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20회)]알바레토 가족과 살바도르 다리
다른 작품의 정교한 작업과 달리 추상적 표현기법 선봬
'아라비안 나이트''호머의 오디세이'도 석판화·에칭 작업
알바레토, 달리 작품 진위 감정할 정도로 전문가 수준 올라

2004년 6월 12일부터 9월 15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전 ‘살바도르 달리’ 전시회가 열렸다. 세계를 돌며 순회했던 이 전시회에서 소개된 많고 다양한 작품들 중에 ‘성스러운 성경(Biblia Sacra)’이야기가 담긴 석판화 작품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눈에 띄는 이유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정교한 달리의 작업들과는 사뭇 다른 추상적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의 작품들이 고전 명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성경적인 소재를 다각도로 사용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만을 가지고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대 중반 알바레토 가족은 스페인의 코스타 스라바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도 달리의 집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머물고 있어 미술비평가 라파엘 산토스 토로엘라(Rafael Santos Torroela)에게 이끌려 달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러 작품을 보다가 드로잉 작품을 한 점 구입했다. 이렇게 첫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것이 후에 300점이 넘는 달리의 작품을 소장한 개인 컬렉션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을까.

크리스티아나는 달리를 잘 따랐고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매우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달리는 평생을 알고 지내고 싶은 가족과 같은 사람이에요. 저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요. 여름에 달리가 있는 마을에서 지낼 때면 꼭 집에 있는 것 같았어요.” 달리와 함께 수영장에 들어가 놀기도 하고 그의 집을 뛰어다녔으며 달리가 그림을 그릴 때 스튜디오에 있기도 했다.

교회에 대한 헌신과 믿음이 깊었던 기스페는 라틴어로 된 새로운 성경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마침내 달리에게 책 속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프로젝트 기간 동안 달리가 성경을 공부해야만 한다고 했는데 내심 달리를 교회로 인도하고 싶은 바람이 숨겨져 있었다. 기스페가 지켜보기에는 달리가 부인 갈라에게 억압되어있다고 느껴졌고 그 속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달리는 성경을 읽고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싹트게 되었고 많은 부분 변화했다고 하는데, 한편으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정확한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달리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과학을 만나 흠뻑 빠져 작품의 많은 부분에 소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칼톤 래이크(Carlton Lake)가 쓴 달리에 관한 글에서 달리가 질문에 답하길 “내가 과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종교가 내게 말해주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믿음을 갖는데 부족함이 있다”고 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기스페가 제안한 성경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응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모든 일러스트 작업은 혼합재료를 사용했고 구아슈, 수채화, 인디안 잉크, 파스텔, 연필로 이루어졌다. 사실적인 정교한 작업에 뛰어난 달리의 다른 작품들 중 흔히 볼 수 없는 수채화로 표현된 이미지들은 새롭고 아름답다. 달리의 그림덕분에 성경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감정 협회에서 달리 작품의 스페셜리스트인 버나드 이웰(Bernard Ewell)이 직접 알바레토 부부의 집에 찾아가 성경에 들어간 모든 작품들을 감정했는데 매우 희귀하고 독특한 컬렉션이라며 감동했다.

알바레토 부부와 달리의 우정은 예술계를 위해 후세에 남을 뛰어나고 값진 작품들이 생성될 수 있도록 도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부부가 작가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 달리가 보낸 엽서와 그래픽 이미지들을 잘 간직했기에 그것을 통해서도 달리 작품의 출처를 발견할 수 있다. 알바레토 가족은 달리 작품의 전문가로서도 국가의 인정을 받아 달리 작품의 진위여부를 가릴 일이 있을 때에 감정을 나갈 정도로 한 예술가를 평생 사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