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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열로 다스리고 냉은 냉으로 다스려야(以熱治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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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열로 다스리고 냉은 냉으로 다스려야(以熱治熱)

[강종성의 이야기보따리(65)]

[글로벌이코노믹=강종성 이야기꾼] 평양부자 중에서도 으뜸가는 부자가 있었다.

대궐같은 집에 물쓰듯 돈을 쓰며 부러울 게 없이 살았으나 단지 자식 복이 없는 게 한이었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명산의 절마다 찾아다니며 기도도 드려 보았으나 내내 자식을 보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딸 하나를 낳고는 그만이었다.

주위에서는「양자를 들여라, 작은댁을 얻어서 아들을 낳으라」느니 하고 충동이건만 장본인인 그들 부부는 들은 체도 안 했다.

『남의 자식을 들여놓아 그 속을 누가 썩으며, 첩을 얻어 불화의 씨를 뿌릴게 뭐냐?』

과연 옳은 말이었다.

딸자식이라도 하나 있으니까 막막하지는 않았고 돈이 많으니 노후걱정도 필요없었다.

그러고 보면 누구든 그집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놈은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떨어질 참이었다.
애지중지 길러 딸의 나이 열 여섯이 되자 사윗감을 물색하는데 모두들 심상치 않은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만석꾼의 외동딸의 데릴사위, 어떤 복 많은 놈이 걸릴는지?

겉보리 서 되만 있어도 데릴사위로는 안 간다고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다할 쓸개 빠진 놈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것이다.

하루는 영감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마누라를 손짓해 불렀다.

『밖에 누가 듣는 이 없나?』

하고 손짓으로 물었다.

없다니까 그제서야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오늘에야 우리 큰애기 신랑감을 찾았소』

『뉘 집 아들 입데까?』

『아니, 그런 이름있는 딥 아들이 아니구설라므니 왜 저 동대문 안 이주부네 포목점 있디 않쉐까?』

『오, 그집 손주 말이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집에서 가게 보는 아이 있지 않소? 갸 말이오.』

『뭐요? 이 양반이? 그놈이 작년겨울까지 쪽박 들고 돌아다니던 거러지 새끼 아냐요?』

마누라는 기가 막혀 펄쩍 뛰었다.

『이 놈의 영감쟁이가 딸 늙힐까 봐 이러나?』

『쉬잇! 그러기에 내 조용히 얘기 하는 게 아니겠소? 생각해 보구려, 제 집있고 제 에미, 애비, 할애비, 할미 다 있는 녀석이 내 집에 들어왔다가 예편네는 좋지만 늙은 장인장모 싫다고 가 버리는 날엔 딸년 신세는 어떻게 되갔소? 그리고 솔직히 우리 재산보고 중매쟁이를 통해서 혼담을 넣는 놈들하며 그러니 차라리 일가붙이고 뭐고 없는 불쌍한 아이라야 우리부부를 친부모 같이 여기고 딸년도 위해줄 것 아니요?』

『하긴 그렇지만 차마 어디.........................』

『으응, 걔가 과거는 그렇지만 아이가 제법 쓸만합디다. 인사성 있고 어른 애 알아보고, 얼굴도 그만하면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생겼고..... 』

어지간히 마음에 들은 모양으로 영감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어차피 딸의 혼수감도 더 장만해둬야 하니 물건 사는 체하고 한 번 가보구료. 마누라만 좋다면 이내 정혼하고 발표하겠으니까. 어중이떠중이 우리재산이나 넘겨다보는 뚜쟁이 파리 떼 같은 것들 꾀어드는 꼴은 딱 질색이야』

마누라가 보니 과연 영감 말대로였다.

이내 합의가 이루어져 정혼이 발표되었다.

(엊그제까지도 떠돌아 다니던 거러지가 만석꾼의 외동딸의 데릴사위가 되다니................................)

여자였다면 필시 신데렐라가 되었다고 떠들 처지이나 남자의 그런 경우는 뭐라고 하는지?

그럭저럭 혼인 날이 되었다.

평양부근이 떠들썩하게 잔치를 차려 안팎손님은 물론 과객, 거지, 부랑배까지 질탕하게 먹여 돌려보내고 나니 밤도 깊었다.

이제 바야흐로 화촉동방의 꿈이 무르익을 판국인데, 어린 신랑각시 하는 수작을 엿보려고 젊은 아낙네들은 문구멍 뚫기에 바빴다.

백자도 병풍을 둘러치고 홍초가락이 너울너울 춤추는 방안에선 새색시 옷을 벗기는 비단자락 소리가 새어 나왔고 불은 복이 날아간다고 후 불어 끄지 않고 부채로 살며시 눌러 껐다.

그래서 신방 지키던 아낙네들끼리 의미 심장한 눈웃음을 주고받는데, 별안간 신부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신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엄마! 신랑이 죽었어요.』

『뭐?』

장모가 놀라 뛰어 들어가 만져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신랑의 몸이 뻣뻣했다.

『원 세상에 이게 웬일인고?』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날밤에 새신랑이 죽어버렸으니 이런 변괴가 있겠는가?

의원을 부르러 가는 사람, 판수.무당에게로 내닫는 사람...........................

백비탕(白沸湯)을 끓이랴, 청심환을 으깨랴 야단들인데 대문 맞은쪽 객주집 여자가 달려왔다.

자기집에 용하다는 함경도 의원이 묵고 있는데 환자를 보면 어떤 수가 있겠다고 하니 보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

어서 오라고해서 환자를 보였다.

그 의사는 이불을 젖히고 한참동안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여보시오 주인 과부 한 오십 명만 동원할 수 없겠소?』

『그거야 되겠지요. 헌데 늙은 과부 말입니까, 젊은 과부 말입니까?』

『그런 거 가릴 새가 없으니 한 오십 명만 빨리 구하시오. 그리고 그 돈 꾸러미도 마루 끝에 좀 쌓아 놓고.............』

이렇게 돼서 난데없는 과부를 구하느라 사방팔방으로 사람이 내달렸다.

『저 부엌의 돌이 엄마도 혼자지요? 이 아지마이도 그렇고. 저 용식이 고모도 오라고 하소.』

늙은 것, 젊은것 우거지상에 곰보 째보 가릴 것 없이 한 오십 명의 과부가 삽시간에 모여 들었다.

『이거 매우 급하게 됐소이다.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겠으니, 자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럼 할머니, 아주머니 우선 이 돈을 드릴 테니 거기 앉아 울어 주시오.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막 소리내어 울어 주시오.』

(아닌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원 세상에 별놈의 약방문도 다 봤다)

(돈 주며 울라는데 안 울 수가 있나?)

제각기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억지로 울음울기를 시작하였다.

『어이 어이 ..........................』

『애고 애고 ..........................』

『아이고 아이고....................』

처음에는 마지못해 우는 흉내만 내던 것이 울음 문이 열리자 제 설움에 북받쳐 본격적인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아이고 영감아 불쌍한 영감아! 살아생전에 호강한번 못해보고!』

제법 가락을 맞춰 목청을 뽑는 늙은 과부 옆에서

『에그 분해라. 에그 분해. 아까운 청춘만 늙었구나, 에그 분해라!』

중년과부가 몸부림을 치자

『에고 울어매요, 왜 날 이렇게 못생기게 낳아 가지고 소박데기 생과부를 만들었소? 애고 애고 애고.』

늙은 과부는 그 동안 힘들게 살아온 것이 서러워 울고, 젊은 과부는 평생 혼자 살 것을 생각하니 기막혀서 울고 저마다 넋두리를 섞어 가며 우는 것이 인산(因山)때 망곡(望哭)보다도 더하며, 오뉴월 악마구리가 끓어도 이 보다는 못할 것 같았다.

의원은 들락날락 신랑얼굴을 들여다보고는 뛰쳐나와 돈 꾸러미를 들고 과부들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자, 좀더 큰소리로. 좀더 서글프게, 자 저 아주머니는 썩 잘 우는데 좋소, 이건 상금이오.』

과부들의 호곡이 한창 어우러지자, 의원은 신랑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슨 조짐이 보이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했다.

그러더니 이내 신랑이 꿈적꿈적했다. 그리곤

『푸우 -------------』

하고 한숨을 내뿜는다. 눈을 떠서 주위를 살펴본다.

이제는 살아난 것이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장모마누라는 그제야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의원은 손을 들어 위엄있게 제지하고 밖을 향해 이젠 그만들 울라고 손을 흔들었다.

집안사람이 나눠 맡아,

『자 이제 그만들 우시오. 자 이 돈 가지고 그만들 돌아가시오.』

하고 말리는데도,

『아이고 내 팔자야아 -------------- 』

달리던 기차처럼 울음이 딱 그치기는 힘드는 일인 듯 꺽꺽 훌쩍훌쩍하는 과부들을 끌어내는데 한참 애를 먹었다.

돈도 필요없다며 팽개치는 과부, 발버둥치는 사람은 업어 내고 뒹구는 과부는 안아 내고 야단이었다.

방에서는 신랑이 일어나 앉아, 의원이 시키는 대로 소합원(蘇合元)을 씹으며 물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한시름 놓았으므로 주인은 의원을 이끌고 사랑방으로 나왔다.

온 방안에는 수염이 허연 노인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수고 하셨쉐다.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나는 이주부외다.』

『에, 저는 함경도 사는 이경화라고 합니다.』

(이경화? 듣던 이름 같기도 한데?)

그러고들 있는데 술상이 나왔다.

한참동안 먹고 마시고 하는데 이경화는 연상(硯床)을 당겨서 약방문을 썼다.

모두들 보니 몹시 놀란 끝에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이었다.

그런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터였지만 도대체 신랑을 살린 방은 어디서 나왔담?

『아까 선생께서 쓰신 술법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어디에 그런 방문이 있습데까?』

『경악전서(景岳全書)에서 보셨소? 청낭결(靑囊訣)을 구해 보았소?』

『예, 그건 아무 책에나 있는 거지요.』

『아무 책에나 있다니,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그런 방문은 못 보았소. 의서 읽는 것으로 일생을 보내다시피 했지만...............』

『예, 그러시겠지요. 꼭 집어 그런 말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열은 열로 다스리고, 냉은 냉으로 다스리는 것은 의가(醫家)의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이경화는 말을 끊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 긴장한 채로 듣고 있었다.

『실은 어제 떠나려던 건데 소문을 들으니 꼭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았습니다. 사람이란 환경이 너무 급하게 바뀌면 탈이 나는 법이기에 떠나는 것을 지체했지요.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이 야단이 나더군요. 짚이는 게 있어 자청해 와 보니 신랑이 슬픔을 삼키고 콕 체했어요.』

한방 둘러앉은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고대광실 높은 집에 꽃같은 미인에 겹겹으로 쌓인 보화가 다 내 것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거리 저 거리로 구걸하고 다니던 신세를 생각해 보니 설움이 북받치는데 첫날밤에 새신랑이 울 수야 없죠? 그만 꿀꺽 삼키다 보니 단단히 뭉친 거지요.』

일장설파 하는 것을 보니 과연 명의인 모양이었다.

이경화는 말을 이어,

『그러니 설움은 설움으로 다스려야 하겠는데, 설움 중에야 과부설움이 으뜸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과부를 동원한 거로군요.』

『그런데 하필이면 왜 오십 명을?』

의원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인삼을 두돈 쓰느냐? 서돈 쓰느냐? 하는 것은 의원의 판단이지요.

그래 과부도 한 오십 명은 있어야겠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아직도 신랑이 환경에 익숙해지려면 여러 날 걸려야 될 것이니까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경화는 주인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길이 바쁘다면서 홀연히 떠나 버렸다.

그러나 뒷일을 잘 맡아 처리해 달라는 당부를 여러 의원에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