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사실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를 테면 백석과 여류문인들과의 관계, 기생 '자야'와의 관계 등이다.
그에 따르면 시인 백석은 동시작가이기도 했다. 책은 북에서 발표된 동시 여러 편을 싣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시어는 '사슴'에 실린 시와는 또 다른 맛을 안긴다. 백석이 북에서 왕성한 번역활동을 했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백석이 우리말로 옮긴 러시아 시들은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의 시로 유명한 백석은 묻혀 있던 존재였다. 일제 말기 펴낸 시집 '사슴'은 당대 문단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북부 사투리에 담은 향토적 감수성과 정갈한 시어가 독자를 사로잡은 것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사슴'을 구할 수 없어 시집을 빌려다 손수 베껴 간직했다고 한다. 시인 김기림(1908~?)은 '사슴'을 가리켜 "문단에 던진 폭탄"이라며 감탄했다.
그러나 만주에서 광복을 맞은 천재시인 백석은 이후 북에 남았다. 북녘의 고향 땅 가족 곁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분단시대에 월북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한동안 ‘시인 백석’은 금기어로 통했다. 때문에 그의 시와 문학적 성취는 오랫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더구나 북에서의 행적과 창작활동은 알려지지 않았다.
송 씨는 '시인 백석'에서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북에서의 구체적 삶을 처음으로 밝혀낸다. 백석은 북에서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유배당하듯 삼수갑산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백석은 눈을 감을 때까지 시인의 마음으로 살았으며, 외로움과 가난은 그의 운명이었다고 한다.
백석은 또 6개 언어에 능통했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독일어, 중국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러시아어를 잘했다. 대부분의 외국어를 독학으로 섭렵한 그는 많은 러시아어 소설과 시를 번역했다.
백석은 당시의 시인으로는 드물게 친일시가 없다. 재북·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 많지 않은 시편과 짧은 연구 기간에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송씨는 "백석의 시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정신을 사로잡는다. 하늘 아래 이만한 마력을 지닌 시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